
지하실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은 정확히 열 개였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찾았던 햄버거 가게보다 더 자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나는 한 번도 그 나무 계단의 숫자를 세어보지 않았다. 열 개건 스무 개건, 그 계단의 숫자가 내 삶에 아무 의미가 없어서 세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세 살의 조카처럼 그리 짧은 인생도, 고희를 넘긴 머리가 반백인 앞 집 할머니처럼 그린 긴 인생도 아닌, 이십 오년의 내 인생에서 나는 무의미한 것은 절대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그런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실제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할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무엇이라 불러야하나.
나는 지난 이틀 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늘 그렇듯 비록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일망정 그것은 내게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힘들었지? 지하실의 빈 박스를 정리해 놓고 그만 들어가 쉬어.”
가게 주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지하실로 향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지하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빈 박스들을 정리하다 나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꿋꿋히 견뎌냈을 나무 계단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듯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반질거렸다. 정확히 열개였다. 계단을 짚는 눈을 따라 하나씩 꼽던 손가락이 바닥이 났을 때 내 눈은 제일 윗 계단에 올라서 있었다. 열 개의 손가락이 다 꼽아져서인지 나는 왠지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 충만감은 꽤 부리지 않고 열심히 몸을 놀린 후에 찾아든 자아 만족인지도 몰랐다.
여지껏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육체 노동을 요구하는 아르바이트에서 나는 꽤나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어제,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쉼 없이 몸을 움직였어도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야하는 그런 힘든 일은 없었다. 힘든 일이라야 40kg 쌀 자루를 어깨에 들쳐매고 손님의 베이지색 차가 주차한 곳까지 운반한 일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땀을 흘린 몸을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긴장이 풀리면서 한순간에 피로가 엄습했던 것이다. 한국에선 느낄 수 없었던 노동의 가치를 침대에서 절감한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경험한 아르바이트에서 나는 노동의 가치따윈 느낄 수 없었다. 대학 초년생 시절, 방 바닥에 펴놓은 제법 큰 밥상에 고등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있었던 것이 내가 경험한 최초이자 마지막 아르바이트였다. 그룹과외였다. 개인과외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는데 한 달이 지나자 다섯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나 여럿을 가르치는 것이나 내가 들여야 하는 노력은 별 차이가 없었다. 과외 장소로 이동하면서, 학교가 버스 종점이었던 덕분에 맘껏 골라 앉을 수 있는 자리 중 맨 뒷 자리에 느긋이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삼십 분 정도 책을 들여다 보던 시간이, 다섯 명으로 늘어나도 그대로 삼십 분이었다. 그런데 수입은 세 배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한 달 수입으로 한 학기 등록금을 해결하고도 남았다. 다섯 명의 학생들이 매달 말, 흰 봉투를 내게 내밀 때, 그 봉투로 엄마의 옷을 사고 엄마의 얼굴을 윤기나게 할 영양크림을 사고 크림이 잔뜩 발라진 케이크를 살 때, 나는 내 주머니에 돈이 가득 들었다는 기분만 느꼈지 내가 땀을 흘리고 노동을 했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대학교에 들어와 귀가 따갑게 들은,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노동가치설이나 잉여가치설들이 무색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행한 노동에, 나는 그리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데 내 주머니가 두둑한 것은 어찌된 일인가. 독일의 습기찬 땅 어느 한 구석에 잠들고 있을 마르크스를 흔들어깨워 묻고 싶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말끔한 얼굴로 다섯 개의 흰 봉투를 쥔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말이다. 당신이 목이 아프게 외쳐댄 것이 바로 이것이었나요?
한동안 엄마의 단골 외출복이 자줏빛 체크 무늬 원피스였다. 첫 달의 아르바이트 수입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다. 한 학생만 가르쳤으니까 한 개의 봉투 뿐이었다. 한 학기 등록금으로는 어림없었고 백화점이 아닌 시장의 가게에서도 옷을 대뜸 사지 못하고 가격부터 물어보며 한참을 골라야만 살 수 있었던 수입이었다.
자줏빛 체크 무늬 원피스. 엄마는 그 옷을 사랑했다. 백화점에서 산 비싼 옷들을 물리치며 그 옷만 애지중지했다.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밥상에서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머리를 맞댄 댓가를 엄마의 사랑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이 아닌.
가게의 지하실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빈 박스들을 하나하나 주워올리며 나는 박스를 얇은 종이처럼 쫙 펼쳐나갔다. 한 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납작해진 빈 박스들은 이틀 동안의 내 노동의 결과였다.
손님들이 하나 둘씩 집어들어 진열대에서 사라져가는 물건들이 눈이 띄면 나는 얼른 지하실로 뛰어 내려가 박스를 찾았다. 주머니에 깊숙히 들어있던 칼을 꺼내 박스의 뚜껑을 자르면 진열대에서 사라져가던 물건들이 그 속에서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물건 하나하나에 권총처럼 생긴 가격부착기로 가격을 붙인 후 나는 다시 지하실 계단을 뛰어 올랐다. 진열대에 그 물건들을 쏟아내면 허전하던 진열대가 밀물을 맞은 듯 꽉차 올랐다. 내가 진열대 앞에서 몸을 움직일 동안 빈 박스들은 지하실 한 쪽 구석에 내팽개져 있었다.
“빈 박스를 이렇게 정리해놓지 않으면 청소원들이 치워가질 않아.”
주인 아저씨가 한 개의 빈 박스를 주워 올려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빈 박스의 정리는 한 주일의 일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형광등으로 환하게 밝힌 지하실에서 나는 혼자였다. 이것 저것 일감을 주던 주인 아저씨도 마지막 정리를 하는 듯 위로 올라가고, 굽신굽신은 아니지만 왕처럼 깍듯이 대해야하는 손님도 내 주위에 없었다. 박스를 뜯던 손을 멈추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뜯지 않은 박스가 아직 많이 보였고 그리고 저기 계단이 보였다. 나는 계단을 세어보았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나 둘 셋 넷… 박스 정리를 끝내고 저 계단을 올라가면 나는 한 주를 마감하며 또 다른 한 주를 맞이해야한다. 지나간 한 주는 어떠했으며 다가올 한 주는 또 어떠할까.
나의 주머니에는 지폐가 들어있었다. 힘들었지? 하고 주인 아저씨가 건네준 주급이었다. 대학 초년 시절의 다섯 개의 흰 봉투에 든 지폐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구슬같은 땀을 흘린 값진 댓가였다. 늦었지만 비로소 깨닫게 된 노동의 가치였다. 나는 이제 땅 속에서 잠자고 있는 마르크스를 깨울 필요가 없다. 단지 아쉬운 게 있다면 주머니에 든 지폐로 무언가를 선물할 사람이 없다는 것. 엄마는 정말로 저 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주머니에 든 지폐를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자줏빛 체크 무늬 원피스를 떠올렸다. 시장 가게에서 가장 빛났던 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사려고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여야했다.
“깎아주세요.”
“그 가격으로는 안돼.”
단호하게 말하는 가게 아줌마를 원망하며 나는 부득이 다른 옷을 골랐지만 영 맘에 차지 않았다.
“아줌마, 깍아주세요.”
“그 가격으로는 안됀데도.”
여전히 버티는 아줌마에게 실망의 눈길을 보내며 또 다른 옷을 골라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기는 여전했다.
“아줌마, 이게 내가 가진 전부란 말이에요.”
나는 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 아줌마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받아든 자줏빛 체크 무늬 원피스. 그 옷을 입고 엄마는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또 돌았다. 마치 춤추는 호두까기 인형처럼
이 돈으로 무엇을 한담? 가게를 나오면서 나는 주머니 속의 지폐를 다시 한번 만지작거렸다. 엄마는 없다. 자줏빛 원피스는 아니지만 새 양말이라도 사서 신겨드릴 엄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물어가는 여름 저녁 끝의 한 자락이 서녘 하늘에 걸려있었다. 내 눈가처럼 붉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었다. 자줏빛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저 노을 속에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엄마의 자줏빛 원피스를 펄럭이고 엄마의 젖을 빨며 듣던 고운 목소리가 저녁 노을을 타고 내 귀로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 아들 영훈아, 네가 태어난 땅만 엄마의 땅이 아니란다. 네가 발딛고 선 곳이 그 어디든 그곳이 바로 엄마의 땅이야. 지금 선 곳에서, 엄마의 땅에서, 너의 꿈을 나날이 키워가렴. 외로워하지 말고 눈물 흘리지도 말고.
나는 노을을 향해 가만히 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엄마.
처음 아리조나 타임즈 원경호 기자으로부터 글의 청탁을 받고 한 달이나 쓸 수 있을까 하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벌써 일 년이 되었습니다. 제 글은 이제 여기서 끝맺을까 합니다. 그동안 제 글을 위해 여백을 마련해주신 아리조나 타임즈 여러분들과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어 비천한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