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윤종범 작가 문학칼럼] 젊음의 한가운데 서서 9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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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쌀 봉지가 수북히 쌓인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그녀를 만날 것 같은 예감,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옷깃을 스친 후로 나는 그녀를 잊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도 다르고, 식당의 메뉴판에 그려진 그림 속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여지껏 살아온 환경과 생판 다른 환경 속에서 나는 어지간히 바빴던 모양이었다. 바빴다기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좀 더 맞는 표현이지 싶다. 첫 학기에 무슨 과목을 들어야 할 지 수강 과목들이 빼곡히 들어찬 책자를 들여다보던 시간에, 다음 학기 등록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한숨을 내쉬던 시간에, 매끼마다 햄버거말고 다른 무엇으로 배를 채워야 할 지 고민하던 시간에, 단발머리 그녀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보는 순간 나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해후한 듯 반가웠다. 그녀는 여전히 머리 끝이 가지런한 단발머리였다. 단지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그녀의 어깨에 무겁게 걸쳐있던 가방이 사라진 점이랄까.

한국 식품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녀는 문에서 가까이 진열되어 있는 쌀 봉지들에 눈길을 주며 서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세상의 다른 일은 제처두고 오로지 쌀 봉지에만 관심이 있는 듯 그녀의 시선은 쌀 봉지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그녀를 본 순간 나는 마법에라도 걸린듯 발을 옮기지 못하고 그녀만 쳐다볼 뿐이었다.

“영훈이가 왠일이야. 일은 내일부터 시작인데.”

마법에 걸린 내 몸을 움직이게 한 건 주인 아저씨의 경쾌한 목소리였다. 가게의 한 쪽 구석에서 아저씨는 걸어나오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구석에서 일을 히던 아저씨가 나를 본 것이다.

“아, 네.”

나는 멈칫하며 아저씨를 향해 고개를 꾸벅했다.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내 눈은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정녕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이었을 뿐 그녀의 시선은 다시 쌀 봉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그녀의 시선이 좀 더 오랫동안 내게 머물렀다면, 아저씨로 향하던 내 시선은 그녀에게로 돌아가 나를 향하는 그녀의 시선과 빛줄기처럼 어느 한 곳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의 시선은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설 때처럼 쌀 봉지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던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한숨만이 아니었다. 그때 또 문득 한숨 짓는 내게 한 생각이 찾아들었는데 그것은 아, 내가 저기 수북히 쌓인 쌀 봉지였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는 쌀 봉지이기를 원했던 최초이자 유일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수강 과목들이 빼곡히 들어찬 책자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이맛살을 찡그렸다. 공교롭게도 컴퓨터 과목이 아르바이트와 겹치는 수요일이었다. 월, 수, 금. 오후 2시부터 2시 50분까지. 왜 하필이면 수요일이지? 나는 다른 컴퓨터 과목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기초 프로그래밍 수업은 그것이 전부였다. 수강 과목 시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학생의 처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국 식품점으로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반납하는 수 밖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혹시 가능할 지도 모르는 장학금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세요?”

다음 학기부터 장학금을 타야한다는 나의 절절한 호소를 들은 프리드만 교수는 나를 원숭이 쳐다보듯 한참을 쳐다보다가 마침내 입을 연 것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안다고 해야할 지 모른다고 해야할 지 언뜻 분간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목을 수강할 기회가 있었다. 포트란(Fortran)이란 콤퓨터 언어를 가르치는 강의가 개설되었는데 그 과목은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이었다. 듣지 않아도 되고 혹은 듣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소해도 되는 그런 과목이었다. 수치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당연히 컴퓨터에도 관심이 당겨 별로 주저함이 없이 그 강의를 등록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아직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던 때라 냉장고만한 컴퓨터가 컴퓨터실에 떡 버티고 앉아 모든 학생들의 과제를 처리해주고 있었다. 기종이 IBM 370이라든가 380이라든가. 좌우지간 IBM에서 제조한 냉장고 크기만한 컴퓨터는 일명 ‘펀치카드 컴퓨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키보드와 모니터를 이용해 데이터를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라 카드에 펀치기기로 구멍을 뚫어 컴퓨터에 입력시킨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달랑 한 대뿐인 냉장고만한 컴퓨터는 터무니 없을 가격 때문이라 그렇다해도 카드에 구멍을 뚫는 펀치기기 마저도 그 수가 빈약했다. 이용하려는 학생 수에 비해 펀치기기의 숫자는 터무니 없었다. 컴퓨터실은 언제나 줄을 선 학생들로 붐볐다. 꼬리를 문 줄의 길이가 만만치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차례가 왔고, 어디에 자리가 나나 펀치기기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줄에 선 학생들 때문에 펀치기기 앞에 앉아있을 때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었는데 나는 매번을 그렇게 서둘렀다. 서두르면 실수는 피해갈 수 없는 법. 카드에 구멍이 잘못 뚫린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드디어 끝냈다는 그 상쾌한 후련함만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잘못 펀치된 카드를 제출하고 난 결과는 참담했다. 그 참담한 결과를 접하는 데마저 하룻밤을 소비해야했다. 다음 날 받아든 달랑 한 장 뿐인 종이 쪽지에서 ‘에러’라는 단어를 발견할 때는 정말이지 비애가 밀려오는 절망 그 자체였다. 어이없게도 쉼표 하나가 생략되었거나 혹은 쉼표 하나가 더 찍혔음을 알리는 종이를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쉼표 하나 찍으려고, 아니면 쉼표 하나 없애려고, 또 줄을 서야하고 겨우 자리가 난 펀치기기 앞에서 나는 또 서둘려야 했다. 그리고 결과를 받아들기까지 다시 하루를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들, 그 지긋지긋한 시간들. 몸서리 처지게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던 날 들 중의 하루였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 받아든 종이 쪽지에서, 또 쉼표가 안 찍혔다는 에러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종이를 휴지조각처럼 사정없이 구기며 학과실로 향했다. 과목 취소 용지에 과목 이름과 내 이름을 기재하는 내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내 약한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은 듯한 그 후련함이란 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조금 알아요.”

나는 손으로 턱수염을 쓰다듬는 프리드만 교수에게 고개로 대답하는 대신 입을 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프리드만 교수는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는 프로일 거라는 그릇된 인식을 할 지도 모르고 내가 고개를 저으면 반대로 프로그래밍의 ‘프’자도 모르는 무식한으로 전락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설핏 스쳤던 것이다. 비록 2주만에 막을 내린 한국에서의 컴퓨터 수업일지언정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맛은 본 셈이니까 조금 안다는 것이 결코 거짓말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이번 학기에 꼭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목을 들으세요.”

조금 안다는 내 대답에 프리드만 교수는 만족을 하지 않은 듯 했다. 그렇다고 실망도 하지 않았는지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끔직한 말 대신 컴퓨터 과목을 듣기를 권하고 있었다. 이번 학기부터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콤퓨터 프로그래밍을 제법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프리드만 교수실을 나오기가 무섭게 나는 가방을 뒤졌다. 아무래도 장학금의 열쇠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쥐고 있는 듯 했다. 모든 학과의 수강과목이 적힌 책자에서 컴퓨터 학과를 찾으려고 나는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겼다. 마침내 찾은 페이지에는 ‘파스칼 프로그래밍 입문’이라는 강의 타이틀 옆으로 MWF 2:00PM ? 2:50PM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독 W가 크게 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Wednesday. 운좋게 걸린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치는 것이다. 수요일은 좀 힘들 것 같은데요, 하면 주인 아저씨는 아르바이트 얘기는 없던 일로 하자고 하시겠지? 비록 많지 않은 아르바이트 수입일망정 홀쭉해진 내 은행잔고를 부풀리는데 도움이 될 터인데. 가게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아르바이트를 자축할 겸 그날 저녁 피자로 축낸 돈이 새삼스레 떠오르고 있었다. 그 돈이면 맥도날드나 버거킹은 여러 번을 드나들 수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음 주 월요일이나 찾아갈까 했던 프리드만 교수 방문을 오늘 해치운 것이다. 일을 시작하고서 그만두는 것 보다 아예 처음부터 일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훨씬 수월했던 것이다.  

“할 수 없지. 학생은 수업이 우선이니까. 그러면 3시 이후는 시간은 되나?”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말을 예상한 내게 3시 이후의 시간을 묻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노랫가락처럼 감미로웠다. 물론이죠, 라고 주저없이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조금 들떠 있었다. 더 열심히 일할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내일 뵐께요.”

아저씨께 인사를 하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와 얘기하는 동안 그 여학생은 아담한 크기의 쌀 한 봉지를 들고 카운터로 와서 지갑을 열었다. 나는 지갑을 열고 닫는 그녀의 하얀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저씨와 나 사이의 끊어졌던 얘기가 다시 이어졌을 때도 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지는 그 여학생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기숙사로 향하는 도로로 내 눈은 급히 뻗어나갔다. 단발머리 여학생은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 서 있었다. 금요일 점심 시간이어서인지 파란불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신호등 앞에 무리를 지어있었다. 아무리 각양각색의 무리 속이라 한들 내 눈은 까만 머리를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눈부신 까만 머리를 보는 순간 내 가슴은 왠지 두근거렸고 내 걸음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막막한 심정이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입을 열어보리라 작정하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엘리베이트에서 꾹 다물었던 입을 후회한 시간은 이미 지나간 과거였다. 그 후회스런 시간을 되풀이 할 수는 없었다.

빨간 불이 파란 불로 바뀌었을 때 나는 이미 그녀 뒤에 서 있었다. 파란 불을 받으며 도로를 건넌 무리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몸을 틀었을 때까지도 내 입은 열어지지 않고 있었다. 입을 열어야지, 빨리 입을 열어야지, 하는 말만 무슨 주문처럼 속으로 되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눈부시게 까만 단발머리를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리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내 입은 기숙사에 당도할 때까지 꾹 다문 채로 며칠 전 엘리베이트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했을까.

물꼬는 트기가 어렵지 한번 튼 물꼬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내 입은 물꼬였다.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한번 터진 내 입은 좀처럼 쉬어갈 줄을 몰랐다.

“안녕하세요? 한국 가게에서 보았어요. 한국 가게에 들렀으니 한국 사람이 틀림없죠?”

“안녕하세요?”

그녀는 웃음 띤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저는 일본 가게도 가끔씩 가는데 일본 가게에서 만났다면 저를 일본 사람으로 간주했겠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린 듯 하면서도 또렷했다. 과연 그랬을까. 일본 가게에서 만난 그녀에게서 나는 일본 사람의 냄새를 맡았을까. 그렇다면 중국 가게에서는 중국 사람의 냄새를?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그녀가 어느 나라의 가게에 있던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얼굴에 조선시대 사람이라고 씌여있어요. 일본 가게라 해서, 또 중국 가게라 해서 쉽게 지워질 그런 글자가 아니에요.”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또 웃었다. 한국 사람도 아닌, 난데없이 틔어나온 조선시대 사람이란 말이 그녀를 웃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의 과장도 없는, 내가 느낀 그대로의 표현이었다. 그녀는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처럼 그렇게 수수했다. 시대의 감각을 바꿔놓는 유행이 태풍처럼 불어온다해도 그녀는 유행과는 무관할 그런 수수함이었다.  

그녀는 몇 번을 더 웃었다. 내가 개그맨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평범한 내 말에 그녀는 웃고 또 웃었다. 아니 웃어주고 또 웃어주었다. 그 웃음은 그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장애물을 하나 둘씩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하는듯 했다. 그녀의 한번 웃음에 내가 그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녀의 또 다른 웃음에 그녀가 내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어디가서 점심 식사라도 같이 할까요?”

한국 가게에서 산 쌀로 점심을 해결하려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얼른 점심 식사를 제안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건 내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이걸 들고서요?”

그녀는 쌀 봉지를 내 얼굴 앞으로 들어보였다.  

“이리 주세요.”

그녀의 손에서 뺏다시피 쌀 봉지를 받아들면서 나는, 그리고 그녀는 몸을 틀었다. 가까워지던 기숙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기숙사가 멀어질수록 내 마음은 푸근해져갔다. 기숙사와 멀어지는 그 거리만큼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어나는 것이다. 그녀와 나란히 발맞추어 걷는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은 것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얘기는 그녀의 입에서도, 내 입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치 식사를 금방 마친 사람처럼 그녀를 만나기 전 시장기를 느끼던 내 배는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그녀의 배도 마찬가지였을까. 그녀와 나란히 걷는 동안, 꼬르륵 소리 대신 까르륵 웃음소리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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