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나바호 족의 ‘멀고도 먼 길’ – 8천여부족 ‘죽음의 땅 레돈도’로 강제 이주 (1)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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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길 벼랑을 휘돌아 나온 3월의 눈보라는 괴기스런 짐승의 울름소리를 내며 너른 세리협곡(canyon de chilly)의 모래펄을 달렸다. 매서운 바람이 지날 때마다 초췌한  몸을  웅크린채 나바호 인디안들은 벌레처럼 한발 한발  발길을 옮겼다. 한때 아리조나 의 광활한 황야를 주름잡던 용맹스런 나바호 부족은 이제 백인 병사들의  가련한 포로가 되어 전나무, 노간주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 거친 황야 600리 길을  걷고 또 걸어 뉴멕시코 페코스 강 근처 죽음의 땅 보스크 레돈도의 ‘섬너’요새로 죽음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나바호 부족들은 호송하는 미군 병사들의 엄한 감시를 받으며 어느 때는 살을 에이는 추위속에서, 어느 때는 황야를 불태우는 폭염을 견디며 “왜,어디로”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약 50여 차례에 걸쳐 전 부족 8천여 명은 죽음의 행진 끝에 보스크 레돈도 근방의 섬너 요새로 가야했다. 나바호 족들은 긴 여정중 일부는 설사와 추위, 때로는 더위 그리고 갈증과 부실한 식사로 죽어가고 행렬에 뒤쳐진 어린이는 타부족에 의해 납치된 후 노예로 팔려나갔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노약자는 감시하는 병사들의 총소리와 함께 더 이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병사들은 오직 “앞으로 전진” 소리만 외쳐댔다. 1864년 이렇게 시작된 보스크 레돈도 (서반아말로 ‘둥근 나무숲’)로 가는 나바호 족의 일명 “멀고도 먼 길”-The Long Walk-로 8천여명의 나바호 족과 500여명의 메스칼레오 아파치족은 풀 한포기 자랄 수 없고 마실 물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온통 붉기만 한 죽음의 땅에서 기아와 절망에서 몸을 떨었다. 그리고 2년후 나바호 족들은 끈질긴 투쟁끝에 1868년 6월 다시 멀고도 먼 6백리 길을 환호를 지르며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너른 대지에 눈을 둔다

대지를  바라만 보아도 행복해서

웃음지으면 

대지도 나를 바라보고 웃는다

행복에 겨운 나, 사뿐히 땅을 밟고 걸어나간다.”

-나바호 인디안의 노래-

나바호 인디안들은 이처럼 자신을 길러준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자연을 칭송하며 살아왔다. 사냥과 농사를 지으며 나바호 부족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오늘날의 아리조나주 북동부지역과 유타주 일부, 그리고 콜로라도와 뉴멕시코 일부의 수백만 에이커를 아우르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대지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나바호 부족들은 대지를 “디네타”(Dinetah)라고 부르며 자신의 전후좌우 그리고 아래,위에 있는 자연을 존중하고 칭송하며 살아왔다.

15세기경 캐나다에서 북미주로 이주

나바호 족은 본래 춥고 음산한 시베리아 벌판에서 살다가 사냥감을 따라 어찌하다 알라스카를 거쳐 캐나다 로키산맥 자락 아타바스카 호수 근방까지 흘러들었다. 아파치 인디안과 함께 아타파스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춥고 수목이 울창한 캐나다에서 다시 사냥감을 쫓아 좀더 살기가 수월한 북미주 콜로라도 동쪽 대평원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강한 키오와 인디안과  코만치 인디안에 밀려 자신들보다 약한 원주민 부족들을 밀어내고 서기 1,000여년 내지 1,500여년경 아리조나 주 오늘의 보호구역 근방에 자신들의 터전을 마련했다. 실제 나바호 와 아파치 부족은 북미주 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인들보다 이땅에 정착한 세월이 그리 길지않다.

나바호 부족은 스스로 자신들을 유일하게 “사람” 즉 디네(Dineh)라고 불렀다. 이후 스페인들은 이들 “사람”을 대신  나바호(Navajo)라고 불렀다. 나바호 라는 말은 본래 근처에 사는 테와 인디안과 쥬니 인디안들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쥬니 인디안들은 사납고 용맹스런 “사람”을 아파치 즉 자신을 해치는 “적”(Apachu)이라고 불렀다. 테와 인디안들은 쥬니 인디안들의 말과 합쳐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들을 “농작물이 자라는 땅 나바후(Navaju)에 사는 적”이라는 아파추 드 나바후(Apachu de Navaju)라고 불렀다. 이후 스페인들은 앞에있는 아파추라는 말을 생략하고 나바호라고 불러 이들 부족응 나바호라고 부르게되었다. 

나바호는 농사짓는 땅에 사는 ‘적’이라는 말에서 유래

북미주 대륙 서남쪽 건조한 땅에 흘러든 나바호들은 동쪽으로는 브라나스 피크, 서쪽으로는 샌 프란시스코 피크, 남쪽으로는 마운트 테일러, 그리고 북쪽은 헤스페루스 네곳을 영산으로 삼고 그 경계안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암벽에 버려진 동굴이나 벼랑 한편에 돌을 쌓고 나무가지로 하늘을 가려 거처를 마련하거나 나무기둥 위에 풀과 나무가지 그리고 짐승가죽을 둘러 지붕을 삼고 살았다. 짐승가죽으로 몸을 가린채  남자들은 돌이나 날카로운 나무조각으로 창이나 활을 만들어 사냥을 나가면 여인네들은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들이나 산에 올라 나무열매나 풀뿌리를 캐어 양식으로삼았다.

점차 주변환경에 익숙해진 나바호들은 인근에 미리 터를 잡고 사는 이웃 부족을 쳐들어가 옥수수나 콩, 호박같은 양식을 약탈해 오기도 했다. 또한 나바호들은 북쪽지역에 사는 유트족이나 인근의 프에블로들 그리고 멀리 리오 그란데까지 진출하여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거나 약탈하며 살아왔다.

나바호들은 또한 이웃 부족과 전쟁을 통해 여인네들을 납치해다 아내로 삼았다. 졸지에 나바호 족의 아내가 된 여인네들은 살아가면서 나바호들에게 농사짓는 법이나 목화로 길쌈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호피 인디안 여인들은 나바호들에게 아름다운 토기를 빗는 법을 가르쳤다. 점차 나바호들은  짐승가죽에서 면으로 된 세련된 옷을 입게되고 나무뿌리나 열매에서 옥수수나 콩, 호박이 주식이되면서 사냥에서 점차 농경생활을 하는 나바호족으로 변해갔다. 이들의 사촌격인 아파치들은 농경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산과 황무지를 헤매거나 인근 부족을 약탈하는 “적” 아파치로 남게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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