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사막의 배’ 낙타, 아리조나 황야를 달리다(10) 콜로라도 강 건너 캘리포니아까지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new1.jpg

탐험대는 가파른 절벽을 내려올때는 밧줄에 마차를 연결한 후 대원 말,노새가 모두가  매달려 육중한 마차를  끌어내렸다. 대원과 짐승들의 고함과 비명 소리는 태초 이래 침묵에 묻혀있던 계곡에 울려퍼졌다. 이처럼 탐험대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탐험대는 콜로라도 강을 향해 한발 한발 서쪽으로 길을 내며 나아갔다. 다행히 몇차례 만난 인디안들은  비교적 우호적이어서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신선한 과일을 들고와  유혹하는 모하비 인디안

10월17일 탐험대가 자리잡은 야영지에 한 떼의 모하비 인디안들이 몰려왔다. 탐험대를 둘러싼 인디안들은 외모도 훤칠하고 몸집은 장대했다. 이들은 탐험대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어떤 인디안은 백인 병사와 접촉한 적이 있는지 비어얼에게 거수경례까지 하면서 편안하게 대했다.

다음 날 모하비 인디안들은 방금 딴 신선한 멜론과 옥수수, 콩을 들고 거래하자고 찾아왔다. 이들은 탐험대들의 낡은 셔츠나 손수건같은 하찮은 물건을 원했다. 대원들이 신선한 과일과 곡식에 눈을 반짝이자 영리한 모하비 인디안들은 금방 거래에 솜씨를 보였다.

낙타가 수영을 전혀 못한다고 생각한 비어얼에게 콜로라도 강은 크나큰 부담이었다. 강가로 낙타를 끌고 가자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압도당한 낙타는 한사코 강물에 들어서기를 거부했다. 비어얼은 다시 몸집이 거대한 낙타 한 마리를 물속으로 밀어넣자 이 낙타는 흐르는 강물을 유유히 헤염쳐 건너 편 제방쪽으로 나아갔다. 낙타가 헤엄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비어얼은 나머지 낙타를 밧줄로 연결한 후 무사히 콜로라도 강을 건너 건너편 제방에 올라섰다. 그러나 말 2 마리와 노새 10 마리는 강물에 떠밀려 하류로 떠내려갔다. 탐험일지를 꼼꼼히 기록한 스테이시는 이 사건을 간결하게 “떠내려간 말과 노새는 인디안의 먹이가 되었다”라고 기록했다.

콜로라도 강을 헤엄쳐  건너다 

강을 건넌 탐험대는 오늘의 콜로라도 강 근방에 있는 니들 (Needles) 마을   15 마일 지점에 이르러 유마 요새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캘리포니아 내에 있는 테혼 (Tejon) 요새에서 부식을 지원받기로 했다. 테혼 요새는 1854년 6월4일 산 세바스티안 인디안 보호구역에 세워졌다. 이 요새의 보병과 용 기병대는 영구막사 대신 텐트에서 생활했다. 비어얼은 캘리포니아 인디안 대리인으로 근무할때 이 요새 근방에 목장을 마련하고 테혼 목장이라고 불렀다. 

비어얼은 탐험대를 둘로 나누어 자신은 털빛이 눈처럼 하얀 ‘서이드’라고 불리는 낙타를 탔다. 그리고  몰이꾼 하이-홀리(Hi-Jolly)는 툴리라는 낙타를 타고 말을 탄 대원 8명과 함께 카혼 패스를 지나 산 버나디노를 거쳐 1857년 11월9일 로스 안젤레스에 도착했다. 나머지 대원들과 마차와 낙타는 테혼 요새로 향했다. 이후 비어얼은 낙타가 추위와 눈에 얼마나 강한가를 실험하기위해 시에라 네바다 근방의 눈덮힌 자신의 목장 근처로 낙타를 보냈다. 낙타는 눈과 추위에도 거뜬히 버텼다. 대신 군수품을 싣고 테혼 요새로 향하다 눈과 얼음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군용마차와 노새 6마리는 낙타가 달려가 구해주었다.

1858년 1월6일 비어얼 대장은 자신들이 측량한 마차 길이 겨울철에는 운행이 어떤가 살펴보기 위해 직접 나섰다. 비어얼은 낙타 14 마리와 대원 20명을 이끌고 로스 엔젤레스까지 겨울길을 답사했다. 1월25일자 샌 프란시스코 이브닝 블리틴 신문은 낙타가 작은 촌락인  LA 시내를 활보한 이야기를 “지난 주말 비어얼 대장이 이끄는  14마리 낙타가 시내 한복판을 활보하자 도시는 금방 동양의 어느 도시처럽 변했다. 써커스 단에서나 볼 수 있는  괴이한 모습의 낙타를 탐험대원들이 말처럼 타고 시내를 지나갔다. 그러나 낙타는 무척 양순해보였다”고 보도했다.

문명의 오지 콜로라도 강을 거슬러 온 증기선 

1858년 1월28일 탐험대는 모하비 사막을 지나 황량한 미지의 대서부를 관통하는 콜로라도 강으로 향했다. 한 겨울의 콜로라도 강 일대의 추위는 매서웠다. 비어얼은 “오직 야만인만이 버티고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콜로라도 강에서 ‘현대 문명의 상징’이라는 증기선을 보았다”라고 후에 기록했다. 비어얼은 1월23일 존슨 (George Alonso Johson) 선장이 상류까지 몰고와 제방 근처에 잠시 정박한  증기선 ‘제너럴 제섭호를 만났다.

존슨 선장은 1853년부터 유마 요새와 캘리포니아 만 사이를 왕복하는 증기선을 띄웠다. 1857년 3월 유타 연방영토의 몰몬교도들과 신교도 사이에 분쟁이 일자 이를 수습하러 출동한 합중국 군대에 몰몬교도들이 저항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연방정부의 한 대리인은 존슨 선장에게 출동한 병사들에게 군수품을 원활하게 보급하기위해 ‘제너럴 제섭’ 호를 가능한 한 강 상류까지 운항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존슨 선장은 대신 이 증기선을 매월 3,500 달러에 정부가 전세내어 사용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국방성은 그의 요구가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75,000 달러를 들여 필라델피아에서 ‘익스플러어’를 제작한 후 분해하여 캘리포니아의 ‘호어언’에 가져와 다시 조립하여 운항하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존슨은 정부의 보조금 없이 시험적으로 콜로라도 강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왔다가 비어얼과 낙타및 탐험대원들을  우연스레 조우했다.

증기선과  낙타의 우연한 조우

비어얼이 증기선이 정박한 제방에 막 도착했을 때 증기선은 밧줄을 감고 막 출발중이었다. 콜로라도 강 제방에는 이 괴이한 첨단 문명인 증기선을 보려는 모하비 인디안들로 근방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더구나 비어얼이 중동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괴이스런 모습의 낙타를 몰고나타나자 모하비 인디안들은 또한번 놀랐다.

잠시후 증기선은 배 뒤편에 매달린 외륜을 힘차게 돌리면서 서서히 강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구슬픈  뱃고동소리를 길게 울리면서. 어쩌면 콜로라도 강 계곡에 울리는  뱃고동소리는 강가에 모여사는 인디안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서러운 조종일지도 모른다고 비어얼은 일지에 기록했다. 

우연히 만난 증기선과 작별한 후 비어얼은 타고온  낙타 ‘서이드’와 하이- 졸리를  테혼 요새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비어얼은 계속 남은 대원과 함께 동쪽으로 향해 강을 건넜다. 탐험대가 개척한 마차길은 벌써 인디안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2월19일 비어얼과 20명의 대원은 아리조나 북쪽지역에 몰아치는 폭설을 뚫고 7개월 전 측량을 시작하며 이 사실을 음각으로 남긴 바위가 있는 주니 마을 근처의 ‘엘 모로’에 무사히 도착했다. 비어얼과 낙타, 그리고 대원들의 땀으로 개척한 마차길은 완벽했다. 비어얼은 자신이 주도했던 탐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자랑스레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거의 1년에 걸친 대서부에서의 나의 투쟁은 끝났다. 나는 대원들을 이끌고 사나운 인디안들이 지배하는 미지의 땅을 지나 멕시코 만에서 태평양까지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나의 임무를 완수했다. 나는 낙타가 얼마나 유용한가를 시험했고 태평양 연안까지 도로 이정표를 마련했으며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장장 4,000마일을 달렸다.”

4천 마일을 관통하는 마차길을 완성

1858년 4월 비어얼은 워싱턴에 도착하여 그간 서부 35도선에 대한 마차길 측량 결과를 프로이드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다. 비어얼의 업무 수행에 만족한 프로이드 장관은 비어얼의 보고서를 병참감 제섭 (Thomas S. Jessup) 장군에게 보냈다. 이를 충분히 검토한 제섭 장군은 다시 웨인 소령에게 보냈다. 캠프 버어디의 낙타 부대를 떠나 이제는 필라델피아의 피복창에 근무하는 웨인 소령은 비어얼의 마차길 측량이라는 서부 대장정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비어얼이 낙타를 데리고 서부 탐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어느새 텍사스의 캠프 버어디 요새에서 낙타부대를 지휘하는 파아머 대위에게도 전해졌다. 그때까지도 파아머 대위는 거의 1만여 달러나 남아있는 낙타자금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지 못해 낙타부대에 고용된 종업원의 임금도 지불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파머 대위는 1857년 5월20일과  6월6일에 이어 7월31일 계속해서 상부에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게으른 상급자들은 그리 급할 것이 없었다.

한편 캠프 버어디의 낙타부대에서는 낙타우리를 공사하고 노임을 받지못한 인부들은 체불된 임금을 헐값에 고리대금업자에게 넘기고 급전을 쓰는가하면 중동에서 실려온 하이-졸리같은 낙타몰이꾼들은 갈아입을 옷을 마련하지 못해 거의 반나상태로 지내야했다.

new1.jpg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