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사막의 배’ 낙타, 아리조나 황야를 달리다(2) 노새와 경쟁에서 승리한 낙타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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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근세 미 대륙에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1701년. 크라운 실드라는 선장이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에 낙타 한쌍을 싣고와 마사추세트의 살렘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구경시킨 것이 처음이다. 이후 한세기 반동안 몇차례 상인들이 낙타를 들여와 서커스단 등에서 곡예용으로 이용하였으나  신대륙에서 낙타는 더 이상 사육되지 않았다. 

원래 4천만 년 전 옛날에는 북미주 대륙이 낙타의 원산지였다. 낙타는 북미주에서 중국, 시베리아,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페루 등 남미주 대륙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남미에는 지금도 알파카, 라마같은 변종이 남아있다. 그러나 북미주에는 빙하기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낙타들은 멸종되어 당시 낙타의 존재는 이따금 발견되는 화석이 대신해 주고있다.

짐싣는쌍봉 낙타, 빨리 달리는 단봉낙타

북미주에서 세계 각 처로 퍼져나간 낙타들은 그 지역에서 생존할 수있게 진화하였다. 중국이나 시베리아 대륙으로 흘러든 낙타는 다리가 짧은 대신 털이 많고 길뿐만 아니라 힘이 좋아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있는 등에 혹이 두개 나온 쌍봉낙타 즉 박트리안 (Bactrian)종이 되었다. 이 낙타는 섭씨 영하 40도에서도 너끈히 버틸 수 있다. 한편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으로 흘러든 낙타는 털이 짧고 다리가 긴 대신 빠르고 오래 걸을 수있는 등에 혹이 하나인 단봉낙타 즉 드러머데리(Dromedary)종이 되었다.

대부분 낙타는 키가 7피트, 서 있을 때 길이는 10피트이고 체중은 1천 파운드에 달한다. 수명은 30년내지 40년. 낙타의 털은 황갈색에서 진한 갈색, 어떤 낙타는 하얀 색깔이다. 화물운송에 적합한  쌍봉낙타는 300파운드를 싣고 하루 30마일 이상 걷는다. 그러나 다리가 긴 단봉낙타는 짐을 많이 싣지 못하는 대신 하루 100마일을 달린다. 단봉낙타는 암놈 여러 마리를 거느린다.

낙타는 태생적으로 사막같은 황무지에서 생존하게 진화되었다. 낙타의 긴 눈썹은  중동 등 더운 지방의 직사광선에서 눈을 보호하고 눈썹도 두 줄로 되어있어 모래나 먼지가 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낙타의 발달된 후각은 사막이나 황무지에서 물 냄새를 잘 맡아 다른 동물보다 물을 잘 찾아낸다. 낙타는 또한 맹물보다는 소금기가 있는 짠물을 좋아하고 아무 물이나 탈없이 잘 마신다. 낙타는 여러 개의 위장을 가지고있어 한꺼번에 25갤론의 물을 마신후 여러 개의 위장에 저장한다. 낙타의 위벽은 특수한 세포로 구성되어있어 그 세포에 저장된  물로  3-4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3,4일 물마시지않아도 생존가능

낙타 등에 달려있는 혹은 물주머니가 아니고 지방층으로 갈증이 날 때는 지방층을 분해하여 스스로 수분을 취한다.

낙타의 입안 표피는 두껍고 질기다. 낙타는 사막이나 황무지에서 가시투성이의 관목을 먹어도 입안에는 상처가 나지않아 곡물을 먹지않고도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다. 

낙타의 발가락은 두 개다. 발바닥에는 둥근 모양의 살덩어리가 달려있어 걸을때마다 이 살덩어리가 충격을 흡수한다. 이러한 발의 구조는 사막을 지날 때 낙타의 발이 모래에 빠지지 않아 발의 피로를 덜을 수 있다. 대신 낙타는 돌이 많은 자갈 길에는 약해 발에 상처가 난다. 이 처럼 낙타는 황무지나 사막같은 지형에 알맞게 신체가 발달되었다. 이러한 낙타의 신체구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때는 약 3백만 마리의 낙타들이 전선에 동원되었다. 또한 세계 제2차 대전 때는 독일군에서 시베리아 남부 여러 곳에서 전투중인 탱크에 약 5만 마리의 낙타를 이용하여 연료를 보급했다.

‘황무지에 강한 낙타를 활용하자’

1847년 3월 워싱톤 D.C.의 병참감실로 전보된 크로스만은 병참 장교 웨인 (Henry C. Wayne: 1818, 9.15~1883, 3.15) 소령과 교류한다. 조오지아 주 사반나 태생으로 미 육군 사관학교 출신의 웨인 소령은 멕시코 전쟁에 참전한 역전의 용사. 종전 후 워싱턴 D.C.의 병참감실에 배속된 웨인은 이후 크로스만 으로부터 낙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후 웨인은 열렬한 낙타 우호론자가 된다. 우연한 기회에 미시시피 주 출신 상원의원이며 상원 국방위원장인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1808,6.3~1889.12 .6)를 만난 웨인 소령은 데이비스를 설득하여 미 육군에 낙타부대를 창설토록한다. 데이비스는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남부연맹의 대통령이 된다.

켄터키 주의 토드(Todd)카운티에서 태어난 데이비스는 가족이 미시시피 주로 이주하자 농장을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미시시피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어려서는 가톨릭 교의 사제가 되려했으나 미 육군 사관하교를 나와 장교가 되고 블랙 호크 전투에 참전하여 용맹을 떨친다.

1835년 결혼을 반대하는 상사의 딸 사라(Sara)와 결혼 후 고향으로 내려와 농장을 경영했으나 얼마후 사라는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데이비스는 1845년 고향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고 멕시코와 전쟁이 벌어지자 부에나 비스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그여세로 상원에 당선된다. 이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다 낙선된 데이비스는 친구 프랭클린 피어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1853년 3월7일 국방장관에 임명된다.

데이비스보다 먼저 카이로 총영사를 역임하고 중동에서 23년간 생활하고 귀국한 그리돈(George R. Griddon)은 중동에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서부의 황무지에서는 낙타를 활용하여 군수품을 수송하자고 정부측에 건의한다. 그리돈은 미 상원 국방위원회에 2만 달러의 예산을 확보하여 낙타 50마리, 그리고 병사들에게 낙타 다루는 방법을 가르칠 몰이꾼 50명을 중동에서 데려오자고 했다. 그러나 그의 뜻은 빛을 보지못했다.

낙타 예찬론자가 된 국방장관

국방장관에 임명된 데이비스는 자신을 낙타예찬론자로 만든 웨인소령에게 상원의원들을 설복하여 낙타구입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훌륭한 연설문을 작성하도록 지시한다. 웨인 소령은 “미 연방에 새로 편입된 2백만 스퀘어 마일의 대 서부에서 낙타가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운송수단이 될 수 있나”를 누누히 역설하고 “호전적인 인디안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자면 기동력이 빠른 낙타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상원의원들은 데이비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 중앙의 유력 언론들이 낙타문제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일반 국민들도 자연 낙타활용방안에 호의적으로 변했다. 튀니지아의 총영사를 지낸 히프(Samuel D. Heap)의 아들 해리스 히프는 휴가중인 비얼(Edward F.Beale)과 함께 미주리에서 캘리포니아를 여행한 후  여행기를 출간했다. 히프는 여행기 말미에 “이처럼 거친 황야에 만약 낙타가 있었으면 얼마나 요긴했을까”라고 회상하고 자신이 튀니지아에서 살 때 경험한 낙타의 편리성을 비롯하여 낙타의 생태및 장점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의 여행기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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