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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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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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사막의 배' 낙타, 아리조나 황야를 달리다(9) 코만치에 희생된 이주자 무덤을 지나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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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토니오의 야영지를 나선 탐험대는 황무지에 짙게 깔린 안개를 뚫고 아리조나를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덜커덩 대며 굴러가는 군용마차 뒤를 따라 짐을 실은 25 마리의 낙타도 묵묵히 평원을 걸었다. 그러나 약 일년을 낙타우리에서 뒹굴며 편한 생활에 익숙해진 낙타들은 제대로 속도를 내지못했다. 날이 다 저물 때까지 탐험대는 겨우 18마일을 전진했다. 그리고 낙타는 뒤늦게 마차행렬에 합류했다. 비어얼에 선발되어 탐험대원이 된 젊은 스테이시는 비실거리는 낙타를 보고 이후 “고향에서 과일이나 와인을 나르던 낙타가 어떻게 황무지에서 무거운 군수물자를 나늘 수 있겠는가”라고 낙타의 능력에 회의를 나타냈다. 


우리에서 일년 뒹굴던 낙타 속도를 못내


출발 다음날인 6월26일 낙타 두 마리가 병이나 제대로 걷지못하자 낙타에 실었던 짐을 마차에 옮겨싣는 촌극마저 생겼다. 이 광경을 보고  스테이시는 “자신의 예측이 과연 옳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후 낙타는 기력을 회복했다. 콩이나 옥수수같은 곡물은 거의 입에 대지않는 낙타는 지천으로 깔린 머스퀴토 줄기나 잎을 뜯어먹으며 점차 걸음이 빨라지고 원기가 되살아나 탐험대는 6월30일 오늘날의 텍사스 블라케빌 마을인  클라크 요새에 도착했다.

7월4일 대륙에 비가 내리자 황무지는 온통 수렁으로 변했다. 태양이 사라진 끝도 없이 펼쳐진 대륙의 하늘에는 억수같은 비가 먹장 구름을 뚫고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요란스레 하늘을 가를 때마다 놀란 노새에 매달린 마차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황무지에는  빗소리, 동물들의 울부짖음 소리, 대원들의 고함소리로 가득했다. 이러한 소란속에서도 낙타는 깊이 빠지는 수렁을 아랑곳 하지않고 묵묵히 걸어나갔다.

거친 자갈길에서 낙타는 그 진가를 드러냈다. 텍사스의 폭염에 달구어진 자갈길을 걸으면서 비어얼이 데리고 온 강아지 조차 발바닥이 뜨겁고 아프다고 비어얼을 바라보며 마차에 태워달라고 애걸하는 눈빛을 보였다. 노새나 말도 얼마를 가지못해 말굽이 모두 상해버려 새로 갈아주어야 했다. 그러나 낙타 만은 아무 탈없이 편안하게 잘도 걸었다.


길가에 즐비한  이주자들의   무덤


당시만해도 너른 대서부의 진정한 주인은 코만치였다. 군은 곳곳에 요새를 세우고 사나운 인디안들의 공격을 억제했으나 그래도 코만치들은 타지역으로 이주하는 여행자들을 약탈하고 살해했다. 비어얼과 탐험대원들은 길 가에 세워진 세월의 풍상에 삭은 낡은 십자가 뒤로 한웅큼 돌무더기로 남은 희생자들의 무덤을 바라보며 서부로, 서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6월16일 탐험대원들이 야영을 준비할 때 광활한 황무지 저편에서 황혼을 등진 말을 탄 코만치 무리들이 지그시 탐험대들을 바라볼 때 대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다행히 코만치들의 공격은 없었다. 그래도 비어얼은 엄하게 주위를 경계했다.

탐험대가 엘 파소로 가는 도중 강하류 근처에 있는 산 엘리자리오 마을에 도착했을 때 처음보는 괴이한 모습의 낙타를 보려고 멕시칸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들이 즐겨먹는 그리즈우드 관목을 보고 낙타들이 달려들자 이를 구경하려는 멕시칸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랐다. 낙타는 또한 들장미 덤풀 사이에 자란 가시투성이의 스큐루 빈을 한입에 잡아챈 후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줄기만 뱉어내고 게걸스럽게 먹었다. 멕시칸들은 이런 광경을 재미있어 하며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엘 파소에 도착한 비어얼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낙타 몰이꾼 일명 투르크와 그릭스를 보고 놀랬다. 밀린 월급을 받지못했다고 동행을 거부했던 두 낙타 몰이꾼은 탐험대가 떠난 후 마음을 바꾸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향에서 당장 이슬을 가릴 곳도 없는 두 사람은 그래도 의지할 곳은 자신들을 필요로하는 탐험대와 낙타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탐험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탐험대가 지날 엘 파소에서 비어얼을 기다렸다. 비어얼은 7월24일자 프로이드 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두 사람의 낙타에 대한 지식은 뉴욕사람들이 들소에 대해 아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간 낙타를 돌보던 대원들이 투르크와 그릭스는 낙타의 얼굴만 보아도 어느 낙타가 가장 양순하고 어느 낙타가 벵골 산 호랑이처럼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대는지 안다”고 옹호하여 “어쨌든 고용했다”고 했다. 


동행거부했던 낙타몰이꾼 다시 합류


 뉴멕시코의 알부퀘끄에 도착한 비어얼은 알부퀘끄 2마일 지점에 야영장을 마련하고 산타 페 지역군 사령관에게 도착을 보고한 후 보급품 추가 지원과 목적지까지 탐험대의 호위를 협의하고 다음날인 8월12일  야영지로 돌아왔다. 

8월13일 “시드”라고 불리우는 순백색의 우람한 낙타를 탄 비어얼은 로링 대령이 이끄는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목적지 디화이언스 요새가 있는 35도선을 따라 탐험대를 내보냈다. 드디어 탐험대는 디화이언스 요새에 여장을 풀고 콜로라도 강 유마 요새까지 마차길 측량에 나섰다. 다행히 탐험대는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 무자비해진 코만치, 그리고 아파치로부터 단 한 번도  공격을 당하지 않고 아리조나에 무사히 도착했다.

1851년 9월15일 섬너 장군은 기름진 초원에서 가축을 기르며 살아오던 나바호 족들을 몰아내고 가축을 도륙한 후 이곳에 디화이넌스 요새를 세웠다.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빼았긴   나바호 족들은 이를 되찾기 위해1856년, 1860년 대규모 전투를 벌인다. 이후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1864년 8월 칼튼 장군은 킽 칼슨에게 명령하여 이 일대의 나바호 족 수천명을 450마일 거리의  뉴 멕시코 섬너 요새로 53 차례에 걸쳐 나누어 강제로 끌고간다. 나바호 족들은 멀고먼 황무지로 끌려가면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이후 디화이언스 요새는 폐쇄되고 요새가가 있던  자리는 나바호족 보호구역에 편입된다.

비어얼의 탐험대는 나바호 족들의 대규모 공격이 있은 다음 해에 이곳을 찾게되었다. 이제 비어얼 앞에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그가 책임지어야 할 대원들의 생명 그리고 완수해야할 임무뿐이었다.

8월29일 비어얼은 쥬니 인디안 마을에서 탐험대와 만나 원주민들로부터 말과 노새에게 먹일 콩과 옥수수를 샀다. 그리고 낙타마다 700파운드씩 군수품을 싣고 작은 콜로라도 강을 건너 오늘의 홀브르크에서 서쪽으로 5마일 지점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9월 5일 아리조나 사막의 밤은 별들은 유난스레 총총하게 빛나고 싸늘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전혀 먹지않는 콩과 옥수수를 무겁게 싣고도 낙타는 귀공자같은 모습으로 전혀 불편함이 없이 묵묵히 서있었다. 비어얼은 이후 “우리는 낙타가 곁에 있는지 조차 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안내인 실수로 죽음의 땅에서  36시간


9월중순경 안내인의 실수로 탐험대는 물 한 방울 없고 풀 한포기도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 막다른 계곡에 갇혔다. 비어얼은 탐험대가 물을 구하려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땅을 무려 32마일을 달려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비어얼은 권총을 안내인에게 들이대었으나 차마 쏘지는 못했다. 비어얼은 대원 두 사람을 낙타에 태워 동쪽으로 달려 물을 찾아보라고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대원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며 물을 찾았다.

비어얼이 대원과 함께 야영장에 도착하고나서 탐험대는 작은 콜로라도 강과는 거친 황무지를 끼고 16마일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의 하루반을 전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말과 노새는 거의 미친듯 날뛰었다. 이후 작은 물웅덩이를 발견하자 모두들 물웅덩이로 몰려들어 주둥이를 들여밀고 체신머리없이 물을 마셔댔다. 그러나 낙타 만은 마차 곁에 서서 미친듯 물을 마셔대는 말과 노새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지그시 내려다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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