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나바호족의 약탈보다 더 큰 분란이 서부변방에 몰아닥쳤다. 링컨의 노예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남부의 조오지아, 루이지애나를 비롯하여 텍사스 등 여러 주가 연방에서 탈퇴하자 뉴 멕시코등 서부에 주둔하던 병사들은 태어난 고향을 향해 푸른 군복을 벗어버리고 회색군복으로 갈아입고 남부연맹군에 가담했다. 뉴 멕시코 주둔군 사령관 폰틀로이 대령도 북군의 사령관직을 사임하고 남군으로 달려가자 후임으로 로링 대령이 부임했으나 그도 6개월만에 남군이 되면서 나바호족과 화평조약을 맺고 아파치 원정작전에 나섰던 캔비 대령이 뉴 멕시칸 주둔군 사령관이 되었다. 한편 캔비 대령의 매제이며 캔비 대령과 함께 나바호 원정작전을 벌인 시블리 중령도 회색군복으로 갈아입고 남군의 준장 계급장을 달고 이후 캔비 대령과 결전을 벌이게 된다.
요새의 병사들이 동부지역의 전장으로 속속 떠나면서 폰틀로이 대령이 남군이 되어버린 요새의 이름도 리욘(Lyon)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았다. 그리고 텍사스로 남군의 진격을 막기위해 떠난 캔비 대령의 후임으로 차베스 (Jose Francisco Chavez) 대령이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새로 간판을 바꾸어 단 리욘 요새의 주변은 뉴 멕시칸 들과 나바호들이 서로 빼앗는 약탈은 있어도 그런대로 평온을 유지했다.
그런대로 화평을 유지한 요새주변
1861년 9월로 접어든 나바호 땅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다. 하늘만큼 높이 솟은 붉은 바위들이 파란 하늘에 잠겨있는 청명한 어느 가을 날, 요새의 병사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요새 내 한편에 자리잡은 보조의사겸 종군 상인 카바노프(Finis Kavanaugh)가 운영하는 매점에는 병사들과 인근 정착민들이 함께 자리를 한 채 열을 내며 무언가를 두고 토론을 벌리고 있었다. 인근 정착민들은 요새 내에 있는 이 매점을 사교장 겸 마을회관으로 이용했다.
이날도 종군 매점 한켠에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회색 머리를 한 카바노프를 비롯하여 A중대의 세나 (Jose B.Sena) 대위, 연대부관 아베이투(Ancieto Abeytu) 대위와 지역사회의 유지 마뉴엘 피노와 라파엘 오리츠가 투박한 테이블에 자리를 함께한 채 연신 카바노프의 켄터키산 순종 경주마에 대해 열을 내고있었다. 매점의 벽틈으로 새어든 한줄기 햇살은 담배연기와 소음으로 가득찬 매점안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었다.
세나대위와 일행의 대화주제는 카바노프의 켄터키 산 순종 말보다 더 빠른 말은 이 부근에 전혀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모두들 맥주를 입에 털어놓고 탁자를 치면서 동의했다. 한편에서는 사병들도 무슨 주제인지를 가지고 열을 내는 등 변방의 오후는 평화스러웠다.
말달리기 시합을 제의하는 나바호 대추장
삐걱하고 출입문이 소리를 내면서 한줄기 빛살과 함께 건장한 체구의 나바호 부족장 마뉴엘리토가 5, 6명의 전사들과 함께 침침한 매점 안에 들어섰다. 위스키와 맥주 잔을 놓고 대화에 열을 올리던 시선들이 일제히 마뉴엘리토의 일행에게 쏠렸으나 이 거구의 나바호는 뭇시선을 무시한 채 매점주인 카바노프에게 “사령관 차베스와 면담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다. 요새의 보조의사를 겸하고 있는 카바노프는 “사령관은 심한 몸살로 면담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마뉴엘리토는 세나 대위에게 밖에 나가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의했다.
마뉴엘리토와 함께 밖으로 나갔던 세나 대위는 홀안으로 들어서면서 마뉴엘리토가 카바노프의 켄터키 산 경주마와 경마를 제의했다고 말했다. 세나의 이같은 말에 매점 안에 있던 병사와 정착민들은 모두 환호했다.
병사들과 마뉴엘리토 측에서는 즉시 2주후 나바호들이 즐겨 말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요새 밖 공터에서 시합을 갖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백인 측에서는 요새 내에서 제일 말을 잘달린다는 라파엘 중위가. 나바호 측에서는 일명 권총알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사 대장 겸 부족장 마뉴엘리토가 각각 기수로 나서기로 했다.
시합에 모든걸 도박으로 걸다
시합이 열리는 이주 동안 양측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백인 측에서는 켄터키 순종에게 좋아하는 당근을 무제한 제공하는가하면 병사들은 교대로 말의 근육을 풀어주고 샤워를 시키는 등 법썩을 떨었다. 나바호들도 부산을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바호들은 많은 말과 노새 그리고 모포와 사슴가죽 등을 백인들에게 내기로 걸었다. 그리고 매일밤 주술사를 앞세워 나무로 깎은 작은 말 두마리를 앞에 놓고 경기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흔들었다.
시합날인 9월22일 새벽 6시부터 나바호들은 축제일을 맞은 듯 곱게 단장하고 시합장에 모여들었다. 여인네들은 온갖 구슬로 한껏 멋을 내고 남자들은 새의 깃털을 머리에 꽂아 위엄을 더한 채 내기에 건 말과 노새, 그리고 사슴가죽 모포를 들고 나왔다. 정오가 가까울 무렵 경기장 주변에는 약 2천여 명의 나바호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하는 마뉴엘 피노는 요새의 한쪽 모퉁이에 넓직한 우리를 마련하고 입구에 서서 나바호들이나 병사들이 내기에 건 물건을 받았다. 피노는 말을 내기에 걸면 상대방의 말과 말을 함께 묶고 이름을 적은 종이를 매달아 우리에 넣었다. 이렇게 내기에 건 모든 물품은 상대 물품과 함께 이름을 적어 우리에 집어넣었다. 나바호들은 부족대항 말달리기를 하면서 정식 시합이 벌어지는 12시를 기다렸다.
경기장 주변에 근 2천여명이 운집
날씨는 맑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없이 호수처럼 푸르렀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에 가끔씩 전나무가 잎을 흔들고 멀리 솟은 붉은 바위에는 정오의 햇살이 번뜩였다.
12시가 되자 백인 측에서는 라파엘 중위가 미끈하게 잘빠진 켄터키를 타고 유유히 출발선에 나타나자 경계밖에 서서 라파엘을 응원하던 병사들은 모자를 하늘높이 날리며 환호했다. 곧이어 권총알 마뉴엘리토가 밤색 야생마를 타고 등장하자 수천명의 나바호들은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심판의 신호없이 두 기수는 두 마리 말이 머리를 나란히 했을 때 출발하기로 했다.
나란히 선 두 말은 좀처럼 출발하지 못했다. 세 차례나 머리를 맞대다 네 번만에 머리가 일치하자 두 말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러나 권총알 마뉴엘리토가 탄 야생마는 출발하자마자 경주로를 벗어나 갓길로 달려나갔다. 야생마의 고삐는 순간 끊어져 마뉴엘리토는 전혀 달리는 말을 조정할 수가 없었다. 마뉴엘리토가 허둥댈 때 라파엘이 모는 켄터키는 결승점에 도착했고 심판 마뉴엘 피노는 재빨리 켄터키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마뉴엘리토의 야생마 고삐는 출발 직전 누군가가 날카로운 칼로 그어 살짝 잡아만 당겨도 끊어지게해 놓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바호들은 즉시 재시합을 요구했으나 내기에 이긴 병사들은 말이나 노새 등 내기에 건 물건을 들고 요새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요새의 문은 굳게 잠겼다.
항의하는 주민을 무차별 살해
백인들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나바호들은 다시 경기를 벌이자고 격렬히 항의하면서 요새 안으로 달아나는 병사들의 뒤를 따랐다. 마침 정문을 지키던 초병은 사태가 험악하게 돌아가자 공포를 쏘아대며 정문으로 몰려드는 나바호들을 저지했다. 요새 안의 병사들도 몰려드는 나바호에 놀라 완전 무장을 한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요새의 정문이 굳게 닫히자 화가 치민 한 나바호 전사가 정문을 밀치고 들어가려하자 놀란 초병은 나바호 전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전사는 그자리에서 죽었다.
당시 요새에 근무했던 백인장교 니콜라스 호트 대위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아낙네와 아이들까지 사방으로 도망치기에 바쁜 인디언들을 뒤쫓아가서 미군들은 총으로 찔러댔다. 나는 병사 20명을 이끌고 요새 동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끔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병사가 어린 아이 둘과 여자 하나를 찔러죽이려 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죽이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으나 그자는 힐끗 올려다보기만 하고 내말을 듣지않았다. …한편 요새에서는 차베스 대령이 당직 사관에게 대포를 쏘라고 야단이었다….” (디 브라운, 최준석 옮김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에서)
병사들의 무차별 학살로 나바호 족 여인네와 어린이를 포함하여 30여 명 이상이 살해되고 급기야 전 나바호 부족은 뉴 멕시코의 황량한 죽음의 땅 보스코 레돈도로 유배에 처하게 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