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기독칼럼] 십계명 14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jung ki won.jpg

출21:2-11은 노예에 관한 법을 다룬다. 왜 성경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일까?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면 당연히 비 인간적인 노예제도의 철폐를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잘못된 제도를 하나 하나 열거하며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기를 촉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기본 원칙을 가르친다. 노예제도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예를 노예로 보지 않고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며 노예제도를 제한하여 안식일에 똑같이 쉬게 하고 안식년인 7년째에는 자유의 몸이 되게 한다. 성경의 법은 당시 폭넓게 자리잡은 노예제도와 그 문화를 반영한다. 사람들은 노예를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했다.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노예에 상처를 입히면 물건에 손상을 입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상을 해야 하고 노예를 사고 팔 때 보증기간이 있어 기간 안에 문제가 발생시 노예를 돌려주고 돈을 환불 받을 수 있었다. 또 노예를 위한 보험을 들어 노예를 도둑질 당해 잃어버리거나 이상이 있을 때 보장받을 수 있다. 2절은 히브리 종을 산다는 말로 시작한다. 히브리(Hebrew)인 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종종 압제 하에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성경은 노예와 출애굽 사건을 연결시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달한다. 본문에 제 칠 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라며 나간다(Go out)는 동사를 사용한다. 나간다는 말은 노예상태에서 풀려 나는 것을 뜻하며 십계명 서문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는 문장에서도 같은 동사를 사용한다. 우리 모두는 악의 권세가 다스리는 애굽의 노예였다. 우리가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이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노예가 주인을 사랑하여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영원히 주인에게 속한 노예가 된다는 법이다. 주인은 그 노예를 재판장에게 데려가 문이나 문설주에서 송곳으로 귀를 뚫는다. 여기서 재판장은 하나님에게로 번역할 수 있어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행하는 의식으로 볼 수 있다. 자유의 몸에서 영원한 노예의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식을 행해야 한다. 아이러니컬하게 우리는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든지 또는 세상의 노예가 되든지의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위해 노예가 되어야 한다면 사도바울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살인 죄를 범하면 죽임을 당해야 하나 살인 동기에 따라 다르게 처리된다. 악의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 처벌을 피해 하나님께서 직접 지정하신 장소로 피신할 수 있다. 그 장소는 성소나 제단을 의미하며 후에 도피성으로 발전한다. 왕상1:49-53에 아도니아가 솔로몬으로부터 죽음을 면하기 위해 제단의 뿔을 잡자 사람을 시켜 제단에서 끌어낸다. 제단의 뿔을 잡는 것은 거룩한 제단을 더럽히는 행위로 간주된다. 왕상2:28-33에 요압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았다. 그가 제단에서 내려오라는 명령을 듣지 않자 솔로몬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쳐서 죽게 한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하나님께서 지정한 장소로 피신하더라도 목숨을 구할 수 없다. 14절에는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 것이라고 명령한다. 16절은 사람을 유괴하여 팔든지 자기 수하에 두는 경우에 받는 처벌을 기록하는데 이는 노예를 유괴하여 팔아먹는 경우를 지칭한다. 죽음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는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자에게도 해당된다(15, 17절). 저주한다는 말은 명예롭게 한다는 말의 반대이다. 삼상2:30에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멸시할 것이라고 하셨다. 저주는 또 축복의 반대말로 생명과 사망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8-36절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사람의 몸에 피해를 준 상해 죄를 다룬다. 여기에 적용되는 원칙은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린 것으로 갚는 동등한 보상과 보복의 원칙이다(23-24절). 이 원칙은 종종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눈을 뺐다면 똑같이 그 사람의 눈을 빼라는 명령은 무섭고 잔인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법은 가해자를 보호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만약 상대방의 이를 뺐다면 똑같이 가해자의 이를 빼야 하며 분노로 인해 가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주거나 살인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예수님께서는 마5:38-39에서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법의 원칙과 정신은 생명을 사랑하는 데 있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법을 필요로 하며 하나님의 법을 통해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B2BChurch.org 정기원 목사 (480)209-9279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