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기독칼럼] 언약의 책 3

출22:19은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한다. 성경이 사람과 짐승의 결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짐승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같은 종류끼리 묶어서 생물을 분류하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 그 것은 천지창조의 작업의 근거가 되는 분리와 경계의 원칙을 무너뜨린다. 창2;20은 아담에게 돕는 베필이 없다고 기록한다. 이 말은 동물 중에서 사람과 같은 종류로 구분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관계를 맺어 떨어진 자들(Fallen ones)이라는 의미의 네피림을 낳는다. 신과 사람의 결합, 즉 서로 다른 종류의 결합은 창조적 질서를 파괴한다. 레위기 11장에 등장하는` 부정한 짐승이나 가축의 목록을 보면 그 것들이 다른 종류의 경계선에 걸쳐있거나 경계선이 불분명한 짐승들이다. 이 모든 개념들은 거룩함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거룩함에 도달하기를 원하신다. 거룩한 삶은 정해진 경계선을 넘어가지 않는데 있다. 히12:14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 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딤전4:7에는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셨고 벧전1:15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명령한다. 출22:31에도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말고 개에게 던지라고 하셨다. 현대 크리스천들의 문제는 거룩함의 의미와 소중함을 잃어 버리고 믿지 않는 자와 똑같이 행동하며 세상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데 있다.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함에 이를 때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속에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피조물에게 각각의 위치와 경계를 정해 모든 피조물이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모자이크처럼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하셨다. 창조적 질서가 이 땅에 샬롬(평화)을 가져온다. 사람과 짐승의 결합은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의 조화를 깨뜨리고 변형된 자식을 출산하게 한다. 예를 들어 네발 달린 사람이 나온다든지 또는 짐승의 꼬리가 달린 사람이 나올 수 있다. 다른 두 종류의 결합이 하이브리드 형태의 새로운 종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남자와 남자의 결합이나 여자와 여자의 결합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출22:18의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는 명령도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마녀로 간주되는 무당의 능력은 종종 악마와 사람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형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무당이나 신접한 자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자들이다.
21절은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둘울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고 기록한다. 이방 나그네(Resident alien)는 임시 거주자(Sojourner)로 본토인과 외국인의 중간 위치에 있는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을 의미한다. 창47:9에 야곱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섰을 때 그는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산다. 아무리 돈이 많고 잘 살아도 정해진 기간을 살다 갈 뿐 이다. 집이나 땅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 것들이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내 것은 아니다. 성경은 모든 땅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소유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나그네로 또는 임시 관리자로 우리에게 맡겨진 소유물을 관리하다 떠난다.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는 명령은 우리가 나그네 신분임을 잊지 말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오랜 세월을 나그네로 보냈다. 그들은 출애굽 후에도 40년을 사막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추위와 더위를 이기고 먹고 마시고 자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곳에서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사는 법을 배우고 터득했다. 나그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 것이 사막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인간적인 방법도 통하지 않는 곳이 사막이다. 사막에서, 황량한 광야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를 만나 주신다. 내가 사는 이 땅이 광야라면 이 땅이야 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아닌가? 나그네는 먹고 잘 곳을 찾아 헤메는 홈리스와 같다. 만약 당신이 오늘 빈 손으로 집을 나온 홈리스라면 오늘 밤 어디에서 잠을 자야 할지를 걱정해야 한다. 당신은 당장 누군가에게 먹고 마실 것을 구걸해야 한다. 창피를 무릅쓰고 구걸을 했는데 상대방이 냉정하게 거절한다면 얼마나 그 사람이 야속하겠는가? 내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면 홈리스에게 그렇게 쌀쌀맞은 인간은 되지않을 거라고 다짐할지 모른다. 그렇다! 내가 길에서 생존의 문제로 고통받은 것을 잊지 않는다면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나그네에게 좀더 따뜻한 온정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그네이다. 당신도 나그네이다. 우리 모두는 나그네이다. 서로 돕지 않으면 이 땅에서 살 수 없는 나그네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살지 않으면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정말 빈털털이 나그네이다.
B2BChurch.org 정기원 목사 (480)209-92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