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로마서 – 깊게 천천히 오래 보기 10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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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불멸설과 부활의 대립되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죽음의 사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과 함께 그 집을 방문하셨다. 이날은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의 몸은 이미 부패하여 심한 악취가 나서 코를 막지 않으면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 3일이 지나면 죽은 것으로 인정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사람이 다시 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4일이 지났으니 그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무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천국에 갔으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슬픔에 빠진 가족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아픔과 고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이미 천국에 간 너를 다시 불러내 미안하다. 너의 가족이 너무 슬퍼하니 세상에 내려와서 조금 더 살다가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만약 나사로가 죽은 뒤 즉시 천국에 갔다면 억지로 그를 불러들여 잠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사로는 부활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났지만 여전히 죄를 짓고 질병과 사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살아난 뒤 사람들을 모아놓고 간증집회를 열어 천국에 가서 화려하고 눈부신 궁전을 보았다 거나 그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를 만나 별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수다 떨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는 등 자신이 본 것을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침묵을 지키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신실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 다시 살아날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녀는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의 전통적인 신앙관에 따라 마지막 때 무덤에서 부활할 것을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고 사는 문제의 열쇠를 가진 예수를 만나면 생명과 부활이 지금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고 오늘 세상을 위해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는 일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시며 “요나가 밤낮 사흘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요나의 표적은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표적이고 니느웨 사람들처럼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희망의 표적이지만 예수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심판의 표적이었다. 왜 예수님은 죽은 뒤 즉시 부활하지 않고 3일을 기다렸을까? 이미 천국에 가셨다가 3일째 되는 날 계획에 따라 땅으로 다시 내려와 부활하셨나?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3일은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죽음의 고통을 견디며 함께 3일을 걸었고 요셉은 3일간 구덩이에 있었다. 3일은 우리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음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3일이 3년 또는 이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은 우리의 위대한 삶의 스승이다. 죽음 앞에서 왜소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과 모든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좌우편에 두명의 강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이는 오늘 내가 천국에 가는데 너도 나와 함께 가자는 말씀이었나? 예수님은 3일째 되는 날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부활과 생명이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다. 예수를 믿으면 죽은 후가 아니라 지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예수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오늘 네가 천국을 경험하고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오늘이라는 단어가 어디에 붙는가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 만약 오늘이라는 단어 뒤에 구두점이 있다면 “내가 오늘 네게 이르노니 내가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가 된다. 오늘 네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만 마지막 때 하나님의 나라에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다윗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약속한 것을 받지 못했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모두 세상의 마지막 때 일어날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는 상태에 있다. 요한복음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죽은 뒤 천국에 갔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말씀은 거짓말인가?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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