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06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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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야곱이 처한 상황이 겉으로는 똑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달랐다. 아브라함은 애굽 왕 바로에게 사라를 바쳐야 할 정도로 절박한 위기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이삭의 경우에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할만큼의 위기가 없었다. 자신이 지레 겁을 먹고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해서나름대로 발빠르게 대처했을 뿐이다.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사태가 일단락된 후 그들은 별 문제없이 오랫동안 그곳에 거주했다.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끝나 밝은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짓은 영원하지 않다. 어느날 우연히 아비멜렉 왕이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보는 바람에 거짓말이 들통이 났다. 사실을 파악한 왕이 이삭을 호출하여 사실을 추궁하자 그는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웠다”고 실토했다. 죽음이 두려웠던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아직 죽음과 맞설 정도의 믿음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천국에 가는 꿈을 꾸고 빨리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죽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죽지 않고 하루라도 더 오래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두려움때문이다. 두려움의 근본 원인은 욕심과 집착에 있다. 우리는 돈이던 권력이던 혹시라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쉽게 두려움에 빠진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결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비멜렉은 “너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에게 범죄할 뻔하였다”고 말하며 그의 두려움이 그에게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삭의 두려움으로 시작된 해프닝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무리되었지만 그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 작은 가능성 때문에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두려움에 빠져 일을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두려움이 가장 두려워하는 두려움의 적은 믿음이다. 믿음이 약해지면 내 안에 두려움이 커지고 믿음이 강해질수록 두려움은 작아지고 자신감이 커진다. 걱정과 두려움을 물리치는 최상의 방법은 나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에게 맡기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거다. 설사 내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생각과 욕심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겠다는 결연한 믿음이 두려움을 물리친다. 하나님은 이삭이 마주치는 모든 사건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다. 이삭이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막으시고 그랄에 머물게 하셨다. 그 후 농사를 지어 엄청난 수확을 올렸고 점차 창대하고 왕성하여 소와 양의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거부가 되었다. 그가 그렇게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그랄 땅에 거주하면 복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일까? 그의 축복은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축복의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세대를 넘고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 넘어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이어져 우리가 아브라함과 동일한 축복을 받는다는 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대규모 농장으로 발전하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일을 못하도록 방해를 놓았다. 그들은 아브라함 때 애써 판 우물들을 막고 흙으로 메꾸었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고 물사정이 좋지 않았던 당시에는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우물이 매우 중요한 재산권 중 하나였다. 법적으로 우물의 소유권 및 사용권은 우물을 판 사람에게 있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땅을 파서 우물을 발견했다면 그 우물은 아브라함 가족의 소유가 된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우물을 메꾸어 버리고 그 땅이 자기들 소유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그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갑자기 억울한 일을 당한 이삭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했다.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그들과 싸우던가 아니면 그 장소를 포기하고 떠나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했다. 여기서 잠시 영적인 관점에서 우물을 생각해보면 우물을 파는 사람이 있고 메꾸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그가 남겨놓은 믿음의 유산, 또는 생명의 물로 비유한다면 우물을 메꾸는 자들은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해 생명의 물을 보지 못하고 우물을 메꾸어 흔적조차 없애 버리는 사람들이다. 자기도 마시지 않고 남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욕심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타는 목마름과 갈증을 해소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물을 메꾸는 자들이 아니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우물을 다시 파서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생명의 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거룩한 영성을 회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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