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삭은 그 곳을 떠나라는 그들의 요구에 생존권이 걸려있는 우물을 포기하고 말없이 그 곳을 떠났다. 만약 돈을 아끼려고 먹고 싶은 음식도 사먹지 않고 허리 띠를 졸라가며 돈을 모아 10년 만에 어렵게 집 한 채를 장만했는데 누군가가 집을 넘겨주고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총을 겨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속은 쓰라리지만 살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고통스럽고 아플까? 야곱이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리거나 악착같이 싸워 누가 죽든지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싸움보다 샬롬 (Shalom)을 선택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고 양보하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손해를 보거나 지는 것으로 인해 얻는 가치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오셔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악의 세력과 싸워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의 난무하는 온갖 폭력에 비폭력과 죽음으로 맞서고 미움과 증오에 사랑으로 맞서 싸우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생과 죽음으로 싸워 이기는 법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아름다운 질서와 평화가 있었다. 그것은 사자와 양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평화였다. 힘이 있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아니라 상대방이 약자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질서를 훼손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와 권리를 존중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이후 세상의 질서와 샬롬이 깨어졌다. 사람들은 화목하기 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킨다. 모든 싸움의 원인은 욕심에 있다. 형제자매나 부부간에도 돈 문제 때문에 한치의 양보없이 법정에서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몰려왔을 때 베드로가 칼을 빼 들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다.” 통쾌한 복수극을 주무기로 하는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갈증을 해소하는 사이다처럼 시원한 맛을 주지만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다. 복수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복수를 피해 도망다니는 사람이나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평안을 누리려면 먼저 욕심을 버리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삭은 그랄에서 브엘세바 (Beersheba)로 올라갔다. 그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 그를 축복하셨다. 그는 아브라함처럼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장막을 쳤다. 그는 분쟁이 끝나 더 이상 블레셋 사람들이 괴롭힐 일이 없는데 왜 브엘세바로 이주했을까?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내려와 함께 갔던 장소이고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곳이며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제단을 쌓은 곳이다. 이삭은 동일한 장소에서 하나님에게 제단을 쌓았다. 그 후 아비멜렉 왕이 측근들을 데리고 이삭을 만나러 왔다. 그들은 그의 신실함에 감동을 받아 크리스천임을 인정하고 평화조약을 제안했다. “당신을 보니 크리스천이 틀림없군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진짜 크리스천이다. 브엘세바는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과 평화조약을 맺은 장소였다. 이삭은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진실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겉으로는 지는 길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겼다. 우물에 집착하는 마음을 비우고 평화를 선택했을 때 그가 가는 곳마다 물을 있는 축복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과 평화의 통로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창세기 26장은 에서가 40세에 2명의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는 어두운 말로 끝을 맺는다.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는 말은 영적으로 고통스럽고 쓰라린 상처를 주었다는 밀이다.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 결혼한 나이도 40세였다. 성경은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생중계하듯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에서의 무분별한 선택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주로 “죽으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남기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꿔볼 필요가 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고 싶은가?”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