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축복은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될 지를 예고하는 운명적인 예언의 성격을 띄고 있어 삶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축복은 말로 표현될 때 그 기능을 발휘하고 한번 입에서 나간 말은 다시 번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삭이 야곱을 에서로 착각하고 축복한 후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법적인 서류에 서명한 것처럼 취소가 불가능했다. 축복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재산권, 아버지의 권위, 리더십 등 소유권 (Ownership)을 넘겨주는 것과 같다. 마치 집을 사고 팔 때 부동산 소유권이 구매자에게 넘어가듯 축복은 집의 새 주인에게 열쇠를 넘겨주는 승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염원과 기대가 담긴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직접적인 예언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승인을 전제로 한다. 아버지의 영적인 통찰력과 혜안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축복을 만들기 때문이다. 축복에는 영적인 힘이 담겨 있어 후계자가 영적인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사람을 변화시킨다. 야곱은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탈취했지만 그것으로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아야 했다.
이삭이 에서에게 은밀히 말할 때 리브가가 그 말을 엿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받는 축복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그녀는 즉시 행동에 옮겨 야곱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 여기서 그녀는 에서를 ‘그의 아들’로 그리고 야곱을 ‘나의 아들’로 표현한다.그녀의 표현처럼 가족은 둘로 나누어져 이삭과 에서가 한 팀이 되고 리브가와 야곱이 다른 팀을 구성하여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한 말을 야곱에게 전하면서 이삭이 하지 않은 말을 첨가했다. 이삭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말을 바꾸어 단순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엄숙하게 이루어지는 의식임을 강조했다. “여호와 앞에서”라는 표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행하는 축복을 의미한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잔 꾀를 부리다가 일이 잘못되면 저주를 받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자 그녀는 뒷일을 내가 책임질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거사를 벌이기 전 머뭇거리거나 한발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장자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올인했다.
야곱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에서의 옷을 입고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손과 목을 가리고 이삭에게 갔다. “네가 진짜 내 아들 에서가 맞느냐?”고 이삭이 묻자 양심이 찔리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이 에서라고 2번이나 거짓말을 했다. “네가 어떻게 빨리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냥감을 만나 쉽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고 하나님을 팔았다. 만약 네가 에서라는 걸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주저없이 맹세했을 것이다. 한번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며 일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삭은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하여 3차례에 걸쳐 확인하는 정밀작업을 했다. 야곱의 음성을 들은 이삭은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고 말했다. 그는 옷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그를 축복하며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라고 말했다. 옷은 분명 에서의 옷인데 냄새는 야곱의 냄새였다. 여기서 “밭의 냄새”는 사냥꾼인 에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축복을 받는 자가 야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까? 아니면 전혀 몰랐을까?
이삭의 행동에는 여러가지 이상한 점들이 감지된다. 만약 그가 야곱을 인지했다면 리브가와 야곱을 불러 호통을 치고 격노했을 것이다. 아니, 리브가에게 당장 이혼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가 평생을 함께 한 아내 리브가가 만든 음식과 에서가 만든 음식을 구분하지 못한 점도 미스터리이다. 뒤늦게 찾아온 에서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그는 크게 떨며 말했다.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크게 놀라 당황하는 장면에서 그가 사전에 야곱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3번이나 에서가 맞는 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는 야곱을 축복하면서 직감적으로 축복을 받는 자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야곱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장자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야곱이 나가자 에서가 들어왔다. 세상에 태어날 때 에서가 먼저 나오고 뒤따라 야곱이 나왔지만 이번엔 순서가 바뀌어 야곱이 먼저 이삭을 만났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