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아우가 와서 나를 속여 네 복을 빼앗았다고 말하자 에서가 격분하여 주먹을 불끈쥐고 말했다. “그가 나를 속임이 이번이 두 번째예요.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어요”. 에서는 팥죽 한 그릇을 먹는 대신 장자의 권리를 야곱에게 넘겨주고 맹세까지 했다. 그는 야곱이 자신을 속여 장자의 권리를 빼앗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야곱은 그를 속이거나 강제로 장자권을 빼앗지 않았다. 그것은 상호 합의에 의한 계약이었고 말하자면 돈을 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것과 같은 상행위에 해당했다. 아버지를 먼저 속인 사람도 야곱이 아니라 에서였다. 에서는 장자권을 야곱에게 넘겨준 사실을 숨기고 끝까지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알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싶지 않았다. “누가 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야곱과 둘이서 비밀리에 한 사적인 약속을 굳이 지킬 필요가 있을까?”하고 가볍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사건을 사전에 계획하고 야곱을 사주하여 이삭을 속인 리브가의 잘못인가? 아니면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몽땅 가로채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하는 야곱의 잘못인가? 장자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헌 신발처럼 내팽개친 에서의 잘못인가? 에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주는 음식을 덥석 받아먹은 뒤 야곱을 축복한 이삭의 잘못인가?
도로에서 3중충돌이 일어나 전화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들이 현장을 조사하고 사람들의 진술을 들어도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구분하기 힘든 사건들이 있다. 결국 법정에서 잘잘못을 따진 후 사건이 정리되겠지만어떤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하기보다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하와도 잘못이지만 뱀이 하와에게 접근하도록 방치하고 그녀로부터 선악과를 받아먹은 아담의 잘못도 컸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직접 받고나서 그 명령을 하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세한 내용을 몰랐다. 그는 한술 더 떠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함을 보이며 남자 망신을 시키기까지 했다.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말면서도 하와에게 접근해 유혹한 사탄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모든 관련자들이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하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에덴동산은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망가져 회복이 불가능하게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신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창조의 목적과 의도에는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창조의 회복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악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우리를 구원하고 통치하신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속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하신다.
이 사건의 주연배우는 야곱이지만 감독은 리브가였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녀는 모든 일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녀는 수시로 보고를 받고 상황파악을 한 뒤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하나님이 그녀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과 벧엘에서 야곱에게 주신 말씀은 동일한 말씀이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기만과속임수를 질책하기보다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을 거듭 확인해주셨다. 사람이 아무리 주도 면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더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성공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신의 의지와 재능으로 장자의 권리와 복을 가로채기 전 이미 그를 선택하셨고 장자가 될 것을 예정하셨다.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속임이라는 세상의 방법을 이용하셨다. 인간의 속임에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 그 속임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의 패러독스를 본다. 진실과 공의를 부르짖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속임을 묵인하고 허용할 수 있는가? 과연 그 속임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거짓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거짓말이나 속임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속임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행위이다. 사람을 한번 속일 수는 있지만 2번, 3번 계속해서 속일 수는 없다.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다소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하나님 앞에서 속임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되어있다. 남에게 던진 돌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