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다. 동방 사람의 땅은 팔레스타인 동쪽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말이다. 다른 번역본에 따르면 밧단 아람(Paddan Aram)을 지칭한다. 그는 먼 여행길을 끝내고 목적지인 하란 근처에 있는 우물가에 도착했다. 이 우물은 아브라함의 종이 도착하자마자 이삭의 신부감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장소였다. 야곱은 동일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차분히 앉아서 기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양을 치는 목자들이 양떼를 데리고 우물가에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낯선 사람들을 주시했다. 우물 입구는 큰 돌로 덮여 있었는데 아마 우물 안에 이물질이나 흙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우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우물을 큰 돌로 막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모든 목자들과 양 떼가 모인 후 함께 돌을 옮긴 후 물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한 개인이 우물의 물을 독점하거나 마구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고 또 물로 인한 분쟁의 소지를 없애 마을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야곱은 돌과 묘한 관계가 있었다. 그는 벧엘에서 돌을 머리에 베고 잠을 잤고 하란에 도착해 우물가를 덮은 큰 돌을 만났다. 그가 머리에 베고 잔 돌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면 우물의 입구를 덮은 돌은 사랑하는 라헬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야곱의 힘을 상징한다.
그는 우물가에 모인 목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새 학교로 전학을 가서 선생님이 이름을 호명한 뒤 앞으로 나와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학생은 주눅이 들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싸움꾼답게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선제공격을 날리듯 먼저 말을 걸고 기선을 제압했다. 그는 마치 그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줏대감처럼 행동했다. 목자들이 하란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들을 통해 라반의 소식을 들었을 뿐 아니라 그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이 곳으로 오고 있다는 따끈따끈한 뉴스를 들었다. 그는 목자들에게 “해가 아직 높아 모든 목자들이 양떼를 몰고 나타날 때가 아니니 마냥 기다리지 말고 먼저 도착한 양떼에게 물을 먹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목자들이 그렇게 하면 정해 놓은 관습을 어기는 것이 된다고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낡은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기보다 일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야곱은 그들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에 세 무리의 양떼가 있고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온다면 우물의 돌을 옮길만한 충분한 숫자가 되는데 무엇을 기다린다는 말인가? 설마 마을에 있는 모든 양떼가 모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지? 저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고 답답하니 무슨 발전이 있겠나?” 야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차고 있을 때 양떼를 거느린 라헬이 우물가에 나타났다. 그녀를 본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눈부신 빛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한동안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눈이 먼 그는 그녀의 관심을 끌고 환심을 사기위한 방법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웃통을 벗고 그동안 헬스클럽에서 단련하여 식스 팩이 선명하게 보이는 복부와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며 우물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 앞으로 다가섰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큰 돌을 초인적인 힘으로 밀어냈다. 에서라면 몰라도 그런 놀라운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내고 박수갈채를 보내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이 선거 유세를 하듯 연단에 올라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목청을 가다듬고 외쳤다. “나는 가나안에서 온 야곱입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챔피언입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라헬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연단에서 뚜벅뚜벅 걸어 내려와 자신을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다가가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그녀를 부둥켜안고 열정적인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성경에 공공장소에서 최초로 키스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그녀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며 자신이 리브가의 아들임을 밝혔다. 마침내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장거리 여행으로 피로한 몸이 풀리고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을 머리 속에 떠 올리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기습적인 키스를 허락한 라헬은 야곱이 죽도록 사랑한 첫 사랑의 여인이 되었고 그는 그녀를 위해 땀과 눈물로 얼룩진 14년의 세월을 바쳐야 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