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아와 라헬은 모두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정말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들일까? 이국환의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라는 책에는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운명이 된다”는 멋진 말이 나온다. 의식화되지 않은 무의식이 운명이라는 말이다. 마음 속에 있는 무의식을 깨우고 이를 의도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없이는 자기 운명을 바꿀 수가 없다. 모든 것은 생각과 인식에 달려있다. 생각을 바꾸면 인식이 달라지고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다. 두 여인은 불행하게 사는 것을 거부하고 불행에 맞서 싸우기를 원했지만 정작 싸우는 방식은크게 달랐다. 레아는 자신의 불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거부하고 어떻게 하든 불행을 딛고 일어서기로 결단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마침내 그녀는 믿음으로 불행을 극복하고 홀로 서기에 성공하여 운명을 바꾼 여인이 되었다. 그녀에게는 불행이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축구경기에서 전반전에 3골을 먹으면 전의를 상실하여 제대로 뛰어 보지도 못하고 큰 점수로 패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후반전에 3골을 만회하고 게임을 역전시키는 팀이 있다. 똑같은 위기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포기하여 불구자처럼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악착같이 버텨서 위기를 극복하고 날개를 펴서 이전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이 있다. 강한 정신력과 믿음이 차이를 만든다. 가수 임재범의 노래인 “비상”의 가사가 떠 오른다.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자신을 가둬두었지/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추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싶어”
야곱을 많이 닮은 라헬은 경쟁에서 지는 것을 싫어하고 질투심이 강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를 원했다. 레아가 아이를 가지지 못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크게 불행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자식이 없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러나 경쟁자인 레아가 아이를 갖자 갑자기 마음에 평안을 잃어버리고 극도로 예민해져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두사람의 경쟁관계와 비교가 문제가 되었다. “내가 언니보다 못한 게 없는 데 왜 나에게만 자식이 없을까?”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고 속이 타서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고 야곱에게 으름장을 놓고 그를 괴롭혔다. 레아가 아이를 낳은 것은 야곱에게 신체적인 결격사유가 없다는 증거이지만 그녀는 야곱에게 한국에 있는 종합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억지를 부렸다. 자식이 없이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그녀의 주장에는 자녀의 유무가 여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논리가 담겨 있다. 자식이 없는 여인은 불행한 여인인가? 야곱은 버럭 화를 내며 “당신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인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야곱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를 위로하며 고통을 함께 나누기 보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원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데 왜 내 탓을 하느냐고 따졌다. 그들의 잦은 부부싸움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어떡하지, 길이 없는데…” 라헬은 절박한 상태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결책을 찾다가 사라가 사용한 방법이 머리에 떠 올랐다. 사라가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한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종 빌하를 야곱에게 주기로 계획했다. 그녀의 치밀한 계획이 맞아 떨어졌는지 빌하가 임신하여 단과 납달리를 낳았다. 자기의 분신과 같은 여종이 아이를 낳은 것은 자신이 아이를 낳은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고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회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단(Dan)은 하나님이 나를 옹호하셨다는 의미로 그녀는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그녀는 태어난 아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의 선물임을 인정하는 대신 자기의 억울함과 고통을 돌아보신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자식을 낳고 목에 힘이 들어가 눈꼴 사납게 으스대는 언니의 코가 납작해지도록 자신의 손을 들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녀는 납달리가 태어나자 “내가 언니와 경쟁하여 크게 이겼다”고 승리를 선언했다. 전당포에서 물건을 저당잡고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아버지 라반은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두 딸을 저당 잡힌 물건으로 취급하여 자기 재산 목록에 올려 놓았다. 아버지를 빼닮은 두 딸은 물러설 수 없는 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자녀들을 재산 목록에 올려 놓고 마치 프로선수들이 실적에 따른 연봉협상을 위해 구단주와 줄다리기를 하듯 자녀를 둔 여인에 걸맞은 몸값과 대우를 받기 위해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