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29

야곱이 고향으로 떠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때 우연히 라반의 아들들이 자신에 대해 쑤군거리며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다. 한 아들은 인정이 많고 마음이 약한 아버지가 오갈 데 없는 도망자를 불쌍히 여겨 받아주었더니 두 명의 누이와 결혼하고는 마치 집안의 주인이 된 것처럼 행세하다가 사기꾼들이 쓰는 수법으로 아버지 재산을 가로채 부자가 된 후 마치 자기가 잘나서 성공한 것처럼 TV 방송에 나와 인터뷰하고 다니는 꼬라지를 더 이상 눈꼴 사나워서 못 봐주겠다고 그를 맹 비난했다. 또 다른 아들은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받아주면 언제 등에 칼을 꽂고 배신할지 모르니 절대 인정을 베풀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호시탐탐기회를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롭게 쏘아보는 야곱의 매서운 눈초리와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그가 재산을 갈취해 큰 피해를 입힌데 대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의 멱살을 잡고 때려눕힐 기세로 씩씩거렸다. 라반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그를 대하는 게 전과 같지 않았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며 포도주를 마시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노래했던 시간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과거의 일로 여겨졌다.
라반을 비롯한 집안 식구들의 태도가 차갑게 변하고 총만 들지 않았을 뿐 그들에게서 적대감과 살기를 감지한 야곱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여기서 꾸물거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싶어 기회를 봐서 가능한 한 빨리 이곳에서 탈출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내와 자식들을 빼면 자기 편이 하나도 없는 적진에 홀로 갇혀 있는 형국이었다. 아내들도 이야기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버지 라반의 통제에서 벗어나 등을 돌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정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는 라반이 소유한 회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20년이 넘게 그 회사에 재직하며 집안 식구들과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장을 거쳐 대표이사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성공신화를 쓴 그는 직장인의 롤모델이었고 그의 성공비결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능력주의를 부르짖는 그는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말고 자신이 회사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의 눈부신 성공에는 부작용이 따랐고 그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성공은 라반이 보유한 회사의 일정 지분을 양도받은 것에 불과했다. 만약 라반의 도움과 뒤를 봐주는 선처가 없었다면 그는 외지에서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라반은 그가 딛고 일어설 디딤돌 역할을 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적지 않았다. 열심히 땀 흘려 일했지만 감언이설에 속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같은 핏줄이라는 이름아래 제대로 월급 봉투를 받은 적도 없었다. 남도 아니고 한 식구이니까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능력이 뛰어난 너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공허한 말에 불과했다. 집안 식구들이 다 한 통속이라 어디에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빈털터리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않아 세금보고를 할 수 없었고 융자를 받을 자격이 없어 내집마련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언제 처가살이를 면하고 가난에서 벗어나 작은 집이라도 내 이름으로 소유할 수 있을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서 신데렐라와 같은 그의 눈부신 성공은 가족 간의 불화와 다툼을 촉발시켰고 이로 인해 미움과 증오로 얼룩진 불편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나쁜 관계를 갖는 것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오로지 자기 목표를 위해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탱크처럼 앞으로 돌격하는 사람은 대개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갈등이 붉어졌을 때 경쟁하기 보다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했다. 화해와 화목을 추구하는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은 아직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변사람들을 가슴으로 품는 넉넉함이나 따뜻함이 없었다. 독불장군이 아니라면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나쁜 소문이나 평판에 휘말리면 정상에 오르기가 힘들어진다.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