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몸이 아프다고 짜증을 부리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고통을 호소해도 자신이 아파보지 않으면 상대방이 얼마나 아픈 지를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는 일은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지만 그 상처의 깊이와 아픔을 자신이 직접 당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피오리아에 사는 조 집사는 평소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아직 잠이 깨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렌트비를 몇 달간 내지못해 길바닥으로 쫓겨나게 생겼다고 있는 대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사정이 얼마나 급했으면 새벽에 달려왔을까? 하는 딱한 마음에 돈을 빌려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빌려간 뒤 며칠만 쓰고 갚겠다고 하던 사람이 전화도 받지않고 통 연락이 되지 않다가 다시 연락이 와서 그동안 사정이 생겨 연락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돈이 급히 필요하니 빌려주고 조금만 기다려주면 한꺼번에 다 갚을 테니 자신을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있는 돈을 다 털어 빌려주었더니 얼마 후 파산신청을 했다고한다. 파산선고를 받은 뒤 그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을 만나고 출석하던 교회에 다시 나온다고 했다. 사람들 앞에서 욕을 하고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다시 돌려받을 수도 없어 교회를 그만 두고 그 사람을 피해 다닌다고 했다. 오랫동안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상처를 극복하기까지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조 집사는 하소연했다.
남을 속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야곱은 단수가 높은 라반에게 걸려 속임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받으면서 오히려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인생을 사는 게 올바로 사는 길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인지, 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안되는 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왜 회개를 요구하셨을까?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다. 구원을 받는데 어떤 조건이나 단서가 붙지 않는다. 그저 믿으면 된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믿는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말은 아니다. 믿음은 우리의 반응과 행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에게 보여야 할 첫번째 반응은 회개이다.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이다.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우상숭배에 있다. 돈과 권력과 섹스와 성공을 위해 미친듯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지금 내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 그것들이 바로 내가 믿는 우상이다. 하나님을 믿으려면내 마음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찍어 버리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 회개는 히브리어로 “테슈바(Teshuvah)”이고 돌아간다(Return)는 뜻이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탕자가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듯 과거를 즉시 청산하고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회개는 올바른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다른 말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정신이 번쩍 든 라반은 “내 딸들과 내양 떼를 앞에 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며 언약을 맺자고 야곱에게 제안했다. 그들은 서로 해치지 않기를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증거를 삼았다. 그들은 이 돌 무더기를 ‘갈르엣’과 “미스바(Mizpah)”라고 이름 지었다. 갈르엣 (갈레드, Galed)은 앞서 여러 번 나온 지명인 ‘길르엣’으로 아랍어의 “얄라드(Jalad)”에서 유래하였으며 “거칠고 딱딱한 (rough and hard)” 지형을 묘사한다. “미스바”는 망대 (Watchtower)를 의미하는데 라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미스바라고 하였고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미스바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보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는 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떡을 먹고 밤을 지낸 다음 서로를 축복하고 헤어졌다. 그들의 만남은 아름다운 이별로 끝났지만 야곱에게는 불길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라헬은 테라핌을 훔친 뒤 누구든지 그 물건을 훔친 자는 죽으리라는 야곱의 예언처럼 길에서 베냐민을 낳고 죽었다. 야곱이 뜨겁게 사랑했던 그녀는 가족 묘지인 막벨라 동굴에 묻히지 못하고 오히려 아내로 인정받지 못한 레아는 야곱 옆에 묻히게 된다. 레아와 라헬의 출산에 대한 질투와 경쟁심이 12명의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탄생시켰고 라반의 질투와 욕심 때문에 야곱은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테라핌을 훔친 라헬의 어리석은 돌출행동으로 야곱은 라반과의 담판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갈등과 투쟁 그리고 질투와 욕심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 사용하셨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