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폭풍 전야의 고요와 적막함이 머리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중압감을 느끼며 얍복강 가에 홀로 남았다. 로마 황제 시이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며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치듯 그는 얍복강을 건너는 것을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이루는 모멘텀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멘텀을 준비하는 자세로 홀로 남기를 원했다.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하든 살아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죽고 사는 것보다 자신이 세운 가족공동체의 존속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마음이 복음의 본질이다. 나만 죽어서 천국에 가면 된다고 믿는 극도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함몰된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고 그렇게 원하는 천국에도 갈 수 없다. 그는 전쟁 중에 싸움에 밀리거나 전세가 불리할 때 후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다리를 끊고 불에 태운 뒤 강이나 바다 같은 물을 등 뒤로 하여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전제로 전심전력을 다해 싸우는 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자기를 위한 개인적인 싸움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싸움이고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를 자원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행동을 개시하기 직전 극도의 긴장감과 두려움에 싸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참호 속에서 눈을 감고 명령을 기다리는 특수부대 요원들처럼 그는 더 이상 미루거나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앞으로 돌진해야만 했다. 그것은 새로운 미래를 위해 반드시 그가 통과해야 할 중요한 관문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길을 떠난 후에 많은 일을 겪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에겐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위해 통과해야 할 중요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외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그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모든 우상을 끊어내고 아들조차 포기했을 때 그는 비로소 최종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고 하나님은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안다”고 말씀하시고 그를 축복하셨다. 그는 최종관문을 통과한 뒤 모든 믿는 자들의 아버지로 정상에 우뚝 서게 되었다. 야곱 역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홀로 서기 위해 이 순간을 견디고 이겨내야 했다. 여기서 ‘홀로’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홀로’에는 2가지 서로 대립되는 감정이 섞여 있다. 그건 약함과 강함, 불안과 두려움, 용기와 믿음이다. 우리 주변에는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식사하기 싫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수다를 떨며 함께 시간을 보내야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낀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과 두려움이 불청객처럼 우리를 찾아온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 우리는 가면을 벗고 화장하지 않은 나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다. 야곱은 스스로 홀로 있는 시간을 선택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피해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기를 원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디면 끝에 무엇이 있을까? 그는 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 치는 한 가운데 서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견디며 그 끝을 응시했다. 이 때 그는 천사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명확하게 분간이 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물체로부터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공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과연 그에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은 누구였을까?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그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에서를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보았을까? 아니면 그토록 갈망했던 하나님의 임재를 직감적으로 알아챘을까? 혹시 그의 영혼이 빠져나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 잡힌 자기 자신을 본 것은 아닐까? 호세아 선지자는 야곱이 천사와 씨름했다고 표현했다. 멀리서 싸움을 관전하는 선지자의 눈에는 그 상대가 천사로 보였는지 모른다. 창세기 33장에서 야곱은 에서의 얼굴을 보기를 원했고 에서를 만나자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에서처럼 보이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하고 혹은 하나님으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공격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밤새 씨름을 해야만했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그를 사정없이 공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대며 나대는 야곱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이번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는 이유였을까? 패배를 경험한 후 자신에게 실망한 나머지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는 싸우지 못하게 하려는 특단의 조치였을까? 중요한 건 비록 그가 공격을 당했지만 그 싸움이 그를 해칠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