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타고난 최고의 싸움꾼 야곱 103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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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에서를 사랑하였는데 특별히 그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삭이 인기있는 ‘먹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투버도아니고 그렇다고 전국을 누비며 맛집을 탐방하는 미식가도 아닌데 에서를 편애할 정도로 왜 그렇게 고기를 먹는데 집착했을까? 에서는평소 숯불에 잘 구운 ‘립 아이’ 스테이크를 즐겨먹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에 사냥꾼이 되어 식탐이 있는 아버지를 유혹했는지 모른다. 나이를 먹어 행동이 느려지고 영안이 어두워진 이삭은 앞을 보지 못하고 에서가 놓은 덫에 걸려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는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어버렸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에 절을 하는 죄를 범했다. 돈이나 섹스나 권력이나 그 어떤 것이든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이다. 누가 덫에 걸린 이삭을 구할 것인가? 야곱과 에서의 관계는 물과 기름처럼 하나가 될 수 없었던 가인과 아벨의 관계와 흡사하다. 리브가는 뱃속에서 두 아이가 싸웠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야곱이 집안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것을 알았다. 그녀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야곱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애정을 쏟았다. 야곱을 잘 키우는 일은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이었고 덫에 걸려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이삭을 구하고 집안의 존속과 번영을 꾀하는 중대한 과업이었다. “이 일을 위해 내가 이 집 안에 들어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팔을 걷어 부치고 다부지게 하나씩 일을 처리하며 가장의 역할을 자처했다.  

어느 날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마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야곱이 별미인 죽을 만든 것을 보고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고 말했다. 성경의 저자는 어떤 음식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 에서의 붉은 색과 연결되는 붉은 것이라고 표현했다가 뒤에 그 음식이 팥죽 (Lentil stew)임을 밝힌다. 여기서 먹게 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할리테(Halite)”이고 탐욕스럽게 삼키다 (Swallow greedily), 게걸스럽게 먹다, 가축에게 먹이를 준다는 뜻이다. 배고픔을 참지못해 극심한 고통을 느낀 에서는 팥죽을 손으로 가리키며 음식을 자기 입 안에 쏟아 부으라고 말했다. 마치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것처럼 먹을 것을 달라는 말이다. 유능한 사냥꾼은 기회를 엿보다 동물이 먹이를 먹을 때를 노린다. 야곱은 에서가 급히 먹이를 찾을 때 붉은 죽을 미끼로 그를 공격한다. 동물을 잡기 위해 덫을 사용하는 에서가 이번에는 야곱이 설치한 덫에 걸려 그의 먹이가 된다. 그런 면에서 영리한 야곱은 어리석은 에서보다 단수가 높은 사냥꾼이다. 야곱은 그에게 물과 음식을 주지만 조건을 걸고 장자권을 요구했다. “오늘 내게 맹세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즉흥적인 요구가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이었다. 맹세를 요구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증인이 없어도 “저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하고 잡아떼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입으로 맹세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팥죽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상주가 먹는 음식이다. 유대전승에 따르면 야곱이 아브라함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삭을 위해 죽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 에서는 장자권과 복을 빼앗기고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죽을 스스로 먹었다. 야곱은 철저하게 에서의 약점과 위기를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웠다. 태어날 때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막판에 뒤집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야곱이 이번에는 보기 좋게 에서를 무너뜨리고 장자의 권리를 빼앗았다. 그런데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한 야곱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동이었나? 장자권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탈취할 수 있는 것인가? 야곱은 빌려준 돈을 받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채업자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사람인가? 승부의 세계에서는 독하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야곱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인생을 살다 보면 성공처럼 보이는 실패가 있고 실패처럼 보이는 성공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그의 행동은 성공처럼 보이는 실패가 분명했다. 세상에는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이 은밀한 뒷거래를 통해 목표를 달성한 후 마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자기를 과시하며 거들먹거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정직하게 땀 흘려 노력하고 한발 뒤로 물러서야할 때는 마음을 비우고 뒤로 물러서는 신사적인 행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기만하고 속이는 야곱의 행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는 삼촌 라반에게 번번히 속임을 당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은 후 속임을 당하는 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깨닫게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성공보다 중요한 건 성장과 성숙이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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