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35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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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는 재산이 많은 알부자였지만 뒤꿈치가 다 닳아 너덜너덜한 샌들을 신고 허름한식당에서 춘천 막국수를 먹거나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맥도날드 커피를 마시며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며 지냈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그는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만족할 때 행복이 있음을 알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보낸 후 떠오르는 따스한 햇빛을 벗삼아 천천히 동네 길을 따라 걷는 산책을 즐기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지극히 평범한 하루 일과를 보냈다.   

어느 날 그는 전쟁터에서 도망한 한 사람으로부터 조카 롯이 적군에 사로잡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소식을 들은 순간 앞이 캄캄하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걱정이 되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롯을 구출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위험에 빠진 롯을 돕는 것도 좋지만 먼저 이 일로 인해 나에게 어떤 위험이나 피해가 있을 지를 미리 계산해 보는 것이 순서라고 입을 모았다. 만약 큰 피해가 예상된다면 섣불리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롯을 구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위험이 따르는 큰 모험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개인이 아니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축배의 잔을 마시며 사기가 충천하여 하늘을 찌르는 강대국이 아닌가? 벌집을 쑤시듯 잘 못 건드리면 오히려 그들의 공격을 받아 아브라함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롯과 마찬가지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 포로수용소에 갇힐 지도 모를 일이다. 골리앗처럼 상대하기에는 너무 크고 강력한 힘을 가진 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승산이 없는 싸움을 벌여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롯을 구하려다 잘못해서 자신이 죽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허무한 죽음이 될 수도 있다. 흥분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이성적인 사고와 냉철한 판단으로 현식을 직시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극구 만류했다. 득보다 실이 많은 위험한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또 사람들은 포로로 잡힌 롯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롯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는 필요에 의해 사람을 만나고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냉정하게 연락을 끊고 얼굴을 바꾸는 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관계가 지속되지 않았고 오래된 친구가 없었다. 하긴, 만나면 늘 허풍을 떨며 자기 자랑하기 바쁘고 곁다리로 딸이 명문대를 졸업한 후 최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잘 버는 미남청년을 사위로 삼았다고 자식 자랑하기 바쁘니 지루하게 수십 번씩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를 끝까지 참고 들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차가운 사람이었다. 싸가지가 바가지라고나 할까 따뜻한 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롯은 소돔으로 이주하고 나서 뭐가 그렇게 바쁜 지 아브라함에게 카톡이나 전화 한통 없이 연락을 딱 끊었다. 아브라함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생각하고 지냈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터진 김밥 사이로 삐죽삐죽 나오는 밥알처럼 밖으로 밀고 나오는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람을 뭐가 좋다고 달려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아마 도와줘도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돈봉투 하나 던져주고 갈 것이 뻔하니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롯을 정리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연히 전쟁터에서 도망한 사람을 통해 롯의 소식을 주워들었기 망정이지 만약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롯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고 설사 알았다 해도 몰랐다고 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롯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말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또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도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하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만히 지켜본 후에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생각은 달랐다. 어쨌든 전쟁이 일어났고 롯이 포로로 잡힌 장소는 가나안 땅이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었다. 비록 그가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등기서류를 가지고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주인임을 선언하셨다.
하나님이 약속하고 보장하시는 말씀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아브라함이 주인인 땅에 함부로 들어와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의 미래를 위협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기 가족인 롯을 잡아가고 불법으로 재산을 탈취하다니 이번 기회에 그들에게 누가 가나안 땅의 주인인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말을 듣지 않으면 손을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기원 목사 (602)804-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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