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37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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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던 회사 동료가 있었는데 마침 같은 이웃에 살아서 말동무도 해주고 죽는 날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그는 항상 시끄럽고 말썽만 부리는 애들을 귀찮게 여겼고 조용히 하라며 엄하게 애들을 다루었다. 그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다가 점점 병세가 깊어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못해 힘들어 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전에는 말썽을 피우는 애들이 그렇게 보기 싫고 귀찮더니 갑자기 애들이 사랑스러워졌어요. 애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고 앞으로 애들을 못 볼 것을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요”.

그는 죽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고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죽었다. 아이들 역시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지금쯤 그 아이들은 훌륭하게 자라서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말썽만 피우고 욕심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오히려 잘났다고 큰 소리치며 사는 우리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인가를 요구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하나님은 왜 저 사람에게만 복을 주시냐고 따지듯이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나의 어두운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318명의 특공대
아브라함은 평화를 추구하는 샬롬의 남자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로 변신한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지키기위해 때로는 목숨걸고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에게는 특별 동원령을 내리지 않아도 평소에 군사훈련을 받아 즉시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318명의 특공대원들이 있었다. 왜 그는 러시아가 사용하는 바그너 용병들처럼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특공대원들을 필요로 했을까? 언제부터 사람들을 모집하여 훈련을 시킨 것일까? 왜 하필이면 318명이었을까? 사람들을 조금씩 모으다 보니 318명이 된 것일까? 그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주변의 적들과 대치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방어가 가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야 상대가 쉽게 덤벼들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무력이 말보다 앞서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름대로 힘을 갖춘 강한 자가 되어야 했다.

물론 318명은 전쟁을 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수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을 모병하지 않고 318명에 그친 것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도 쉽지 않지만 일차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을 뿐 그 이상의 욕심이나 야욕이 없었기 때문이다. 318명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을 연상케 한다. 유대 성경의 주석서인 ‘미드라쉬’에 따르면 318은 아브라함의 종의 이름인 엘리에셀(Eliezer)을 지칭하며 이는 하나님은 나의 도우심(God is my help)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을 돕고 그를 대신해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용사들처럼 많은 숫자를 원하지 않으신다. 많은 수의 인원을 가지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작은 숫자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승리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본다. 

아브라함은 다섯 왕이 싸우고도 이기지 못한 강력한 네 명의 왕이 이끄는 연합군을 추격하여 그들을 따라잡았다. 당시 전쟁은 일렬로 나란히 서서 양측이 직접 대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백병전과 같이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전쟁에서는 숫자가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따라서 군사력은 얼마나 많은 군인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비례한다. 300명을 가지고 많은 수의 군대와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하겠다고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만큼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그들과 싸울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데 골몰했다. 익숙한 싸움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발상의 전환은 오히려 그가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군인은 의례적으로 싸우는 방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기 힘들다. 

IT 전문회사에서 컴퓨터 전공자가 아니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한 사람을 뽑아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는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눈과 창의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에 집착하여 한 쪽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다른 곳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싸움의 패러다임을 바꾼 다윗과 골리앗과의 대결은 가장 좋은 예이다. 다윗은 골리앗과 TV로 생중계되는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 힘으로는 세상에서 골리앗을 이길 자가 없다. 골리앗에겐 엄청나게 위력적인 힘이 있었지만 다윗에겐 그가 갖지 못한 스피드가 있었다. 다윗은 힘과 힘의 대결이 아니라 힘과 스피드의 대결로 싸움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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