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41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jung ki won.jpg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 그는 왜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바쳤을까? 십일조는 자신이 수확한 전리품과 물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아브라함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기를 대신해서 싸우신 하나님의 승리임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거둔 것의 첫 열매를 바쳤다. 십일조를 바친 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떻게 한 눈에 멜기세덱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을 보고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가 그의 영안을 열리게 함으로써 영적인 분별이 가능했던 것일까?    
의의 왕이라는 의미를 가진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인 인물이다. 성경에서 왕과 제사장을 겸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예수님밖에 없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였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사이이고 하나님의 친구로 불린 사람인데 왜 갑자기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타나 중보자의 역할을 자처했을까?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과 자신을 연결하는 중보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멜기세덱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직접 말씀하실 때 두려움에 떨었고 모세가 그들의 중재자가 되어 주기를 요청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도록 하는 제사제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주기위해 하나님에 의해 디자인된 제도이다. 그러나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진심이 만날 때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 동물의 희생을 매개로 하는 제사제도는 죄의 용서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완성되었다. 멜기세덱은 아직 제사제도가 만들어지기 전 등장한 최초의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제사장으로 메시아의 모형이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이고 중보자이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에게 갈 수 있다. 그가 유일한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에게 가는 길을 경험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메시아의 역할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멜기세덱과의 만남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예수님을 미리 만나보는 특별한 만남이었다.  

5. 카랏베릿 -하나님과 언약을 맺다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보면 중요한 이정표(Milestone) 역할을 하는 3부분이 있다. 그것은 창12장, 15장 그리고 22장이다. 창12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창15장에서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창22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는 믿음을 보여 주었다.
아브라함이 집을 떠난 후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그의 믿음은 소리없이 자라고 있었다. 믿음은 눈물 속에 화려하게 피는 꽃과 같다. 창14장에서 그의 믿음은 눈부신 성장을 한다. 그는 적군의 포로로 잡혀간 롯을 구하기 위해 318명을 데리고 적진에 뛰어든다. 그는 적의 허를 찌르는 야간 기습공격으로 강력한 메소포타미아를 대표하는 네 명의 왕들이 이끄는 연합군을 쳐부수고 롯을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새로운 전쟁의 영웅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모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비록 전쟁에서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작은 수의 인원을 가지고 기습공격을 통해 한번 이긴 것에 불과하다. 언제 그들이 전열을 재정비해 다시 공격해 올 지 모른다.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길을 떠났지만 아직 그 약속의 실현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처한 현실은 보잘것없고 초라하다. 가나안 땅이 약속으로 주어졌지만 아직 그는 그 땅의 주인이 아니다. 그는 가나안에서 이방인과 나그네로 살고있다. 후손을 약속했지만 아직 자기 몸에서 난 아들이 없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우리가 꿈꾸고 희망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시계추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산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서 마침내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