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노예생활은 필요악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만약 노예생활의 고통과 아픔이 없었다면 그들은 구원을 갈망하고 구원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가 박탈된 노예만이 자유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 수 있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고달픈 삶을 영위하는 노예는 영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고 삶의 벼랑 끝에 서있는 절박한 사람이다. 노예는 누구보다 구원을 갈망하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신다. 출애굽 사건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출애굽을 예고하는 그림자였다. 때때로 역경과 고난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축복이 찾아오듯이 노예생활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고난 뒤에 가려진 축복의 선물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예생활은 기다림과 인내를 요구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당장 급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닌가? 기다림이 있는 곳에 우리의 삶이 있다. 값지고 소중한 것은 기다림이 없이 오지 않는다. 기다림이 부족하고 기다림 자체를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역설적이지만 기다림 없는 기다림을 배워야 한다. 지나친 기대감에 들뜨지 않고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면 기다릴 준비가 된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꽃과 열매는 기다림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 기다림은 더 큰 보상을 기대하는 희망을 잉태하고 희망의 꽃을 피운다. 자기확신과 인내가 성공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기다림이 재능이고 능력이다,
예수님은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사탄에게 3가지 시험을 받으셨다. 이것은 마치 메시아의 자격을 평가하는 청문회와 같은 것으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그런데 이 3가지 시험의 공통점은 기다림으로 때를 기다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지름길을 찾아 빠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인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지도자에게 참고 기다리는 능력은 선한 인성과 더불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기다림이 없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사탄은 언제나 지름길을 제시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젊은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한 사람을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지름길은 언제나 최상의 선택으로 보인다.
첫번째 시험은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사탄은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눈에 보이는 돌을 떡으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행하라고 주문하였다. 사탄은 질문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알겠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가진 능력을 보여달라는 요구였다. 예수는 40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린 상태에 있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인간의 목을 조르는 배고픔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에게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돌을 떡이 되게 하여 허겁지겁 허기를 면하려고 시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먹기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살기위해 먹는 자였기 때문이다.
“임금이라면, 백성들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는 왕이 되어 주세요. 임금이라면” “광해, 왕이 된 남자”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백성이 없는 왕은 존재할 수 없다. 백성의 배고픔을 자신의 배고픔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왕이 진짜 왕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을 통해 사람들의 고통을 몸으로 느끼셨다. 자신의 굶주림보다 배고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하신 예수님은 무엇이 올바른 삶의 길이고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셨다.
배고픔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설사 돌을 떡으로 바꾸어 먹는다 해도 그것은 그때뿐이다. 몇시간 지나면 또 배고픔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돌을 들고 다니며 몇시간에 한 번씩 돌을 떡으로 바꾸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육체적인 배고픔은 영적인 배고픔의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사라진다. 돌을 떡으로 바꾸든, 돈이나 다이아몬드로 바꾸든 그것은 기적을 위한 기적일뿐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대단한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한 삶을 사는데 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