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령하시고 몸 안에 흔적을 남기도록 하셨을까? 옷을 벗고 다니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쉽게 확인할 수 없고 오직 할례를 받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할례의 의미는 무엇일까?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귀두 위에 덮여 있는 표피를 제거하는 행위로 우리에겐 ‘포경수술’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게 들린다. 지금은 위생상의 이유로 아기가 태어났을 때 즉시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거에는 군대에 가기 전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할례는 이집트에서도 행해졌고 바벨론과 앗시리아를 제외하고 고대 근동지역에서 널리 행해졌었다. 그러나 당시의 할례는 남자가 소년기를 거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성년의식의 일환이었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즉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할례의식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한 후 이름을 준다. 따라서 7일 동안은 이름이 없는 상태로 있다. 성경에는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는 말씀이 나온다. 죽은 자는 이름이 남아 있지만 이제 막 태어난 자는 아직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는 산 자보다 이름을 가진 죽은 자가 낫다는 의미로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7일을 한 단위로 보면 8일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할례는 자녀를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신 많은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고 자식을 낳고 번성하게 되는 모든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할례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집단적 성격을 띤다. 할례는 자신이 직접 할 수가 없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할례를 시술하는 자를 모헬(Mohel)이라고 하는데 통상적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술한다. 할례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그들이 연대 의식을 가지고 하나가 되게 한다. 아버지가 아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할례는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묶고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믿음의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는토대 위에 굳게 서도록 그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할례를 통해 언약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또한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새로 태어난 아이의 정체성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에 걸친 오랜 광야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길갈에 캠프를 쳤다. 그들은 애굽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그 곳에서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다. 그들의 오랜 여정의 시작과 끝에 할례와 유월절이 있었다. 할례는 그만큼 그들에게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생활할 때 할례를 행할 수 없었고 광야에서도 제대로 할례를 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 할례를 받아야 했다. 회사에서 발급받은 사원증을 출입문에 갖다 대면 바코드를 인식하고 문이 열려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처럼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의 멤버십을 증명하는 신분증 이상의 특별한 증명서 같은 것이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미가 깊은 곳으로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들은 돌 12개를 길갈에 세워 애굽에서 당한 수치가 굴러가게 하였다. 길갈은 원(Circle), 바퀴를 뜻하며 또 굴러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님은 길갈에서 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그들의 모든 죄와 잘못을 바퀴에 실어 굴려 보내고 새로운 바퀴 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하나님의 큰 축복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할례는 겉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몸의 은밀한 곳에 새겨진 증거를 통해 언약을 기억하고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할례는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할례가 새로운 의지와 결의를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 목걸이나 팔찌를 한다고 해서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할례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완전한 할례가 되려면 몸에서 표피를 제거하듯 욕심과 탐욕,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오는 아집과 독선을 마음에서 잘라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나를 시술할 수 없듯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경이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