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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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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 북부와 남부를 잇는 길은 120마일이다. 가운데 사마리아가 있어 이 지역을 통과하여 가면 3일 길로 단축되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을 피해서 2배나 먼 길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하셨다. 한동훈 비대 대표위원은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근 현대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이그의 저서인 ‘고향’에서 희망에 관해 표현한 대목을 인용한 것이다. 이 책에는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예수님은 왜 아직 길이 만들어지지 않은 좁고 험한 길을 가셨을까?

예수님은 작은 희망의 가능성도 포기한 채 불행한 삶을 사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사마리아에 가셨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율법을 어기는 부정한 일로 간주했지만 예수님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고, 오만과 편견으로 높이 쌓아 올린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사마리아 사람들조차 상대하지않는 이 여인은 배운 것 없고 가난하고 가진 것없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려져 마치 무인도에서 홀로 사는 사람처럼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고 있었다. 같이 사는 남자가 있었지만 이미 남편을 5명이나 갈아치웠을 정도로그녀의 결혼 생활은 번번히 실패했고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삶이 망가져 회복이 불가능하게 보였다. 사람의 눈을 피해 뜨거운 대낮에 우물가에 와야 했던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즉시 물동이를 버려 두고 마을로 뛰어가 순식간에 복음으로 마을 전체를 뒤집어 엎었다. 마을이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처럼 쑥대밭이 되었다. 그 마을에 주일이면 수천명이 운집하는 대형교회도 있고 많은 목회자와 교회 직분자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못한 엄청난 일을 혼자 해냈다. 복음 전도자로 변신한 그녀의 뜨거운 열정을 막을 장애물은 없었다. 그녀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했고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되어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자유를 경험한 뒤 그녀를 가두고 억압하던 상자를 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뜨고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참담함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무엇엔가 쫓기듯 허둥대고 몰려 다니며 방황하는 모습들을.

만약 소돔과 고모라에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다면 도시 전체를 구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눈에는 큰 죄인으로 보였던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나 의인이 될 수 있었다면 그 누구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은 “알곡과 함께 자라는 잡초와 같은 가라지를 뽑아서 제거할까요?”하는 제자들의 질문에그냥 두라고 말씀하셨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으니 알곡과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자라게 두라고 덧붙이셨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가차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믿는 제자들에게 용서와 자비가 심판보다 앞서야 함을 가르치셨다. 의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악인이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인사가 되기위해 열심히 인맥을 만들고 자녀들을 이방인들과 결혼시키고 그들과 피를 섞었다. 그가 부를 축적하고 성공하면 할수록 믿음은 점점 약해져 교회에 가는 일도 빼먹기 일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롯의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천사를 보내셨다.

아브라함은 롯의 가족을 구하려고 매달리기보다는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사람에 의한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간구했다. 그는 하나님과의 논쟁에서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하나님은 그의 손을 들어주셨다. 믿음에는 이런 끈질긴 열정과 집념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존속은 다수의 악인들에게 달려있는가? 아니면 소수의 의인들이 중요한가? 어느 조직이나 모든 사람이 다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조직은 일 잘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소수의 의인들에 의해 유지되고 지탱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언급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믿음을 지키는 의인의 숫자가 아무리 작아도 하나님은 그들을 귀하게 보시고 아브라함이 축복의 통로가 된 것처럼 그들이 세상의 구원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