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후에도 애굽에서 먹었던 갈비탕과 불고기를 잊지 못해 애굽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롯의 아내는 소돔에서 주말마다 사람들을 초대해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고 사람들과 어울려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을 그리워했다. 차라리 소돔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 나오는 이름없는 부자처럼 그녀는 사람들에게 기억될 이름조차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철저하게 현재를 사는 거다. 소돔에서 떵떵거리고 호의 호식하며 잘 살았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 맨 손으로 소돔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그건 엄청난 축복의 선물이다. 우리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건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소금 기둥은 불신과 의심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과거를 끊어내지 못해 불안해하는그녀는 소돔의 포로로 잡힌 사람이었다.
소돔을 그리워하는 롯 역시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며 시간을 지체하다가 산으로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매일 기름진 음식과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오른 올챙이 배와 자기도 모르게 비대해진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고 숨을 헐떡이며 이동하기가 힘들었다. 고혈압과 당뇨 그리고 높은 콜레스테롤 등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하며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익숙한 그들 일행이 걸어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담당 주치의가 있었지만 왕성한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때 ‘소알’이라는 작은 성읍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산으로 도망하는 대신 그 성읍으로 피신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간청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곳에서 피곤한 몸을 달래며 쉴 수 있었다. 그의 일행이 무사히 소돔에서 빠져나와 소알 성읍에 도착할 때까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유보되었다.
아브라함은 40마일 떨어진 헤브론 고지에서 하나님과 논쟁을 벌인 후 다시 그 자리에 서서 연기가 치솟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본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멸망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이다. 소알로 피신한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충격을 받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더 이상 그 곳에서 계속 살 수가 없었다. 그는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으로 올라가 소돔에 있는 대 저택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좁고 컴컴한 동굴에서 살았다. 무책임하게 두 딸을 소돔 사람들에게 내어 주었던 롯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두 딸의 계략에 말려들어 성관계를 맺고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를 통해 아이를 낳은 것은 정의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행동인가? 아이를 낳고 종족을 보존하려는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범죄는 용납되고 용서될 수 있는가? 두 딸의 행위는 아버지 롯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보복과 심판인가?
롯은 손님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두 딸을 사람들에게 내어주었지만 두 딸은 종족을 보존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처녀성을 잃었다. 롯은 술에 취해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 두 딸은 단순히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기는 했지만 이 일로 인해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비록 두 딸의 행동이 비도덕적이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지만 그들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세상의 법은 결과를 가지고 행위를 판단한다. 모든 것이 결과 중심적이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를 정당화할 수 없지만 성경의 법은 의도와 동기를 중시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동기와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딸은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을 낳았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다. 그의 큰 딸의 자식인 모압이 룻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롯은 소돔에서 20년을 살았다. 20년이면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러나 롯이 소돔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소돔이 그를 변화시켰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세상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롯은 한 집안을 대표하는 가장이고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영적으로 실패한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을 따라 나설 때만 해도 그의 믿음에는 진정성과 열정이 있었다.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뚫고 나갈 용기가 있었다. 그러나 재산이 불어나면서 믿음은 식어졌다. 열악한 환경에서 믿음이라는 나무는 자란다. 노후를 보장해 줄 것 같았던 많은 재산이 순식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그는 목숨을 부지하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어두운 동굴에서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야 했다. 두 딸과 동침하여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뒤 그는 무대에서 사라지고 아브라함과 남남처럼 완전히 분리되었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