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69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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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사라가 아들을 낳았다. 매일 잠자리에서 꿈꾸던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하게기다렸던 기쁜 소식인가? 희망은 바라는 것을 확신하고 기다리는 기다림이다. 그것은 불확실한 상태에서 막연하게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다. 성경에 굳게 서다 (Stand firm)라는 표현이 종종 나온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두 발로 딛고 굳게 서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동시에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하며 인내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꿈꾸고 희망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좌절하고 무릎을 꿇는 경우가 허다하다.
젊을 때 미국 유학을 꿈꾸다가 가정 사정으로 인해 포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유학을 못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이다. 현실의 장벽을 넘어설 만큼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일어설 용기가 없었던 거다. 희망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앞에서 1%의가능성에 목숨을 걸 용기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인내를 요구한다. 
창세기 12장에서 25장은 우리에게 절망을 뛰어넘는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이삭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다. 그 나이에 아들을 본다는 건 감히 꿈을 꾸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밤하늘에 별들처럼 많은 후손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삭은 첫 열매로 그에게 왔다. 첫 열매는 많은 수확을 예고하고 보장하는 증거이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로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삭은 많은 후손을 대표하며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다. 이삭이 태어나자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오랜만에 큰 웃음소리가 나고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시대가 열린 것을 축하하고 태어난 아기를 축복했다. 그러나 성경은 떠들썩한 잔칫집 분위기와 더불어 차분하게 진행되는 의례의 과정을 통해 숨어있는 다른 느낌의 분위기를 전한다.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의 후계자의 자리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투쟁을 예고한다. 무대에 두 사람의 주연 배우가 설 수는 없다. 이삭의 등장으로 이스마엘은 장남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채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말없이 무대에서 사라진다. 아브라함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라고 이름지었다. 이삭의 탄생은 그의 이름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특히 사라는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고 말하며 웃음의 꽃을 활짝 피웠다. 그러나 하갈과 이스마엘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삭은 불화와 갈등을 제공하는 씨앗이었고 그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자 사람들을 모아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보통 아기가 젖을 떼는 나이는 3살이다. 잔치가 벌어진 자리에서 이스마엘은 이삭을 조롱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불안과 질투심에서 나온 비웃음과 조롱이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성대한 잔치를 벌이자 큰 아들이 울분을 참지 못해 아버지에게 따지고 불평하는 것처럼 그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이삭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나 그가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행동이었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더 이상 아브라함의 집에 머물 자리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러나 하갈과 이스마엘이 집안의 평화를 위협하는 걸림돌이라고 판단한 사라는 그들을 초기에 제거하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 쫓으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하갈을 당신의 여종이 아니라 이 여종으로, 이스마엘을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로 표현한다. 애굽 여종이 낳은 아들이 결코 아브라함의 아들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내쫓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가라쉬(Garash)이며 관계를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라는 모든 관계를 깨끗이 정리한 후 인연을 끊고 그들을 집에서 내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에 약한 아브라함은 차마 그들을 내쫓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백업 플랜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노트북을 잃어버려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데이터는 물론 은행계좌번호와 같은 개인정보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트북을 되찾았지만 이미 데이터를 복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손상이 된 상태였다. USB나 다른 보조 장치에 미리 백업을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만약 이삭에게 문제가 생겨 대를 잇지 못하는 중대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위한 백업 플랜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굳이 자식의 인연을 끊을 필요까지 있을까?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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