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72

KAZT 어드민
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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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의 제목은 히브리어로 “아케다(Aqedah)”이다. ‘아케다’는 묶는다(Binding)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묶어서 제단에 바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 일대기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부분이다. 마침내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이삭이 태어났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는 표현을 3번이나 반복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고 언약의 신실하심을 입증하셨다. 국회 청문회에 참석해 진실만을 증언한다고 선서까지 하고나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머리를 갸우뚱거리고 수시로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보면 자기 체면과 이익을 위해 기꺼이 진실을 은폐하는 인간의 속성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젠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언약의 신실함을 보여줄 차례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어 “히네니(Hineni)” “내가 여기 있나이다(Here I am)”라고 즉각 반응했다. 그는 언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외침의 소리가 그에게는 전혀 해당이 되지않는다.

창세기 12장부터 22장까지 아브라함은 총 10번의 시험을 받는다. 첫번째 시험은 12장에서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10번째 시험은 22장에서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첫번째 시험과 10번째 시험은 평행대구를 이룬다. 첫번째 시험과 10번째 시험은 모두 히브리어 “렉레카(Lek Lecha)”떠나라는 말로 시작한다. 첫번째 시험의 “렉레카”가 과거와의 단절, 즉과거의 청산을 요구하는 말이었다면 10번째 시험의 “렉렉카”는 미래와의 단절, 즉 미래의 포기를 요구한다. 첫번째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가족과의 관계를 끊어야 했고 10번째 시험에서 그는 아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했다. 첫번째 시험이 아들의 탄생을 가져왔다면 10번째 시험은 아들의 죽음을 가져온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일이다. 마지막 시험에서 그는 다시 하나님에게 제단을 쌓는다.

살인을 금지하신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고 명령하셨을까? 그것도 아버지에게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이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렸을까?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아브라함이 비 윤리적이고 반 인륜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성경에서는 금하는 일이지만 당시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방종교와 우상숭배에서 비롯된 풍습은 다산과 풍요의 복을 위해 어린아이의 희생을 요구했다. 이런 풍습을 익히 잘 알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 충분히 납득이 가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순간 그의 마음은 바닥에 떨어뜨린 그릇처럼 산산조각이 나 찢어지고 한없이 고통스러웠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살인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살인죄를 범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당신이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에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매정하게 죽일 수 있을까?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전혀 인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면 “내 자식을 죽이는 일만큼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하고 거세게 반발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겠는가?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줄행랑을 쳤다가 오히려 사람들에 의해 바다에 던져져 고래에게 먹혀 죽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요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3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도망쳤냐고 요나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런데 아브라함만 딜레마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딜레마에 빠졌다. 만약 이삭이 죽는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축복의 약속이 물거품이 되고 스스로 약속을 깨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지만 동시에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으셨다. 아브라함은 과연 모두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믿음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최종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무슨 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이 어려운 시험을 주셨을까? 우리가 흔히 즐기는 게임에서도 영웅이 되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중 가장 어려운 시험은 시련이다.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최강의 적을 만나싸워 이겨야 하는 단계가 주인공이 통과해야 할 최종관문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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