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아들 이삭과 하인 두 사람을 데리고 말없이 침묵 속에서 3일동안 길을 걸었다. 그는 3일동안 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로서 말년에 얻은 소중한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는 참담한 심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속이 바짝 타 들어가고 아무것도 먹고 마실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큰 상처와 고통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 뒤 다시 그 아들을 제단에 바치라는 요구를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상점 계산대 옆에 “절대 반환 불가(No return)”라고 큼직하게 써 붙여놓고 물건을 세일 가격으로 파는 사람들처럼 “절대 반환 불가”를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제단에 바치기 전 이미 자신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왜 하필이면 3일동안 길을 걸어야 했을까? 2일이나 4일 또는 일주일간 길을 걸을 수도 있지 않은가? 3일은 예수의 죽음과 연결되는 숫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되고 부활하셨다. 우리는 무덤에 장사되어 땅 속에 묻힌 3일이라는 기간을 생략한 채 예수의 죽음과 부활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부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가복음에는 두 사람의 고백이 나오는데 첫번째 고백은 유명한 사도 베드로의 고백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한솥밥을 먹고 함께 동고동락을 했지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몰랐다. 뒤늦게 베드로가 일어나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지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후에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했다. 그는 교회를 다닌 적이 없고 성경공부를 하지도 않았지만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깨달었다.
예수의 죽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 예수님은 유대력으로 니산월 15일(1월 15일) 금요일에 돌아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잠겼다. 쓰나미처럼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들을 덮쳤다. 예수님이 죽은 후 부활할 것을 여러차례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실망과 좌절로 인해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잃어버리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이 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금요일에 머물러 있었다.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매년 부활절을 지키면서도 마음 속에 기쁨과 자유를 잃어버리고 걱정과 두려움, 실패와 좌절 그리고 고통에 함몰되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부활의 일요일을 맞이하지 못하고 여전히 금요일의 어두움에 갇힌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더 이상 좋은 금요일(Good Friday)이 아니다.
3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 가시고 무덤에 계셨던 기간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려면 장사된 후 무덤에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고 계속 꼬여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이런 참담한 고통의 시간이 장사되어 무덤에 있는 기간이다. 사람에 따라 그 기간이 3일일 수도 있고 3년, 또는 10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완전히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죽어야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에 대한 탐욕과 자만심으로 얼룩진 나의 옛 자아를 땅 속에 묻어야 한다.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통해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로 채울 수 있다면 무덤에 완전히 자신을 묻고 장사 지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어나는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났을 때 갑자기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어두움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눈 먼 맹인으로 살았다는 것을 깨달었다.또 많은 사람들이 눈 먼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쌓아 올린 방대한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지식은 껍데기에 불과하여 배설물처럼 쓰레기 통에 버려야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그것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3일동안 길을 걸으며 자신의 옛 자아를 땅 속에 묻었다. 아들에게 집착하는 아브라함은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에게 3일은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한 죽음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절망과 죽음을 넘어 부활로 나아가는 희망의 시간이었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