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째 되는 날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삭을 살리시고 새 생명을 주셨다. 아브라함도 죽음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났다. 물론 예수님이 통과하신 완전한 죽음과는 거리가 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은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을 보았다. “이 세상의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 단지 희망이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6일간의 작업은 3일씩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처음 부분이 창조를 위한 큰 구조와 틀을 만드는 작업이었다면 두번째 부분은 만들어진 구조 안의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었다. 처음 3일째 되는 날 땅이 드러나고 나무가 열매를 맺고 식물이 자라나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 마찬가지로 두번째 부분 중 3일째 되는 날 육지동물과 사람이 창조되었다. 그러고 보니 3일째 되는 날은 모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놀라운 창조의 날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한 3일간의 기간은 생명과 구원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고통과 기다림의 시간이지만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기꺼이 견딜 수 있는 기쁨과 희망의 시간이다.
아브라함은 산 밑에 도착하여 베이스 캠프를 차려 놓고 종들에게 산에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린 후 다시 돌아올 예정이니 이 곳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다음 이삭을 데리고 둘이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우리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이삭이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이삭이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 것을 확신했을까? 아들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달라고 요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만약 이삭이 약속의 아들로 그에게 왔다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성취되기도 전에 죽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베이스 캠프를 떠나 산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자신과 싸우며 올라가야 하는 외롭고 고독한 길이다. 오래 전 “식스 캠프(Six Camp)”라는 이름의 창업회사가 있었다. 마지막 베이스 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이런 유혹이 그를 괴롭혔지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듯 죽음을 향해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3일동안 걸은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오직 산을 오르는 일에 집중했다. 최선을 다하는 매 순간이 살아있는 자신을 확인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는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모든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는 마침내 모리아 산 정상에 올랐다. 이삭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에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에게는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그는 이삭을 제단에 묶고 그를 죽이려고 칼을 든 긴박한 시간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제사에 사용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는 시험자(Tester)의 이미지와 이삭을 대신해 양을 공급하는 공급자(Provider)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공급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아(ra-ah)”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본다(See)는 의미가 있다. 공급하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해서는먼저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달라고 떼를 쓰고 울부짖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았다. 그는 수풀에 걸려있는 숫양을 발견하고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그리고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Adonai yireh)’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뜻이다. 창세기 22장에는 본다는 말이 의도적으로 반복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시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보았다.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세상의 구원을 미리 보았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고 돌아가셨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지만 불순종으로 언약이 깨어졌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어 언약의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를 담당하게 하셨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셨다. 십자가는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 이 선물을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뿐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