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24장 6절과 8절에는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와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로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는 문장이 반복된다. 이 문장은 히브리어로 “바 옐쿠쉬네이헴야크답(Va YelchuShneihemYachdab)”이며 두 사람이 함께 계속 길을 걸었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 50마일 이상 되는 거리를 3일동안 걷는다. 7절에 이삭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아브라함에게 질문한다. “불과 나무는 여기에 있거니와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한다. 어쩌면 이삭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재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말없이 침묵하며 길을 걸었다. 6절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길을 걷는 가족의 소박한 면을 보여준다면 8절은 이삭과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기위해 함께 길을 걷는 동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순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넘어 시험을 받는 당사자들이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으며 함께 걷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처럼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의 한계에 도전하는 시험을 함께 통과하고 하나님 나라의 초석을 세울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겪은 시험의 키워드는 순종이었다. 아브라함의 순종, 이삭의 순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운다. 믿음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은 순종이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져 죽었다. 그들은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은 차라리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성경은 그들이 실패한 이유가 믿음의 부족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지 못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믿음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믿음은 단순히 입으로 외치는 일회성 구호가 아니다. 그 안에 진심이 담겨야 하고 끝까지 참고 버틸 수 있는 꾸준함이 있어야 한다. 이런 진심과 꾸준함을 합한 말이 신실함이다. 믿음과 신실함이 함께 기능할 때 완전한 믿음이 된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실함으로 인내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 행복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오히려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은 종종 불행의 탈을 쓰고 오기 때문이다. “믿음은 생각의 도약이 아니라 행동의 도약이다”라는 말처럼 믿음은 삶의 변화를 동반한다. 참된 믿음은 나의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며 마법처럼 날마다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한다. 믿음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이라는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올인’하게 만든다. 아브라함은 마치 남극이나 북극의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광야생활보다 더 혹독한 상황에서도 고난을 뚫고 승리하는 믿음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외친 사도 바울처럼 아브라함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외친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세상에 무릎꿇지 말고 거대한 세상에 온몸으로 맞서 마침내 이기는 최후의 승자가 되라고!”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했을 때 하나님은 “내게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너에게 큰 복을 주겠다는 말은 복의 크기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약속한 복을 정말로 주겠다 (I will surely bless you)는 확증의 말씀이다. 너의 씨가 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말씀에서 씨(Seed)는 집합명사로 단수와 복수형이 같은 단어이다.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지칭하며 동시에 아브라함에게 속한 많은 후손을 의미한다. 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은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고 이기는 것을 상징하며 영적으로 사탄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지만 이 말은 음부의 권세와 연결된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음부의 권세는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악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셨다. 아브라함은 부활의 소망을 품고 바울의 언급처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믿는 자들은 죽음을 이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