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그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릴레이 경주를 예로 들면 그는 자신이 뛰어야 할 코스를 끝내고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야 할 때가 왔다. 아브라함이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으켜 세운 창업자라면 이삭은 그 기업을 물려받아 수성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마지막 프로젝트가 남아 있었다. 그건 이삭을 위한 좋은 여자를 찾아 결혼시키고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아브라함도 나이가 많아 늙었지만 이삭도 어느새 흰 새치머리가 힐끗힐끗 보이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우리 집안에 어떤 여자가 들어올 것인가?” 이는 집안의 운명이 걸린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중대사를 놓고 시간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쉬운 길을 찾고 실수를 하게 된다. 믿음의 길에는 항상 지뢰밭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도처에 쉬운 길 또는 지름길에 대한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와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신을 섬기는 가나안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였다. 이역만리 타향 땅에서 때로는 향수에 젖어 “타향살이 몇 해이던가?” 눈물을 흘리고 노래하며 두고 온 가족과 고향 땅을 그리워했지만 이삭의 아내를 찾기위해 자신이 직접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삭을 고향에 보낼 수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어떤 경우에도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머물러야만했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없이 자신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충실한 종을 고향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브라함의 종은 500마일이 넘는 멀고 험한 길을 여행해야 했다. 그가 무사히 살아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모르고 별탈없이 고향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좋은 여자를 만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또 운 좋게 좋은 여자를 만났다고 해도 한 번도 얼굴을 보지못한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가족과 고향을 포기하고 집을 떠날 여자가 과연 있을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프로젝트였다.
자신에게 맞는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결혼 기준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조건은 생각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는 돈, 외모, 직업, 재산, 학벌, 집안 등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겉모습과 스펙을 중시한다. 외국에 유학을 다녀와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지방대를 나와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에 비해 1차 서류전형에 거뜬히 합격하고 부모를 만나는 최종면접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게 까다로운 기준에 맞추어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도 결혼생활이 오래 가지못하고 불행하게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고를 때 상처나 흠이 없는지 이리 저리 꼼꼼하게 살펴보고 탐나게 예쁜 사과를 고르는 것처럼 이기심과 탐욕의 눈으로 사람을 스캔하고 고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수록 결혼 후에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완벽한 사람이 굳이 나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진 것을 나누기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심리는 한쪽이 무거우면 심하게 기울어지는 저울처럼 상대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상대에게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2+2=4가 되는 덧셈이 아니라 2-2=0와 같은 뺄셈이나 2-(2 X 2)=-2와 같이 원래 숫자에서 곱한만큼 빠져나가 원래 가진 것도 잃어버리는 이상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을 만나 이 참에 나도 한번 팔자를 고쳐보자고 독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팔자가 고쳐지지는 않는다. 인생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무엇인가를 원하기 전에 먼저 내가 상대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순서이다. 내 삶의 주인으로 꿈을 향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굳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여 남을 부러워하거나 주눅이 들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집도 없고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데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 혹시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하고 만나보기도 전에 자신의 처지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사람을 만나러 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싼 명품 옷을 빌려입고 가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용기와 당당함이 필요하다.
내가 가난해도 좋다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가난해서 싫다는 사람에게 매달려 결혼을 한다면 과연 오랫동안 좋은 관계가 지속되는 행복한 결혼이 될 수 있을까?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