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브가의 가족은 즉시 길을 떠나려고 하는 종을 만류하고 며칠 집에서 머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먼 길을 갈 것을 권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노래를 부르며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그러자 라반은 떠나기에 앞서 리브가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자다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인가? 온 가족이 리브가의 결혼을 승락한 후 폐물과 선물을 한보따리 받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떠들썩하게 벌였는데 지금 와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엎치락 뒤치락 수시로 마음을 바꾸는 라반의 우유부단하고 음흉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라반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 달라는 야곱과의 약속을 번번히 어기고 말을 바꾸어 20년의 종살이를 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는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리브가를 불러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정작 결혼에 관한자신의 의사를 밝힐 기회가 없었다. 아무리 남자 중심의 사회라 하더라도 결혼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여성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집안식구들이 성급하게 결혼을 찬성하고 고가의 선물을 받고 환호성을 터뜨리기 전에 본인의 의사를 먼저 확인했어야 했는데 경솔한 라반의 행동으로 순서가 뒤 바뀌었다.
그러나 리브가는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가겠습니다 (I will go)”. 그녀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깐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이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자신의 고향인 타라로 떠날 결심을 한 것처럼 집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짤막한 대답이 무덥게 찌는 한 여름에 천둥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지루하게 이어지는 긴 이야기의 방점을 찍었다. 그녀는 왜 낯선 남자를 따라 선뜻 집을 떠나겠다고 했을까?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종을 통해서 남편이 될 사람이 엄청나게 재산이 많은 재력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는 결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쳐보겠다거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하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집안 식구들과 달리 돈이나 재산에는 욕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집을 떠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와 모티베이션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녀는 남편이 될 사람의 사진을 본 적도 없고 카톡으로 통화해 본 적도 없다. 아는 거라고는 마음이 착하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돈이 많고 여자에게 잘 해주는 남자는 어디에나 있다. 굳이 가족과 이별을 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와 살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날 필요가 있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의 종이 며칠간 그 집에 머물면서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진실한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기 집 식구들과는 노는 물이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고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아들의 신부감을 찾으라는 미션을 받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고 집에 머무는 동안 오직 그 일만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그는 틈만 나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신앙심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는 지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집을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는 지를 말해 주었다. 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이삭의 아내를 현지에서 구하지 않고 이렇게 먼 길을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음을 전해주었고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그의 믿음을 칭찬했다.
리브가는 그가 전한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서 참된 인간의 길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린 왕자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 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우리는 삶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껍질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며 한평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물질의 성공보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리브가는 결혼할 남자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믿음의 길을 걷는 신실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하기를 원했고 사람답게 사는 길을 원했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미래와 도전을 선택했다. 그녀는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서 지금까지 자기가 밟고 올라온 사다리를 쓰러뜨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