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가족과 학교와 교회 공동체가 무너진 지 오래다. 천국에 가는 것이 구원이고 교회에 다니는 유일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위험한 발상이다. 과연 천국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자들이 가는 곳인가? 타인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잃어버린 채 홀로 천국에 가기를 꿈꾼다면 탐욕에 불타는 이기주의자들이 모인 천국은 쓰레기 처리장처럼 악취가 진동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 왜 그토록 기를 쓰고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보다 당신이 천국에 가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진짜 크리스천이다.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아직도 잉꼬부부처럼 보이는 한 목회자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갈등을 일으켜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혼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자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목회자였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아내에게 그는 따뜻함이 없는 차갑고 냉정한 지식인이었다. 문제점을 알기 위해 어린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는 어릴 때 부모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노래가사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오랜 시간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만약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공동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교회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공동체의 기능을 회복하고 눈에 보이는 소중한 한 생명을 사랑하고 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여야 하는가?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
렉레카는 너 자신을 위해 스스로 가라(Go for yourself)는 뜻이다. 이는 누군가의 명령이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떠나는 것을 말한다. 떠남은 나의 선택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경우를 만날 때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미국의 대통령을 여러 명 배출한 케네디 집안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고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철저하게 훈련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판단력이 흐려지고 선택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자 친구에게 문화상품권을 선물할까? 아니면 향수를 선물할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먹을까? 아니면 컵라면 먹을까? 집 거실에 커튼 색깔은 바다 빛 하늘색으로 할까? 아니면 은은한 핑크 색으로 할까? 강아지 밥은 시간을 정해서 2번 주는 게 나을까? 아니면 수시로 먹도록 할까? 개업하는 식당이름은 뭐라고 할까? 이런 소소한 선택으로부터 생사가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 등 다양한 선택이 우리를 괴롭힌다.
어떤 선수를 선발로 기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축구감독, 뇌사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편안히 보내 드리는 게 도리인지를 놓고 안락사를 고민하는 아들,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갖고 싶지만 의견 차이로 다투는 불임부부, 피임과 유산이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보수적인 크리스천, 20년 넘게 살았는데 다른 여자가 생겼는지 갑자기 이혼을 통보하는 남편의 요구를 받아들여야할 지 아니면 자식들을 위해 그냥 눈감고 살아야 할 지를 고민하며 잠을 못 이루는 옆집 영숙이 엄마, 하는 일은 몇배 고되지만 돈을 더 많이 준다는 직장으로 옮길까? 아니면 적게 먹고 적게 싸는 게 나을까? 고민하는 30세의 청년 등 많은 사람이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한다.
차라리 이런 문제를 구글에게 물어보고 답을 찾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할지 모른다. 구글은 직감이나 섣부른 예측을 믿지 않고 축적된 데이터와 통계자료에 근거해 결정하기 때문에 좀처럼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방향과 목표를 결정하는 운명적 선택이나 영적인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여기에는 빅데이터가 힘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본능적 직감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이 판단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정기원 목사 (602) 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