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그바(Yigva)-그가 마지막 숨을 쉬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마무리하면서 그의 자손들을 상세히 열거한다. 그는 그두라(Keturah)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그두라를 “또 다른 아내(Another wife)”로 표현함으로써 그녀가 하갈이 후처가 되기 훨씬 전에 아브라함 집안에 들어온 것을 암시한다. 집안에서 그녀의 위치는 하갈과 많이 달랐다. 하갈은 아브라함이 애정을 쏟은 첫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고 비록 사라와의 갈등 끝에 집에서 쫓겨났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의 일환으로 그두라의 자손들이 자세히 소개된다. 그녀는 모두 여섯 아들을 낳았고 일곱 명의 손자들과 3명의 증손자들을 두었다. 그러나 성경은 자손들의 많은 숫자보다 아브라함의 후계자가 이삭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많은 소유와 재산을 골고루 물려받았지만 오직 이삭만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을 이어받을 유일한 상속자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거인이 태어나 한 세대를 풍미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큰 별이 떴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듯 그는 175세를 일기로 무대에서 퇴장했다. 히브리어 원어로 “이그바(Yigva)”는 마지막 숨을 쉬었다는 뜻으로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잘 익은 과일처럼 무르익어 성숙한 노년의 나이에 자기 삶에 만족한 노인으로 죽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죽은 뒤에는 그 사람이 무엇을 모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뿌렸느냐로 평가받는다는 말이 있다. 아브라함은 짧지않은 세월을 보내며 숱하게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모난 돌이 둥글게 되듯 한층 성숙해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했던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 만남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모멘텀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그의 삶에는 기쁨과 자유가 있었다. 사람은 정신적인 만족이 있을 때 뿌듯하고 행복하다. 화려한 은퇴식이나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 성대한 장례식은 없었지만 남다른 그의 삶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직장을 잡는 시기가 늦어져 40살이 넘어서야 결혼을 하고 뒤늦게 늦둥이를 본 직장인이 “가까스로 막차를 탄 기분”이라고 했다. 이들은 분투하는 ‘지각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설정하고 꿈꿔 온 ‘정시’에 인생의 각 과제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시간표는 각자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도 변한다. 타인이 과거의 잣대로 재단하기 어렵다.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하기가 싫어 친구들과 놀기만 하다가 대학을 가지 못하고 술로 인생을 탕진하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려 10년이나 늦게 대학에 진학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최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한 뒤 창업에 성공해 전 세계를 누비는 기업가가 되었다. 아브라함 역시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각 인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이다. 그 나이에 무슨 꿈을 꾸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를 써야하는 나이에 변호사 공부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 안에서 꽃을 가꾸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등산한 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자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는 나이이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이미 시들어버린 꽃이나 꺼져가는 불처럼 보이는 늦은 나이에 그는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꿈을 꾸고 집을 떠났다. 마침내 그의 지각 인생은 화려한 꽃을 피우고 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삶은 무슨 일이든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소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한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성공적인 삶의 정의는 무엇일까? 우리는 큰 업적이나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을 영웅이나 위대한 인물로 추앙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통해서 어떤 재능과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를 애써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고위직에 있는 장관이나 국회의원 또는 지도자가 아니라면 그 사람의 능력을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매일 눈뜨고 일어나 회사에 출근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한 후에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 한편의 드라마를 보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그 효용성과 가치를 따질 수 있을까? 자녀들 교육과 결혼을 위해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작은 아파트 하나 딸랑 남은 게 재산의 전부라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노후 걱정을 하는 사람에게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묻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며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