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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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 어둠이 짙어가는 초저녁 거리에는 하나, 둘 새벽 빛깔같은 개스 등이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치장한 상점은 여러가지 상품들을 쌓아놓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혹하고 간간이 그안에서는 행복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순간의 충격으로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로빈슨은 흐느적 대는 걸음으로 분주하게 오가는 행인들에 휩쓸려 어딘가를 걷고있었다. 특별히 목적지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다만 습관처럼 발을 내딛을 뿐이었다. 그러한 로빈슨 곁으로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마시자! 코카콜라! 5센트"라는 광고를 매 단 전차가 "땡,땡,땡" 종을 울리며 빠쁘게 거리를 달렸다.

펨버튼으로부터 코카콜라의 시럽에 관한 운영권 3분지 2를 타인에게 양도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로빈슨은 어떻게 펨버튼의 집을 나왔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않았다. 다만 지금 그는 펨버튼의 행위에 심한 배신감과 함께 분노에 쌓여 무작정 애틀란타의 시가지를 배회하며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되뇌일 뿐이었다.


지난 1년간 로빈슨은 오직 코카콜라와 함께 살아왔다. 우연하게 펨버튼과 인연을 맺은 후 로빈슨은 코카콜라와 함께 눈을 뜨고 코카콜라와 함께 잠을 잤다. 이러한 그의 집념으로 그는 소비자들이 쉽게 기억할 수있는 당시로서는 색다른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짓고 이어 물살에 이는 바람처럼 유려한 필체의 코카콜라 로고도 창작했다. 그리고 로빈슨은 병중의 펨버튼을 대신해서 시럽을 만들고 시럽이 담긴 단지를 들고 거래처를 뛰어다니는가하면 광고도 직접 챙겼다. 이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코카콜라는 일년만에 번듯한 만병통치약 겸 청량음료로 자리잡게되었다. 이렇게 자리매김한 코카콜라가 자신의 손을 떠나다니. 펨버튼의 선언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몽유병 환자처럼 애틀란타 시가지를 헤매는 로빈슨 곁으로 코카콜라 광고를 단 전차가 또다시 "땡,땡" 종을 울리며 지나갔다.


코카콜라 양도 통보에 배신감으로 경악

다음 날 아침  로빈슨은 에드 홀랜드를 찾았다. 펨버튼이 신약을 개발할 때마다 투자해왔던 홀랜드는 펨버튼의 이번 처사에 무척 분개했다. 두 사람은 코카콜라는 펨버튼이 개발했지만 이를 상품으로 성공시킨, 성장하면 펨버튼 케미칼 회사의 파트너에게는 응당 그 권리를 나누어줄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펨버튼은 동료들에게 일언 반구도 없이 비밀리에 권리를 처분해버린 것이다.

7월22일 로빈슨과 홀랜드는 얼마전 펨버튼 케미칼 회사의 경리장부 일체를 갖고 달아난 알렉산더 사건을 위임했던 26세의 젊고 야심찬 변호사 캔들러 (John Candler)를 찾아갔다. 로빈슨과 홀랜드는 펨버튼이  코카콜라 시럽에 대한 권리를 임의로 양도한 사실을 설명하고 자신들도 코카콜라에 대해 얼마간의 권리를 취할 수 있을까하고 상의했다.


"나의 행동은 정당하다" 변호사에게 일갈

알렉산더 사건을 다루면서 펨버튼 케미칼의 내부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캔들러는 우선 펨버튼의 입장을 들어보자고했다. 그날도 펨버튼은 초라하고 작은 집의 침대에 누워 세 사람을 맞았다. 그리고 펨버튼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라고  반문하고 "로빈슨과 홀랜드는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는 그들에게 단 한푼의 권리도 양도한 적이 없고 또 양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했다. 이같은 펨버튼의 반응을 들은 변호사 캔들러는 펨버튼이나 로빈슨 누구에게서도 단 한푼의 돈이 나올 여지도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코카콜라의 새주인이 된 로운즈와 베나블은 107 마리에타의 붉은 벽돌집 뒷마당에 널려있는 코카콜라 시럽 제조기구와 장비및 각종 선전용품을 마차에 싣고 한 블럭 건너 마리에타와 화이트 홀 코너에 있는 제이컵스 약국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싣고 온 짐을 약국 지하실에 부렸다. 이제부터 코카콜라 시럽은 펨버튼 케미칼의 뒷마당이 아닌 제이컵스 약국의 지하실에서 베나블이 만들고 운영자금은 우선 로운즈가 조달하기로 했다. 코카콜라 시제품을 맨 처음 시음하고 이어 신문에 추천서를 쓰고 역사상 최초로 코카콜라를 판매한 베나블은 이제 당당한 코카콜라의 주인이 되어 생산까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베나블과 로운즈는 로빈슨 만큼 영업과 판매에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 자연 지하실에는 재고가 쌓이고 노력한 만큼 수입은 미미했다. 이제 로운즈는 지출에 쪼들리는 입장이 되었다. 생각 끝에 로운즈는 베나블에게 "우리가 노력한 만큼 수입이 없네. 차라리 누군가 하나가 이 사업을 맡으면 어떤가. 자네가 사든가 아니면 내가 맡던가."라고 제의했다. 자칭 애틀란타 청량음료의 대부라고 자부하던 베나블도 손을 들고 베나블의 지분을 로운즈가 인수했으나 수익은 전혀 개선되지가 않았다.


코카콜라 권리 다시 워커에게 넘어가

로운즈가 한창 운영에 애를먹고 있을 때 펨버튼 케미칼에서 영업업무를 보던 펨버튼의 옛 전우 울퍼크 워커가 로운즈의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더이상 코카콜라에 매력을 잃은 로운즈는 자신이 인수한 가격 그대로 워커게 양도하기로했다. 1887년 12월13일 로운즈는 펨버튼의 동의를 받고 자신의 지분 (베나블의 서명은 이전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대신) 일체를 1200 달러에 양도했다. 코카콜라의 권리는 이제 인수자금을 워커에게 제공한 워커의 여동생 도지어(Margaret C. Dozier)가 9분지 2, 그리고 워커가 9분지 4를 행사하게 되었다.

베나블이 자신의 지분을 포기하기 전 베나블은 애틀란타 시 서쪽 외곽에 저택을 짓고 있었다. 마침 건축자금이 모자라자 베나블은 제이컵스에게 코카콜라 권리매입계약서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 이렇게해서 미쳐 차용금액을 상환하지않은 상태에서 베나블은 이중으로 코카콜라 권리를 매매한 격이되었다.


펨버튼 특허약품 제조 동업자를 모집

펨버튼은 1887년10월2일 애틀란타 컨스티튜션 신문에 "급 구함: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안정된 제조업의 권리 반을 2,000 달러에 양도함. 위험부담이 전혀 없음. 투자금액의 50%를 당장 보장. 더 많은 수익이 가능한 드문 기회"라는 광고를 냈다. 채권자들이 두려워 펨버튼은 연락처를 자신의 집 주소 대신 근처 친구의 집으로 했다. 

이 광고를 보고 3명의 투자가들이 달려들었다. 앨러배머에서 화공약품상을 하며 일찌기 펨버튼의 여러가지 특허약을 취급한 메이필드 (J .C. Mayfield),를 포함하여 조오지아의 바아네스빌에 사는 브러드워스, 머어피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수차례 펨버튼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펨버튼이 개발한 여러가지 특허약과 그에 관한 기록을 확인하고 펨버튼과 공동으로 약품을 제조하고 판매하기로 했다. 펨버튼이 투자자들에게 제공한 정보에는 물론 코카콜라도 포함되어 었었다. 3명의 투자가들은 12월 행운을 약속한 새사업을 일구기위해 애틀란타로 이주했다.  

실제 코카콜라는 펨버튼과 워커, 워커의 여동생 도어지어 여사 3인의 소유로 되어있으나 이후 그 권리는 여러사람들의 이해관계로 얽혀들게 되었다. 이후 펨버튼의 아들 챠알리, 제이컵스 약국의 제이컵스, 새로 펨버튼 의약품 회사에 참여한 메이필드, 머어피, 블러드워스 등도 권리를 주장하게되었다. 


코카콜라 권리 실타래처럼 얽히기 시작

펨버튼은 1888년 1월14일 메이필드등 3인의 동업자와 함께 자신의 특허의약품을 생산할 펨버튼 의약품 제조회사를 설립했다. 펨버튼은 이 회사에 코카콜라를 포함하여 얼마 전 개발한 샴페인 맛의 레몬과 오렌지 추출액 등 여러 의약품 특허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코카콜라에 관한 권리를 제이컵스에 이어 메이필드, 머어피 그리고 블러드워스까지 넘어가게 되었다.

한편 코카콜라를 새로 운영하게된 워커는 생각처럼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자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자금이 원활하게 돌아가지않자 제품선전도 원활하지않아 자연 판매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난국을 타개하기위해 워커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때 워커 주위에서 코카콜라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로빈슨이 구세주로 나서면서 코카콜라는 기사희생의 전기를 맞게된다. 이때 둥장한 인물이 오늘날의 코카콜라를 만든 키가 고작 5피트인 작은 거인 캔들러(Asa Griggs Candler)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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