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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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인간의 욕망은 길을 통해 성취된다.
재화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은 망망대해 바다에 바닷길을 내고 신대륙을 찾아 재화를 탐했다.
플로리다 탐험대의 일원이었던 '디 바카'의 해상조난 이야기는 유럽 대륙의 모험가들을 뱃길을 통해 신대륙으로 불러들였다. 재화에 대한 강한 욕망을 이루려던 코로나도, 오나테 같은 탐험가들은 광활한 대륙에 말발굽으로 길을 내면서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했다. 오늘의 아리조나 투산 인근 투박의 수비대장 '디 안자'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황제의 길을 개척하여 수백년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던 지상 최고의 낙원 캘리포니아의 자태를 외부 세계에 내보였다. 선보였다.


사위는 온통 어둠뿐, 달과 별도 사라진지 오래다. 뱃 전을 두드리던 거센 바람 소리, 빗소리 그리고 대원들의 외마디 비명소리도 미친듯 날뛰던 파도에 묻혀버린지 오래다. 산더미같은 파도가 내리칠 때마다 낙엽처럼 떠돌던 뗏목도 아니고 배도 아닌 엉성하게 나무토막을 엮어만든 배는 순간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가 천길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오늘의 텍사스 갈베스톤 섬.
태초이래 밀려오는 파도에 둥글게 마모된 바위가 듬성듬성 솟아있는 모래톱에서 '디 바카'가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온통 조각난 나무 토막과 바람결에 실려오는 파도소리뿐이었다. 기진한 '디 바카'는 다시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디 바카'가 눈을 떴을 때 차가운 11월의  태양은 중천을 지나고 파도소리와 함께 갈매기 소리만 요란했다. 그의 눈길이 가는 곳에는 몇몇 대원들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부서진 나무토막 사이에 누워있고 또 몇몇은 얼이 빠진 모습으로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토착민의 노예가 된 조난당한 사람들
'디 바카'는 1527년 신임 총독 '디 나르바에즈'가 이끄는 플로리다 탐험대의 재무관겸 치안감으로 장도에 올랐다.  그는 300여명의 대원과 함께 플로리다에서 '7개의 황금도시'를 찾다가 대원 60여명을 잃었다. '디 바카'는 살아남은  대원 242명과 함께 조잡하게 엮은 배 5척에 나누어 탔다. 그리고 플로리다의  '말들의 만'이라는 세인트 피터스버그를  떠나 새 정착지를 찾아 연안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항해중 폭풍우에 휩쓸린 '디 바카'와 함께 뗏목에 타고있던 대원들은 갈베스톤의 모래밭까지 떠밀려와 천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들은 이후 토착민들의 노예가 되어 짐승처럼 부림을 당하다가 곧 닥쳐온 추위와 굶주림에 하나하나 죽어갔다. 일부는 탈출하려다 토착민들의 화살을 맞고 일부는 습지대와 울창한 나무숲을 헤매다가 목숨을 다했다.
토착민들의 노예로 떠돈 지 4년여, ' 디 바카'는 어깨너머로 보아온 의학지식으로 토착민들의 간단한 질병을 치료하여 신임을 얻었다. 어느정도 자유를 얻은 '디 바카'는 촌락부근을 돌아다니며 노다지를 찾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조난당한 후 노예가 된 대위 도란테스 등 3명의 대원을 만나 뉴 멕시코를 향해 4년간의 방랑을 시작했다. 이들은 텍사스와 뉴멕시코를 지나 아리조나의 남서쪽을 거쳐 칼리포니아만 근처까지 떠돌았다. 방랑중 일행은 토착민을 만나면 목에 건 방울뱀을 흔들면서 주술사 행세도하고 또 간단한 질병도 치료해 주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드디어 표류를 시작한지 8년만인 1536년 '디 바카'와 그 일행은 오늘의 멕시코 쿠리아칸 근처에서 스페인 노예 사냥꾼에게 발견되어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왔다.


조난당한 지 8년만에 노예 사냥꾼이 구조
'디 바카'와 그의 동료들의 모험담과 또 '디 바카'의 생존기인 "난파선 사람들"이 유럽에서 출간되자 옛부터 전해져 온 신세계가 어디인가에 있다는 '7개의 황금도시'를 찾으려는 모험가들은 신세계로 몰려들었다. 또한 일확천금을 꿈꾸는 모험가들도 신대륙으로 향했다. 한 손에는 황금을 캐는 곡괭이와 또 화승총을, 또 한 손에는 토착민들의 영혼을 구한다는 성경을 손에 든 유럽대륙의 모험가들은 신문명과 함께 홍역, 천연두, 티푸스같은 전염병도 신대륙에 전파했다. 태고이래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벗삼아 전혀 면역력이 없는 토착민들은 유럽인들이 묻혀온 전염병에 속절없이 죽어갔다. 또한 스페인 제국의 이주자들은 스페인 황제의 보호를 받는 신민이 된 토착민들을 농장, 목장, 광산에 끌고가 노예처럼 부렸다. 그리고 그들의 토속신앙과 주술치료도 금하면서 토착민들의 원성을 샀다.

 

'조난당한 사람들' 모험가를 신세계로 불러들여
'디 바카'와 3인의 조난자로부터 이들의 유랑기를 들은 뉴 스페인 총독 '멘도자'는 부유한 뉴 갈라시아 총독 '코로나도'에게 대규모 탐험대를 꾸려 어디엔가에 있다는 전설속의 '7개의 황금도시'를 찾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탐험대원을 이끌고 아리조나, 뉴 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콜로라도, 캔사스 등 너른 대륙을 2년여간 헤맸으나 '7개의 황금도시'는 끝내 찾지 못했다. 대신 어마어머하게 너른 영토를 스페인 황제에게 헌상할 수 있었다. 또한 토착민들에게 신문명과 함께 끔직한  전염병을  퍼뜨렸다. 코로나도의 탐험대 중 일부는 유럽인 최초로 콜로라도강 제방에서 그랜드캐년을 조망하고 또 일부는 유럽인 최초로 들소떼를 목격하고 이를 유럽대륙에 알렸다. 황금도시 찾기에 실패하고 뉴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코로나도'는 토착민의 영혼을 보살피라고 동행했던 사제 3명을 현지에 남겨두었다. 떠나는 탐험대원들을 뒤돌아보며 발끝에 하얀 먼지를 날리면서 말없이 토착민 촌락으로 향했던 이들의 행적은 그후 전해지지 않았다. 또한 '코로나도'는 귀환중 유럽인 최초로 아리조나의 슈퍼스티션 산에  오르기도 했다. '7개의 황금 도시' 찾기에 실패한 그는 아내의 영지를 담보로 차용한 막대한 탐험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결국 파산하고 그 후유증으로 44세의 한창 나이에 요절했다.
코로나도의 실패가 있은 지 40여년 후 뉴 스페인에서 광산으로 한몫 잡은 '에스페호 (Antonio de Espejo)'도 황실의 허가를 받고 오늘의 뉴 멕시코와 아리조나 일대를 섭렵했으나 그도 또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대신 그는 오늘의  버어디 밸리 즉 세도나 부근에서 매장량이 풍부한 광맥을 발견했으나 당시 여건으로는 개발이 여의치않아  바라만 보다가 돌아왔다.
탐험에 실패한 코로나도 방대한 영토 황제에 헌상
1595년 뉴 스페인 최고의 부호집안에서 태어난 오나테는 정복왕 코르테스의  손녀이며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 몬테주마의 고손녀를 부인으로 맞은 당대 최고의 행운아였다. 그는 어렵사리 스페인 황실의 허가를 받아 '7개의 황금도시' 탐험에 나섰다. 그는 북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두 바퀴가 구르는 마차를 몰고 리오 그란데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기념으로 북미대륙 최초로 감사축제를 열었다. 캔사스 등 중부대륙에서 원주민 퀴비라와 혈전을 벌이면서 대륙을 헤맸으나 그도 역시 실패했다. 그는 뉴 멕시코 초대총독이 되어 산타페 도시를 건설하고 이후 뉴 멕시코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다. 탐험중 오나테는 하늘 아래 지상 최고의 천혜의 요새라는 아코마 촌락 부족 수백명을 학살하고 수백명 아코마 토착민에 대한 잔학행위로 의회로부터 5년간 국외추방을 당했다. 그는 콜로라도 강을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이며 콜로라도 강 이북 캘리포니아는 대륙이 아니라 섬이라고 주장했다. 예수회 키노 신부가 캘리포니아로 가는육로를 발견할 때까지 근 수세기 동안 그의 주장은 정설이 되었다.

 

'디 안자' 황제의 길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진출
스페인 이주자들은 토착민 지역에 농장, 목장, 그리고 광산을 운영하면서 이제는 황제의 신민이 된 반 노예상태인 토착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했다. 이주자와 토착민 간에는 돌이킬 수없는 깊은 골이 패이고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또한 사제들은 토착민들의 전통 신앙을 부정하고 또 주술사들에 의한 치료도 미신이라고 엄하게 금했다. 토착민들은 이주자들을 증오하고 배척하게 되었다. 이주자들에 의한 전염병이 토착민들에게 만연되면서 가까운 친족을 잃은 토착민들의 원성은 점차 하늘을 찌를 듯 높아갔다. 드디어 1750년경 소노라 일대의 토착민들이 활이나 몽둥이를 들고 이주자들을 공격하여 많은 이주자들이 살해당했다. 뉴 스페인 당국은 투산 근방 투박에 수비대를 세우고 반항하는 토착민을 진압했다.
투박 수비대장 '디 안자' 대위는 1775년 육로로 콜로라도강을 건너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그는 많은 이주자들과 함께 황제의 길을 개척하면서 1776년 3월 샌프란시스코에 황제의 기를 꽂고 수비대를 세우는 한편, 그 건너편에 선교원 터를 마련했다. 이로써 1492년 컬럼버스가 에스파뇨라를  정복한 이래 근 284년만에 유럽인들에게 굳게 닫혔던 지상 최고의 낙원 캘리포니아는 빗장을 풀고 그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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