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booked.net

booked.net

booked.net

newbeom.JPG

 

구즈만은 인근연안을 개발하여 항구와 도시를 건설하고 그의 막료들이 다스렸다. 이렇게 해서 갈라시아는 오늘의 할리시스코에서 소노라 일대를 아우르게 되었다. 마침 북쪽으로 향한 구즈만의 부하 알카라즈(Diego de Alcaraz) 대위는 부하들을 지휘하여 일대를 정복하고 있었다. 알카라즈와 그의 부하들은 수확기를 앞둔 옥수수 밭을 불태우고 촌락을 초토화했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짐승처럼 사냥하여 노예로 삼았다. 많은 토착민들이 근처 바위산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로 달아나 바위틈 사이에 몸을 숨겼다.
'디바카' 노예 사냥꾼을 찾아 하루 30마일을 달리다
그때 4인의 유랑자 주술사들은 코라존 촌락을 떠나 해안가에있는 촌락으로 이동했다. 엄청난 비를 만난 일행은 근 2주를 머문 후 다시 240여 마일을 걸어 시나로아 강변에 이르렀다. 많은 토착민들이 '태양의 아들'인 그들의 뒤를 환호하며 따랐다. 강변을 따라 길을 가던 '디바카' 일행은 강변 풀 숲에 박혀있는 말목과 스페인 군인 특유의 야영장 흔적을 발견했다. 주술사들을 뒤쫓아온 토착민들은 스페인 병사들이 사슬에 묶인 많은 토착민들을 끌고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몸을 떨었다. 스페인 노예 사냥꾼들의 만행에 격분한 '디바카'는 우선 병사들을 만나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스테바니코에게 스페인 병사들의 행방을 알아본 후 접촉하라고 말했다. 에스테바니코는 별로 내키지 않아했다.
다음날 아침 '디바카'는 스페인 병사들을 직접 찾아나섰다. 토착민 11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디바카'와 11명의 토착민들은 하루에 30마일을 달리며 스페인병사들이 머물렀던 야영장 3개를 지났다. 다음날 아침 시나로아 강변을 지나는 스페인 기마병 4인의 모습이 '디바카'의 눈에 들어왔다. 1536년 4월이었다. 스페인 세르빌을 떠난 지 근 9년만에 처음으로 말을 탄 유럽인을 보았다. 당시만해도 북미주에는 말이 살지 않았다. 이후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대륙에 말을 들여오면서 우리를 탈출한 말이 평원에서 번식하면서 북미주 토착민들은 자유롭게 야생마를 탔다.
털가죽을 입고 기마병 앞에 나타난 '디바카'
4인의 기마병들은 털가죽을 뒤집어 쓴 맨발의 '디바카'를 보고 놀랐다. 허리까지 자란 긴 머리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을 날리며 당당하게 다가서며 유창한 스페인 안다루시아 말로 인사하는 백인 '디바카'를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몇마디 인사를 나눈 기마병은 '디바카'와 에스테바니코와 11명의 토착민을 1.3마일 거리의 소노라강변 기마병 야영지로 데리고갔다. 디알카라즈 (Diego de Alcaraz) 대위는 이곳에서 20여명의 기마병과 함께 토착민 노예사냥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근 2주간 인근에서 사냥감인 토착민들을 보지 못해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말에 능한 '디바카'와 흑인인 에스테바니코가 많은 사냥감을 데리고 나타나자 화가 조금 풀렸다. 디 알카라즈 대위는 '디바카'의 지나간 이야기를 잠시 듣고 놀랐다. 그리고 30마일 거리에 조난자 2명이 많은 토착민과 함께 머물고 있다고 말하자 또 한번 놀랐다. 디 알카라즈는 많은 사냥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에스테바니코에게 토착민들과 함께 기마병 3명을 안내하여 도란테스와 까스티요를 안내하도록 했다.
4명의 주술사 주위에 근 1천여명의 토착민들이 모여들어
5일후에 스테바니코는 노예 사냥꾼을 피해 산 속 바위틈에 숨어있던 600여명의 토착민과 함께 도란테스와 까스티요를 안내하여 기마대의 야영장에 나타났다. 많은 사냥감을 보고 디 알카라즈의 기분은 흐뭇했으나 당장 이들의 양식이 문제였다. 그러나 얼마 후 토착민들은 스스로 먹을 양식을 가져왔다. 이들은 스페인 병사들이 농토를 불태우자 옥수수 씨앗을 항아리에 넣어 땅 속에 묻었다. 묻었던 옥수수 씨앗은 이제 유용한 양식이 되었다. 얼마 후 야영장 주변에는 근1,000여명의 토착민들이 모여 들었다.  모두들 '태양의 아들'이 자신들을 잔학한 노예 사냥꾼으로부터 구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그를 뒤따라왔다. '디바카'도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다짐했다.
토착민 노예 사냥을 중단시킨 '디바카'
'디바카'는 디 알카라즈에게 우선 이 지역은 "토양이 비옥하고 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위에 강이 흘러 일년에 3모작이 가능한 곡창지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황폐한 이 지역에 토착민들이 돌아와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은 토착민이나 뉴 스페인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노예 사냥꾼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토착민들이 모두 산 속에 숨어 신선한 호박같은 야채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무모한 노예 사냥꾼들의 만행을 꾸짖었다. '디바카'는 플로리다 탐험대의 황실파견 재무관이라는 직분을 내세워 노예 사냥꾼인 기마병들을 소집했다. 그들에게도 같은 논조로 설득하여 더 이상 이 지역에서 토착민들이 노예 사냥꾼들에게 잡혀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산 속 깊은 바위 틈에 숨어지내던 토착민들은 이후 불에 타버린 촌락으로 돌아왔다.
이제 노예 사냥꾼의 총이나 칼이 두렵지 않은 토착민들 중 일부는 촌락으로 돌아가라는 '디바카'의 말을 따르지 않고 '디바카'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디 알카라즈와 기마병들은 값이 엄청난 노예감을 감싸는 조난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토착민들도 주술사 '디바카'와 노예 사냥군들이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노예 사냥꾼이 두려워 토착민들은 모두 피신
토착민들의 움직임에 놀란 디 알카라즈는 서둘러 조난자 '디바카'와 그 일행을 뉴 스페인 최북단에 위치한 쿠리아칸으로 이송했다. 디 알카라즈가 서두르자 조난자 일행은 토착민들이 사례로 건넨 에메랄드로 화살촉을 장식한 화살 5개와 활, 그리고 비취와 귀한 조개껍질, 산호가 든 주머니를 미쳐 챙기지 못하고 떠났다. 90마일 거리에 있는 쿠리아칸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촘촘한 나무 숲과 거친 황야를 지나는 동안 기마병들은 조난자를 따르는 80여명의 토착민들은 말을 나누지 못하게 막았다. 조난자 일행이 쿠리아칸에 도착하자 쿠리아칸의 사법과 행정을 동시에 함께 다루는 시장과 수비대장 멜초르디아즈가 맞았다. 이들은 조난자 4명이 플로리다 초대총독 나바레즈 탐험 대원의 생존자라는 말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하느님의 은총에 감격할 뿐이었다. 1536년 5월 16일 4인의조난자들은 20명의 기마병 호위를 받으며 악명높은 노예 사냥꾼 누노디구즈만이 총독으로 있는 누에바 갈라시아의 수도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이번에도 80여명의 토착민이 '디바카'일행을 뒤따르며 보호했다.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 주변은 노예 사냥꾼이 두려운 토착민들이 모두 달아나 인적이 끊긴 채 완전히 황폐되어 있었다. 구즈만은 가죽 옷을 짐승처럼 걸친 4인의 조난자를 따뜻하게 맞았다. 그리고 스페인식 복장을 내주었다. 그러나 '디바카'와 일행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침대가 불편하여 마루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멕시코 시티에 도착하고 8년간의 유랑을 끝내다
2주간 콤포스텔라에서 휴식을 취한 조난자 일행은 1536년 7월23일 뉴 스페인의 수도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다. 그날은 마침 성 야고보 축제전야였다. 온 도시는황소싸움과 말을 타고 벌이는 창싸움 준비에 열을 내고 있었다. 총독 멘도자 (don Antonio de Mendoza)와 정복자 코르테스(Marques del Valle Hernan Cortes)가 불운했으나 하느님의 자비로 살아난 조난자들을 따뜻하게 영접했다. 멘도자와 코르테스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뉴 스페인 북쪽지방을 두고 묘한 경쟁관계에 있었다.(* 필자주: 멘도자 총독은 1495년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1535년11월14일 뉴스페인의 초대총독이 되어 1550년 11월 25일까지 근 15년을 재임했고 1552년 7월 21일 페루의 리마에서 사망했다.) 두사람 모두에게 아직 정복하지 못한 광대한 대륙을 근 8년에 걸쳐 유랑한 4인의 조난자는 계산할 수 없는 귀한 존재였다. 멘도자 총독은 이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자신의 저택을 개방하고 극진히 대했다. 그리고 조난자들에 지금까지 유랑한 지역의 풍물과 토착민에 대해 묻고 지나온 지역에 대한 상세한 지도를 부탁했다. 4인의 조난자가 밝힌 경이로운 신세계는 온 도시에 탐험의 열풍을 불러왔다. 이렇게 해서 4명의 조난자 일행의 8년간에 걸친 모험과 유랑은 종지부를 찍었다.  

<다음호에 계속>

 

 

new41.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141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11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2-05
1140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유랑의 끝, 그 이후…-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29
1139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10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29
»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8)-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22
1137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9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22
1136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7)-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15
1135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8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15
1134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6)-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08
1133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7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0-01-08
1132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5)-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31
1131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6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31
1130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4)-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24
1129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5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24
1128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3)-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18
1127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4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18
1126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2)-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12
1125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3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12
1124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재무관 '디바카', 파누코 찾아 낯선 땅 유랑 8년 (1)-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04
1123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남성의 생식기관과 질환 2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2-04
1122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스페인 정착촌 '파누코'를 찾아 돛을 올려라 (6)-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19-11-26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PC방, 학교,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