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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리오브라보를 건너다
이주대는 리오브라보를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싱그러운 물내음과 함께 불어오는 5월 4일 리오브라보 강변은 청명했다. 멀리서 물안개가 하늘 끝에 어른거리고 물새떼는 하늘을 날았다.
전대원이 무사히 강을건넜다. 이주대는 동쪽을 향해 근 보름을 전진했다. 5월 21일 이주대는 리오브라보가 작은 여울과 합류하는 '디띠에라아덴토' 근방에 야영지를 차렸다. 한방중 이주대에서 최고 연장자인 60세의 퇴역군인 페드로 로블도(Pedro Robledo)가 과로로 인한 탈진으로 갑작스레 사망했다. 탐험대 최초의 인명사고였다. 1538년 생으로 황실군인으로 복무하다 중위로 예편한 로블도는 1576년 아들 4형제와 함께 행운을 찾아 신천지 뉴스페인으로 이주했다. 1598년 오나테의 이주대에 합류했을 때는 만 60세. 18세에서 27세가 된 아들 4명도 함께 합류했다. 로블도는 장성한 아들들의 도움을 받으며 험하디 험한 치와와 사막도 무리없이 건넜다. 그러나 리오브라보를 건넌 후 근 4개월에 걸친 대장정은 60세의 로블도에게는 무리였다. 22일 오나테는 로블도의 4형제와 60여 명의 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후 '로블도산'이라고 이름지어진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로블도 야영지 (Paraje de Robledo)에 안장했다. 이후 이곳에는 셀돈요새(Fort Seldon)가 세워지고 2011년에는 오나테 이주대 최초의 희생자 로블도를 기리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오나테 이주대는 영결식을 마친 후 다시 동쪽을 향해 길을 나섰다. 오나테는 조카 잘디바르 형제와 연대기 작가겸 참모 비사그라와 로블도의 4형제 그리고 살라자르와 마르티네즈 신부가 포함된 소규모 이주대를 편성했다. 오나테의 10세된 아들 크리스토발도 함께했다. 그리고 완전무장한 60여명의 병사들이 대포 몇 문을 끌고 함께했다. 오나테는 앞서 출발한 본대를 뒤따랐다. 리오브라보를 건너 이주대가 약 15.5 리이그(*1리이그는 약 3마일거리)까지 전진했을 때 참모 아귈라가 말을 몰고 급히 오나테에게 달려왔다. 아귈라는 오나테의 허락도 없이 토착민 마을에 진입하여 토착민과 분쟁이 일었다고 보고했다. 아귈라는 뒤따르는 오나테와 토착민 추장과의 친교를 주선하려다 생긴 사고라고 했다.
대포 몇 방으로 저항한 토착민 부락 점령
이주대 본진과 함께 길을 나선 아귈라는 마침 토착민 부락을 만났다고 했다. 몇몇 토착민이 아귈라 일행을 부락으로 초대했다. 병사 4명이 부락에 이른 후 말에서 내리자 초대했던 토착민들은 돌변하여 병사들을 공격했다. 어렵사리 토착민을 물리친 병사들은 본대로 후퇴하고 아귈라는 서둘러 오나테에게 달려와 사건경위를 보고했다.
오나테는 토착민 부락에 가까이 이르자 정찰병을 보내 부락을 살폈다. 그러나 부락은 주인잃은 몇 마리 강아지만 어슬렁거릴뿐 조용했다. 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이주대가 몰려들자 겁에 질린 토착민들은 양식을 모두 챙긴 후 달아난 후였다. 오나테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부락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부락을 향해 대포를 몇 발 쏘았다. 허연 초연과 함께 땅과 하늘이 울리고 굉음과 함께 흙 벽돌 건물이 날아갔다. 이어 몇몇 토착민 전사들이 얼이 빠진 듯 활과 몽둥이를 흔들며 부서진 흙 벽돌집에서 튀어나왔다. 잠시후 이주대는 아무도 없는 부락을 점령했다.
오나테 일행은 5월 22일 점령했던 부락을 떠나 오늘의 알부퀘키 (*필자주: 알부퀘키는 한 때 이곳을 정복한 포르투칼 국민이 군신으로 추앙하는 장군이름)에 서 남쪽 리오그란디 근처로 향했다. 오나테 일행은 2 리이그에 걸친 거친 황무지와 사막을 묵묵히 걸었다. 6일 만에 죽음의 황무지를 무사히 지나온 일행은 테이파나(Teipana)와 쿠아라쿠(Qualacu)와 또 다른 토착민이 모여사는 피로(Piro)부족의 땅에 이르렀다.
갈증과 허기진 대원에 도움준 '소코로' 부락
피로부족은 의외로 오나테 일행에게 호의적이었다. 갈증과 허기로 지친 낯선 이방인에게 피로 토착민들은 마실 물과 옥수수죽 그리고 들짐승 고기를 정성껏 대접했다. 그리고 뒤미쳐 도착한 이주대원들에게도 호의를 베풀었다. 오나테는 이들의 호의로 구원을 받았다하여 이 마을을 "구원의 우리들 성모님(Nuestra Senora del Socorro)" 이라는 '소코로'라고 이름지었다. 이후 이 곳에는 뉴멕시코 최초로 사제가 상주했다.
피로부족의 호의로 소코로에서 휴식을 취하고 기력을 되찾은 이주대는 6월 중순 다시 알맞은 정착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일행은 리오브라보 상류를 향해 약 7리이그를 전진한 후 누에바세빌이라고 후에 이름지은 작은 부락에 이르렀다. 토착민들의 저항은 없었다. 사제들은 지금까지 해 오던대로 토착민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제부터 이 곳은 하느님의 대리자 스페인 황제의 땅임을 선포했다. 오나테는 세빌에서 약 1주일간 머물면서 조카 잘디바르 형제에게 10리이그 거리에 있는 리오푸에르코스 가리오브라보로 합류하는 아보(Abo) 부락을 탐험하라고 명령했다. 잘디바르 형제가 아보마을을 찾았을 때 토착민들은 모두 달아나 마을은 폐허상태였다.
6월 22일 오나테 일행은 토착민들이 모두 달아나 폐허가 된 산주앙 보우티스타라고 이름지은 부락에 도착했다. 오나테는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떠도는 토착민으로부터 대부분 스페인과 멕시코 혼혈인 이주대원들과 용모가 비슷한 외지인 두사람이 북쪽에 있는 부락에 산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오나테는 25일 북쪽을 향해 16 리이그 가량 전진하여 산안토니오라고 이름지은 푸루아이(Puruai)부락에 도착했다. 새로 치장한 거실에서 하루밤을 묵은 10명의 사제들은 다음날 아침 벽을 보고 놀랐다. 새로 치장한 벽에는 1581년 목화를 재배하여 옷을 입고 산다는 토착민을 찾아 전교하려 머물다 순교한 로드리게즈와 로페즈 신부 (*필자주: 아리조나타임즈 2020년 7월 30일자 볼륨 제842호 칼럼 참조)의 초상화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주대원과 용모가 비슷하다는 외지인 토마스와 크리스토발이 사는 부락을 찾은 안내인과 병사들은 두 사람을 오나테에게 데려왔다. 토마스와 크리스토발은 본래 뉴스페인 갈리시아 태생이었다. 두 사람은 노예사냥꾼이며 자칭 누에바 레온의 부총독이라고 자처하는 소사(Gaspar Castano de Sosa)를 따라 노예사냥꾼이 되었다. 소사의 동업자가 뉴스페인군에게 체포되자 두 사람은 도망치는 소사와 노예사냥꾼과 그 가족 170여명을 따라 리오브라보 근방에 이르렀다. 그리고 황제의 허가없이 소사가 작업하는 식민지 정착촌에서 생활했다. 1591년 뉴스페인 총독은 후앙모어레트 장군에게 40명의 병사를 지휘하여 소사를 체포하고 불법 조성한 식민지를 폐쇄하라고 명했다. 소사가 체포되고 식민지 정착지에서 살던 170여명의 소사 추종자들이 뉴스페인으로 송환될 때 리오브라보 주변 케러산(Keresan) 부족의 언어에 능한 토마스와 크리스토발은 다행히 송환을 피해 토착민 사이에 스며들었다. (*필자주: 아리조나 타임즈 2020년 8월27일자 볼륨 제846호 칼럼)
근 10여년 현지인 틈에서 목숨을 부지한 두 사람은 오나테의 현지인 통역이 되어 오나테가 식민지 건설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주대 출발 5개월 후 산토도밍고 근방에 정착
6월말 산타바아바라를 출발한 지 근 5개월만에 오나테는 오늘의 산타페에서 25리이그 거리에 있는 리오브라보 계곡 근방 케레산 토착민부락인 산토도밍고(*필자주:` 산토도밍고는 소사가 지은 이름이다.)에 도착했다. 오나테는 산토도밍고라는 이름대신 이태리에서 생산한 최고 금비단인 구이푸이 이름을 따서 구이푸이(Guipui)라고 불렀다. 토마스와 크리스토발의 도움으로 오나테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식민지 작업에 나섰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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