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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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징발하다 토착민과 불화맞는 병사
뉴스페인으로부터 보충병력과 정착민 그리고 물품이 도착하자 오나테는 본격적으로 오늘의 아리조나 일대와 캘리포니아만이 잇닿은 해안을 탐험하기로 했다. 1600년 6월경 오나테는 조카 빈센트에게 병사 30명과 많은 보조원을 지휘하여 오늘의 아리조나 일대를 탐광하도록 했다.
그리고 광석을 분쇄하여 제련할 수 있는 분쇄기와 제련설비를 갖고 가도록 했다. 빈센트는 마침 뉴멕시코 중앙 주마노스(Zumanos) 부족들의 광대한 영토를 지나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오나테의 병사들은 각종 식량을 징발하고 있었다. 주마노스 부족은 텍사스를 비롯하여 뉴멕시코와 멕시코 북부, 그리고 아리조나까지 지배하는 호전적인 부족이었다. 유럽의 스페인 정복자들과는 1581년 노예 사냥꾼들과의 접촉이 시초로 알려졌다. 주마노스 부족은 특히 멕시코 북부 훈타디로스리오스라는 강 주변에 많이 모여살았다.
빈센트는 평소 토착민들로 부터 양식을 징발하듯 주마노스 정착민들에게 양식을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스페인 병사들의 수탈에 지친 주마노스 전사들은 양식대신 돌을 집어던지며 공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서부 탐험이 목적인 빈센트는 주마노스의 적대행위를 오나테에게 보고조차 하지 못하고 서부로 내달렸다. 얼마 후 오나테는 빈센트의 전령으로부터 주마노스 부족의 불충을 전달받고 불같이 노했다. 빈센트에게 돌로 공격한 주마노스 정착촌 주변에는 3개의 부락이 있었다. 그 중 빈센트 일행에게 돌로 공격한 그란퀴비라가 가장 부유하고 정착민도 많았다.
오나테는 말을 타고 화승총과 창과 칼로 무장한 50여 명의 병사들과 많은 토착민 보조병을 이끌고 주마노스 정착촌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겁에 질린 그란퀴비라 토착민들에게 병사들이 입을 망토를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원로는 온 부족을 뒤져도 남아있는 망토는 고작 12벌 뿐이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선처를 애원했다. 이날 밤 오나테는 병사들을 마을 밖 우물가에 야영을 시키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자 오나테는 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마을로 진격했다. 그리고 빈센트에게 양식 대신 돌맹이로 공격한 범인을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토착민 포로 1명씩 병사에게 노예로 배정
그러나 원로는 돌을 던진 그 많은 전사들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오나테는 원로들이 자신의 명을 거역한다고 여기고 뒷편에 있는 초막에 불을 질렀다. 잘 마른 초막은 금새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이며 검은 연기가 정착촌 안에 가득했다.
노한 주마노스 전사들이 병사들에게 활과 돌멩이로 공격했다. 오나테의 병사들은 침착하게 화승총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말을 몰고 창과 칼을 번뜩이며 저항하는 전사들과 울부짖으며 달아나는 부녀자와 아이들을 베었다. 순간 평화롭던 주마노스 부족의 그란퀴비라 부락은 살육의 현장으로 변했다. 불길은 온 정착촌으로 뻗어갔다. 오나테의 병사들은 주마노스 부족을 철저히 응징한 후 빈센트가 탐험하는 곳으로 향했디.
얼마 후 크리스마스가 가까올 무렵 5명의 산주앙 이주민이 산타바아바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이들은 주마노스 정착촌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오나테의 살육에 한을 품고있던 혈기왕성한 전사 몇 명이 근처를 태연하게 지나는 스페인 이주자들을 보았다. 주마노스 전사들은 주저없이 이주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주자들은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주마노스의 공격을 당했다. 이 중 두 사람이 몽둥이로 머리를 공격당하고 현지에서 사망했다. 천행으로 목숨을 구한 3명은 부상당한 몸으로 산주앙에 도착했다. 이 소식에 온 도시는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났다. 모두들 주마노스의 저항이 인근 타 부족에 전파될 것을 두려워하고 이 참에 주마노스 부족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제들은 완강하게 보복을 주장했다.
서부에서 돌아온 오나테와 빈센트는 곧 민간합동 전쟁위원회를 소집했다. 전쟁위원원회는 즉시 주마노스 응징을 결의했다. 1601년 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오나테의 막강한 병사들은 돌과 화살, 그리고 몽둥이가 전부인 주마노스 전사들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주마노스의 전사들도 화살과 돌을 던지며 용감하게 저항했다. 얼마 후 빈센트의 병사와 보조병들은 마을로 진입하여 눈에 보이는대로 불을 지르고 총을 쏘며 창과 칼을 휘둘렀다. 하늘을 찌를 듯 온 마을에 가득하던 비명과 함성도 더 이상 없었다. 대신 마을은 온통 검은 연기와 불길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너른 공터에는 비명을 지르는 부상자와 그리고 죽어넘어진 전사와 아녀자들만이 처참한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었다. 빈센트는 미처 달아나지 못한 포로들을 엮은 후 병사 1인당 1명씩 몸종으로 나누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2부락도 불을 질러 초토화 시켰다. 주마노스 전투에서 완승을 거둔 빈센트는 6일간 마을을 점령한 후 인근 토착민들에게 스페인 제국의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이번 전투로 누구도 뉴멕시코 식민지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스페인군과 주마노스 토착민 전투를 목격한 쥬앙디에스칼로나 사제는 총독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번 전투로 주마노스 부족은 근 8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주장했으나 오늘날 이 문서는 멕시코나 스페인 고문서 보관소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노다지 찾아 해뜨는 평원으로 향하는 오나테 탐험대
아침 햇살에 번쩍이는 금빛 황금 독수리가 새겨진 황실의 깃발을 든 기수가 탄 말이 앞서갔다. 그 뒤로 회색 비단에 칼을 든 야고보 사도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기수가 요란한 발굽소리를 내며 뒤 따랐다. 오나테가 아들 크리스토발과 함께 탄 이륜마차가 뒤따르고 화려한 갑옷으로 몸을 싸고 창과 칼, 화승총으로 무장한 기마병 80여 명이 근 200여명의 토착민 보조병과 함께 나아갔다. 뒤에는 대포 2문씩 나누어 실은 황소가 끄는 수레가 따랐다. 그리고 갖가지 양식과 부식, 그리고 보급품 을 실은 마차와 황소가 끄는 수레, 양식을 이고진 짐꾼과 700여 마리의 마소도 함께 길을 나섰다. 모두가 황금도시가 있다는 퀴비라로 간다는 흥분과 기대로 대원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 프란시스코 교단 소속의 디벨라스코 신부와 디베르가라 수사도 동행했다.
1601년 6월 23일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 전야 초저녁, 해가 떠오르는 동쪽 대평원 너머에 있다는 전설 속의 황금도시를 찾아 오나테의 탐험대는 초저녁 장도에 올랐다. 리오브라보 물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탐험대는 6월의 시원한 강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비릿한 물내음을 즐기며 서서히 흘러갔다.
1600년 중순이 지나 뉴스페인의 총독이 보낸 80여명의 병사와 젊은 이주자가 뉴멕시코에 도착했다. 그간 노다지를 찾아 뉴멕시코 서북부 지역과 오늘의 아리조나 일대를 탐험했던 오나테는 그간 미루어왔던 동쪽 대평원에 대한 탐험을시작했다.
이 지역 지리에 밝은 쥬세페 구티레즈(Jusepe Gutierrez  c 1572~불명)가 탐험대의 앞장에 섰다. 멕시코 쿠리아칸 출신 쥬세페는 1593년 노예 사냥꾼겸 불법으로 황금도시를 찾아나선 디레이바 (Francisco Leyva de Bonilla)와 휴마나(Antonio Gutierrez de Humana)의 용병으로서 부대평원을 찾았다. 휴마나는 대평원 탐험 도중 상관인 레이바를 사소한 다툼 끝에 살해하고 목적지인 오늘의 아르칸사스인 큰 강에 이르렀다.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기가 두려운 쥬세페는 동료 멕시칸 4명과 함께 탐험대를 무단이탈한 후 대서부를 유랑하며 멕시코로 향했다. 유랑도중 3명의 동료는 토착민들에게 살해되고 함께 유랑하던 동료도 대평원에서 헤어졌다. 간신히 리오브라보근방 일더폰소(Ildefonso) 정착지에 몸을 의탁한 쥬세페는 어느날 오나테 일행이 근방에 도착한 사실을 알았다. 1599년 2월 16일 오나테를 찾은 쥬세페는 그간의 역정을 설명하고 이번 탐험에 길 안내가 되었다. 현지 언어도 약간 이해하는 쥬세페는 빈센트의 들소사냥에도 길안내를 했다.
쥬세페는 해뜨는 지평선을 향해 리오브라보 강줄기를 따라 길을 나섰다. 규모가 큰 탐험대는 제1진과 2진으로 나누어 출발했다. 제2진은 조카 빈센트가 지휘했다. 오나테의 제1진은 리오브라보 계곡을 따라 4일만에 갈리스테오패스를 지나고 이어 산쥬앙가브리엘을 떠난 지 5내지 6일만에 후속부대와 정착민 촌락에서 합류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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