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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 찾기 실패로 실망한 황실과 오나테
1604년 어느정도 산가브리엘을 중심으로 리오브라보 계곡 주변이 안정을 되찾자 오나테는 아코마부족과 화해에 나섰다. 탐험을 계속하려 자리를 비운 사이 아코마부족의 습격을 피하려면 이들과의 화해는 당연했다. 아코마 평정시 오나테는 포로들을 산가브리엘 주변 농장에 분산시킨 후 강제노역을 시켰다. 그러나 포로들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농장을 탈출했다. 하나, 둘씩 탈출한 포로들은 둥지를 찾는 새들처럼 멀고 먼 아코마로 몰려들었다.
이들이 포로가 된 지 근 5년 후 아코마 포로들은 농장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코마는 평정되기 이전처럼 부족들은 자식을 낳고 콩과 옥수수를 키워가며 살고 있었다.
아코마부족의 뼈저린 원한을 아는 오나테는 이들 부족과 화해를 도모하기로 했다. 1604년 리오브라보 주변도 봄이 왔다. 오나테는 에스코바와 벨라스코 그리고 에스콜로나 등 3명의 신부를 아코마부족에게 보내 화해를 청했다. 마르퀘즈 대위가 지휘하는 12명의 병사들이 아코마를 찾는 에스코바 신부 일행을 호위했다. 에스코바 신부의 정중한 사죄를 아코마부족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아코마부족과 화해를 맺은 에스코바 등 3명의 신부와 마르퀘즈와 12명의 병사들은 오나테가 명한대로 탐험에 나섰다. 이들은 아코마마을을 떠나 주니마을과 호피마을을 지났다. 이어 크루자도 토착민들이 모여사는 오늘의 아리조나 중앙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6년전 파르팡 대위 일행이 찾았던 광석이 나는 마을을 찾았다. 광석이 나오는 산비탈과 토착민 마을은 세월만 다를 뿐 모든 것이 파르팡이 찾았을 때처럼 그대로 였다.
에스코바 신부와 마르퀘즈는 현지 토착민들의 안내를 받아 파르팡 일행이 가져왔던 광석을 다시 채취했다. 그리고 이곳 토착민들로부터 진주조개가 나오는 바닷가에 대한 정보를 다시 확인한 후 나귀에 광석을 싣고 오나테에게 돌아왔다.
오나테는 에스코바 신부 일행이 가져온 광석을 서둘러 총독에게 보내 광석을 분석하도록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은대신 약간의 구리만 나왔다. 이같은 보고에 황실의 실망은 컸다. 또한 이같은 회신에 오나테의 실망도 컸다.
진주찾아 태평양으로 향하는 오나테
기대했던 노다지 찾기에 실패한 오나테는 이제는 바다에 눈을 돌렸다. 광석을 찾아 탐험에 나섰던 파르팡 일행이 태평양 연안 해변에서 나온 진주를 목에 건 토착민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확인하여 황실에 잃은 신망을 회복하려 했다.
1604년 10월 7일. 오나테는 에스코바 신부와 산부 에나벤츄라 수사를 대동하고 진주조개가 나는 바다와 콜로라도강 하구 탐험에 나섰다. 이번에도 마르퀘즈 대위가 30명의 병사를 지휘하여 일행을 호위했다.
때는 늦가을 만추였다. 벌써 대륙의 가을은 온 산하에 단풍이 가득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부지런한 철새들은 제 고향을 찾아 날개짓하기에 바빴다. 누렇게 퇴색한 잡풀이 우거진 황야를 오나테와 일행는 부지런히 길을 줄였다.
아코마에 이르렀을 무렵 이제는 화친을 맺은 부족들이 나와 오나테 일행을 극진히 대접했다. 아코마에 이어 주니, 호피마을을 지났다. 이어 일행이 콜로라도 고원에 이르자 눈발이 사정없이 일행을 때렸다. 일행은 버어디 계곡을 벗어나 크루자도 토착민들의 영토를 지났다. 인근 토착민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일행은 이어 빌윌리암스강이 콜로라도강으로 빠져드는 곳에 이르렀다. 몸집이 우람한 유마 토착민들의 정착지도 지났다. 어느 유마부족은 황금팔찌를 차고 요란스레 황금장식을 걸치기도 했다.
유마부족 영토를 지나 오나테 일행은 살을 에는 강풍을 뚫고 계속 남진했다. 산가브리엘을 떠난 지 근 2달 반이 지난 1605년 1월말, 오나테 일행은 드디어 목적지인 캘리포니아만에 이르렀다. 내륙으로 둘러싸인 바다처럼 너른 만을 바라보며 오나테는 감격에 겨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후 차갑고 짭짜름한 바닷물을 손에 받아 한 웅큼 태평양 바닷물을 음미했다. 그리고 1월의 찬 바닷물이 허리에 잠길 때까지 물살을 헤치며 바다로 나갔다
칼로 가른 너른 바다를 황제께 바치다
하늘을 우러러 올려다 본 오나테는 허리에 찬 칼을 빼어들고 힘차게 밀려오는 바닷물을 베었다. 칼에 베인 물살이 튀면서 영롱한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번쩍이며 허공을 날았다. 오나테는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칼을 하늘에 치겨들고 "드디어 미천한 신하 오나테는 황제 폐하와 하느님께 이 바다를 바칩니다"라고 포효했다. 에스코바 신부와 부에나벤추라 수사도 십자가를 하늘 높이 쳐들고 "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이었다. 일행은 선박 1천여 척이 정박할 수 있는 바람도 조용한 최적의 장소를 오나테가 찾게 인도해 준 하느님을 칭송했다.
이어 일행은 거대한 콜로라도 강물이 캘리포나아 만으로 빠져드는 강 하구를 찾았다. 황토빛 강물이 용트림을 하며 바다로 빠져들고 너른 주변은 온통 모래펄을 이루고 있었다. 주위를 일행과 함께 살펴본 오나테는 "세상에 이처럼 거대한 항구를 건설하기 알맞은 곳은 없다"라고 확신했다.
일행에게는 수심 측정기가 없었다. 병사들 중 루이즈(Juan Ruiz)가 헤엄쳐 바다 가운데로 나갔다. 그리고 바닷물 속으로 잠행했다. 얼마 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루이즈는 손을 들어 생각보다 수심이 깊다고 소리쳤다. 오나테와 일행은 해변가에 천막을 세우고 며칠 머물면서 주위를 세세히 살폈다. 그리고 멕시코와 콜로라도강 하구를 연결하는 뱃길을 만들면 뉴멕시코 일대의 번영은 보지않아도 확실하다고 장담했다. 주변을 돌아본 오나테는 콜로라도 강물이 흘러온 캘리포나는 거대한 섬이라고 생각했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이후 키노신부가 캘리포니아는 섬이 아니고 대륙이라고 확인할 때까지 정설이 되었다.
엘모로 암벽에 여정을 새겨놓다
오나테와 일행은 진주조개가 자라는 해변은 다음에 탐험하기로 했다. 벌써 산가브리엘을 떠난 지도 4개여월. 준비해온 양식도 거의 바닥이 나고 장기간 여행으로 말이며 노새같은 가축은 너무나 지치고 여위였다. 대원들도 대화가 힘들 만큼 지쳐있었다. 일행은 서둘러 산가브리엘로 말을 돌렸다. 바다의 노다지 진주조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러나 에스코바 신부는 부지런히 토착민들과 접촉하면서 이들의 언어를 습득했다. 떠날 때쯤 그는 유마부족들과 소통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오나테 일행은 살아 돌아가려고 함께 고생한 말을 잡아먹어가며 산가브리엘을 향해 지친발걸음을 옮겼다.
1605년 4월 16일 오나테 일행은 뉴멕시코 서남쪽에 우뚝 솟은 엘모로(El Morro) 바위 산자락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이때 병사 한 명이 바위를 타고 산에올랐다. 그리고 태초이래 비바람을 함께하여 마모된 바위 한 편에 "돈주앙 디 오나테 1605년 4월 16일 남쪽바다를 발견한 후 이 곳을 지나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9일 후인 4월25일 오나테 일행은 여윈 몸을 리오브라보 강물이 유유히흐르는 산가브리엘에 뉘었다. 바다를 찾아나선 지 6개월반 만이었다. 비록 노다지와 진주조개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오나테는 항구건설에 적합한 입지와 호의적인 토착민을 발견한 것에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오나테는 캘리포니아 만 상부는 폭이 더욱 더 좁고 태평양 바닷가까지는 근 100마일 밖에 있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또한 1602년 5월 스페인 탐험가 비즈카이노(Sebastian Vizcaino)가 필립핀 일대를 탐험하고 산디에고 근방에 발을 디뎠다는 것도 미쳐알지 못했다. 또한 그보다 먼저 바하군도 일대에서 진주조개잡이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어느정도 몸을 추스린 오나테는 그간 탐험한 정보를 정리한 후 1년반 전에 새로 부임한 몬테스크라로스 후작(Marquis Montesclaros: 1603년 10월27일 부임하여 1607년 6월2일까지 뉴스페인총독에 재임)에게 제출하기 위해 에스코바 신부와 함께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전임 몬트레이 총독은 통솔력 부족으로 페루총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노년의 오나테에게 계속되는 장거리 여행은 무리였다. 산타바아바라까지 갔던 오나테는 더 이상 장거리 여행을 포기하고 산가브리엘로 돌아왔다. 대신 에스코바 신부가 멕시코로 향했다. 그러나 멕시코시티에는 신임총독을 둘러싸고 오나테의 낙마를 부추기는 무리들의 발호는 불꽃을 피고 있었다. 기대했던 노다지는 찾을 수 없고 이미 황실과 총독의 지원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자 당당하던 오나테도 이젠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그는 그만큼 지쳐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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