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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총독 페랄타, 산타페를 건설 (계속)
벨라스코의 지시에 따라 오나테는 후임 총독대행으로 40대 중반의 역전 노장 마르티네즈 디 몬토야(Martinez de Montoya)를 추천하여 벨라스코의 동의를 받았다. 1600년 스페인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몬토야는 중후한 인품의 소유자로 오나테의 신임이 두터운 역전의 노장이었다.
그에게는 제메즈 토착민 부락이 있는 영지가 주어지고 히달고라는 귀족칭호가 내려지게 되었으나 몬토야는 결사코 자신은 적임이 아니라고 총독 의자에 앉기를 거부했다.
산가브리엘의 주민들은 옛 로마의 관습처럼 오나테에게 신임총독이 부임할 때까지 총독직을 수행하라고 청했으나 오나테는 이를 거절했다. 오나테는 궁여지책으로 산가브리엘 모든 정착민이 참여하는 주민회의에서 임시총독을 선임하기로 했다. 오나테의 구상대로 18세의 그의 아들 크리스토발이 임시총독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크리스토발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1598년 9살 때 오나테와 함께 2륜마차를 타고 리오브라보로 달려온 크리스토발은 아버지를 따라 황무지와 대평원을 누비느라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대신 총과 창, 칼을 다루는 무예는 출중했으나 아쉽게도 겨우 읽고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후 벨리스코가 황제에게 뉴멕시코 총독을 추천할 때 크리스토발은 어린 나이와 짧은 교육때문에 추천에서 제외되었다. 페랄타는 1609년 스페인에서 뉴스페인으로 와 하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뉴멕시코에 도착했다가 벨라스코와 인연을 맺고 뉴멕시코 총독직에 선임되었다. 페랄타는 1609년 10월 친지들을 모아 탐험대를 조직한 후 뉴멕시코 일대를 둘러보며 리오브라보로 향했다. 1610년 4월 10일 리오브라보 근방에 이르자 뉴멕시코 부총독 제로니모 마르티네즈는 15기의 기마병을 인솔하고 신임총독을 영접했다.
후임 총독 페랄타는 부임 후 오나테가 자리잡은 곳에 수도를 이전하고 오늘날 산타페(Santa Fe)라고 불리우는 신도시를 건설했다. 페랄타는 이곳을 산타페(Santa Fe) 즉 '거룩한 신앙'이라고 이름지었다. 산타페라는 이름은 이사벨라 여왕이 그라나다에 있는 무어족들의 주요 요새를 정복한 후 '빌라 리얼 디 라 산타페 디 산프란시스코 디아시스(Villa Real de la Santa Fe de San Francisco de Asis)라는 도시를 건설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페랄타 총독은 산타페 신도시를 거의 완공했을 무렵 사제들과 불화를 빚었다. 1612년 이시드리오 디 오르도네즈는 페랄타 총독이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이교도라는 이유로 파문하고 쇠사슬로 결박한 후 구금했다. 근 1년여 간 구금되었던 페랄타는 뉴스페인 총독 직을 수행하던 가르시아 구엘라 주교에게 청원, 구금에서 풀린 후 멕시코시티로 돌아왔다.
장기간 부재로 폐광 직전에 이른 광산
페랄타 일행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오나테는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낸 리오브라보를 떠났다. 오나테와 그 일행은 오나테의 고향 자카스테스를 방문하여짧은 시간을 보낸 후 1610년 4월 30일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후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나 옛 친구 벨라스코의 배려에서인지 오나테에 대한 청문회는 열리지않았다. 오나테는 고향 자카테스카스를 방문하여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낸 부인 도나 이사벨라와 딸 마리아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자카테스카스에 있는 그의 광산은 관리자의 태만으로 거의 폐광상태였다. 광산에서 일하는 토착민들은 관리자의 눈을 피해 광석을 빼돌려 인근 업자에게 넘겨 사리를 취했다.
오나테는 1613년 소환때까지 자카테스카스 외곽 라스미나스 디파누코에 있는 장원에 머물면서 광산을 돌보았다. 얼마 후 오나테는 황실에 129,454  페소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었다.
오나테의 든든한 방패역할을 한 벨라스코 총독은 1611년 6월 19일 근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가르시아 구에리아 대주교에 이어 법원 청문회 총재인 페드로 오타로라가 잠시 역임하고 황실의 인척이며 매사에 강직한 디에고 페르난데즈 디코르도바 후작이 1612년 3월 14일 부임했다. 디코르도바 후작 총독은 부임 직후부터 아직도 미결상태인 오나테의 혐의를 물고 늘어졌다. 황제 필립 3세도 코르도바 후작에게 오나테에 대한 심리를 재촉했다.
곧 청문회가 꾸려지고 오나테에 대한 29개의 말도 되지않는 혐의가 심리에 들어갔다.
29개 혐의 중 12개 유죄로 평결
코르도바 후작 총독이 직접 청문회를 이끌었다. 오나테에 씌워진 가장 무거운 혐의는 사제단이 제기한 아코마 부족 정벌시 오나테의 병사들이 벌인 학살과 오른쪽 발목 절단같은 체형, 그리고 말을 훔쳐 무단 탈주한 병사 4명 중 2명을 추적한 후 참수한 사건이었다. 2명의 탈주자는 오나테의 명에 따라 빌라그라와 마르퀘즈가 근 10여일을 추격하여 현장에서 참수한 사건은 유죄가 되었다. 그리고 1601년 오나테가 퀴비라 탐험 중 대부분 정착민과 병사들이 집단 탈주할 때 이를 방관한 부총독 알론조 디소사와 파블로디아 귈라 대위를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군법회의에서 업무태만으로 처형한사 건도 유죄가 되었다. 그 외에 오나테가 현지 여인과 부도덕한 관계를 지속했고 조카 빈센트를 시켜 부하들에 "폐하"라고 부르게 했다는 악의적인 모함이 대부분이었다. 이 같은 모함은 오나테를 따라 탐험에 올랐다가 일확천금과 신분상승에 실패한 불평분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법원에서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오나테는 멕시코시티의 사저에 반 구금상태로 심리를 받았다.
1614년 5월 13일 코르도바 후작은 청문회를 마감하고 29개의 혐의 중 17개는 무혐의, 나머지 12개는 유죄로 인정하여 오나테는 4년간 뉴스페인에서 추방되고 뉴멕시코에는 영원히 추방한다고 선고했다. 또한 별도로 6천 카스티아듀카트의 벌금과 재판비용을 부담하라고 선고했다. 또한 그간 누렸던 총독과 군사령관 등 직위도 몰수한다고 했다.
이 같은 선고에 대해 오나테는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오나테는 그간 산가브리엘에서 생사를 함께 한 정착민과 그의 측근들로부터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증거를 수집했다. 그리고 아코마 사태는 아코마 부족들의 황실병사 살해 등 반역으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코마 포로들에게 내린 형벌도 타부족에 대한 경고로 당시 탐험초기에는 어쩔 수 없는 조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탈주자 참수도 일벌백계의 조치이고 소사와 이귈라의 처형은 정당한 군법회의를 거친 합법적인 일이라고 항변했다.
황제에게 자비를 청하는 재심요청
오나테는 벌금은 일단 납부하고 그의 명예에 낙인처럼 찍힌 오점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오나테는 그의 결백을 입증하는 각종 증거자료를 취합한 후 1617년 황제에게 재심을 요청했다. 그러나 무적함대가 마침 불어닥친 폭풍우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끈 함대에 의해 거의 전멸한 후 이미 쇠락의 길로 들어선 스페인 제국 필립 3세는 오나테의 결백문제 등을 깊이 다룰 입장이 아니었다.
오나테의 불운은 계속되었다. 뉴멕시코에서 돌아와 고향에 머무는 동안 아들 크리스토발은 돈나마리아 구티레즈와 결혼하여 오나테의 이름을 가진 주앙 오나테라는 손자를 보았다. 그러나 크리스토발은 1612년 요절했다. 그의 사인은 전해지지 않는다.
외아들 크리스토발 사망으로 실의에 빠진 오나테는 결백주장에 전념하면서 슬픔을 떨쳐냈으나 법원은 기대와 달리 가혹한 평결을 내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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