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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자비를 청하는 재심요청 (계속)
아들을 잃은 지 2년 후 오나테에게 내린 재판에 크게 실망한 오나테의 부인 돈나 이사벨라는 크게 낙담했다. 남미 정복자이자 멕시코 초대총독 코르테스의 손녀이며 멕시코 마지막 황제 몬테주마의 고손녀인 돈나 이사벨라디 톨로사는 1588년 그녀 나이 20세때 오나테와 결혼한 후 아들 돈크리스토발과 딸 돈나 마리아를 두었다. 그녀 나이 30세때 오나테는 1598년 리오브라보 주변에 뉴멕시코 식민지 건설차 탐험에 나선 후 1610년 12년 만에 돌아왔다. 그러나 2년 후 아들이 요절하고 이어 오나테 마저 또 2년 후 추방령을 받는 등 불운이 겹치자 심한 충격을 받은 이사벨라는 건강을 해쳤다. 딸 돈나 마리아는 그녀의 나이 22세 때 오나테의 충복이며 조카인 빈센트와 1616년 8월 17일 결혼했다. 빈센트는 이후 오나테 부재시 광산을 운영하 며많은 부를 일구었다. 그러나 돈나 이사벨라의 건강은 좀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 나이 52세인 1620년 이사벨라는 오나테와 마리아, 빈센트 등 가족에게 둘러싸여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온 일생을 마감했다.
사랑하는 이사벨라를 여윈 오나테는 실의를 잊으려는 듯 그의 결백을 직접 입증하기 위해 1620년 12월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의 결백을 밝혀줄 필립 3세는 오나테가 도착한 지 3개월 후인 1621년 3월 31일 서거하고 16세의 필립 4세가 즉위했다. 오나테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갖가지 자료를 서인도제도 위원회에 제출하자 이를 심리한 위원회는 1622년 4월 6일 오나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신임 황제에게 뉴스페인에서 내린 오나테의 평결을 취소하는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원했다. 그리고 오나테가 그간 황실에 끼친 공로를 인정하여 보상도 내려줄 것을 청원했다. 그러나 어린 황제는 "시간을 두고 살펴보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실망한 오나테와 서인도제도 위원회의는 11월 평결문까지 첨부하여 황제에게 건의했으나 필립 4세는 "이미 내가 다룬 추악한 사건을 가지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고 "나는 오나테가 무죄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나테는 이에 굴하지 않고 탐험 전과정을 알아보기 쉽게 세세히 기록한 후1623년 다시 청원했다. 드디어 황제는 1623년 8월 11일 오나테에게 내린 6천듀카트의 벌금과 추방령을 포함하여 그간 누려온 직위박탈 등 모든 평결을 취소했다. 드디어 근 10년만에 오나테는 결백을 찾았다. 그러나 오나테의 자손들이 누릴 신분상 세습은 일부 위원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오나테의 최후 그리고 가족과 측근들
1624년 황제 필립 4세는 오나테를 스페인 제국의 광산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단 무보수였다. 당시 스페인 본토와 전 세계에 널려있는 제국의 식민지 광산은 노후하여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황실은 오나테에게 현지를 실사한 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오나테는 그의 고향 자카테스카스에서 함께 일한 노련한 기술자 6명을 불러달라고 했다. 이들이 도착하자 오나테는 1625년부터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 그의 조상이 자리 잡았던 바스크 등을 실사했다. 그리고 그가 실사한 보고서를 황제에게 제출하고 황제를 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나테가 광산 총책을 수행할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75세였다. 야생마처럼 뛰고 달려온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의 말년을 예견했는지 오나테는 사위 빈센트를 불러 자카테스카스의 광산 등 집안문제를 잘 처리하도록 당부했다.
어느날 오나테 일행은 카르타제나 광산에 도착하여 실사작업을 했다. 그리고 1625년 하순 250마일 거리의 세빌내에 있는 과달카날(Guadalcanal)에 있는 광산에 도착하여 광산 숙소에 머물렀다. 그후 오나테의 건강은 급속히 나빠졌다. 1625년 10월 4일 오나테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몇주간 몸져누워 요양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린 오나테는 홍수로 물에잠긴 광산을 살피러 나섰다. 1626년 6월 3일 물에 잠긴 광산을 살피러 지하로 들어서자 갑자기 버팀목이 부러지면서 광산이 붕괴했다. 일생을 너른 평원과 야산, 굽이치는 강물을 헤치며 달려온 오나테답게 그는 거친 야산 광산현장에서 광산 노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란만장한 삶을 장엄하게 마감했다. 오나테의 유언대로 그는 마드리드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자신의 영지 5분의 1을 기증하고 그리고 공사중인 성당에 1만 듀카트의 금화를 기증했다. 그의 유해는 마드리드로 운구되어 새로 신축한 성당에 마련한 가족묘지에 그의 문장이 새겨진 갑옷과 함께 매장되었다. 오늘날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양분되었다. 그러나 아코마 등 토착민에게는 잔혹했다는 부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그의 불굴의 탐험정신과 헌신은 스페인 제국의 초석이 되었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다.
산타페 국제공항에는 오나테를 기념하는 3.7미터의 장대한 동상이 2007년 세워졌다. 동상 옆에는 아코마부족의 잘려나간 발목 동상도 있다.
한편 오나테의 충성스런 부하 가스퍼빌라그라는 1600년 병사를 모집하러 뉴멕시코를 방문했다. 귀대하기 전날 빌라그라는 뉴멕시코 땅에 발도 디디지 않고 부총독 행세를 하는 궤레디레사에 의해 발이 묶였다. 빌라그라는 성당의 성소에 몸을 피해 체포를 면했으나 이어 1601년부터 3년간 작은 광산도시에서 시장을 역임했다. 그후 빌라그라는 존경하는 오나테가 궁지에 몰리자 그를 변호하기위해 1605년 마드리드로 건너갔다. 그리고 마드리드 동편 대학가에 머물면서 오나테의 뉴멕시코 탐험과정을 '뉴멕시코의역사'(Historia de la Nueva Mexico)라는 총 34편에 달하는 대서사시를 집필한 후 1612년 출간했다. 빌라그라의 대서사시는 최초의 서구 식민지 문학으로 1900년 재판되고 1933년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발라그라는 1614년 탈영범 2명을 참수한 죄목으로 6년간 뉴멕시코 추방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1620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빌라그라는 황제에 의해 과테말라의 작은 도시 시장에 임명되어 부임차 항해중 1620년 선상에서 사망한 후 수장되었다.
오나테의 6촌 조카 빈센트 잘디바르는  1620년 오나테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여 오나테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오나테와 집안의 광산을 운영하며 가문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나테가 운영할 때 15만페소까지 이르던 수익은 날로 기울었다. 빈센트는 1650년 사망하고 오나테의 아델란타도라는 직위는 빈센트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니콜라스 디잘디바르 오나테가 이어 받았다.
1610년부터 1612년까지 뉴멕시코 총독을 역임하고 산타페를 건설한 페랄타는 1666년 스페인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그가 뉴멕시코를 떠난 지 근 280년 후 페랄타의 후손을 자칭하는 사기꾼이 나타나 아리조나와 뉴멕시코 일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자칭 제임스 페랄타 리비스라고 부르는 이 사기꾼은 토착민 여인과 결혼한 후 이 여인을 페랄타 후손으로 조작했다. 리비스는 페랄타 총독이 뉴멕시코와 아리조나 일대 18만 스퀘어 마일즈의 땅을 황제로부터 하사받았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배우자가 상속인이라고 주장했다. 리비스의 땅을 소유한 기업이나 일부주민은 리비스에게 임대료를 지불했다. 심지어 텍사스 철도회사라는 거대기업까지 토지사용료를 지불했다. 페랄타 후손이라는 리비스 부부는 영국 빅토리와 여왕까지 알현했다. 그러나 그의 사기행각은 들통났다.  페랄타가 하사받았다는 땅에 대해 한 리비스 부부의 재판이 열렸을 때 법정에는 페랄타 후손 100여명이 방청하고 혹시 있을 재판의 향방을 주시했다고 한다. 사기꾼 리비스는 1896년 7월 18일 2년징역형과 5천달라 벌금형를 받았다. 그러나 모범수로 3개월 감형받아 1898년 4월 18일 출소한 후 덴버에서 여자모자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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