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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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길이란 인간의 절실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이다. 길 위에는 오고 간 인간들의 훈훈한 마음과 탐욕과 질시와 경쟁이 뒤섞여 오늘처럼 인간이 오가는 길이 마련되었다. 이 길을 따라 인간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도 하고 누구는 꿈을 이루려다 길 위에 귀한 생명을 내려놓기도 했다.
평소 간직해 온 꿈을 이루기 위해 모험가들은 집 채만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건너 수평선 넘어 안보이는 신천지를 찾아 바닷길를 내고 또 누구는 꿈과 행운을 찾아 말 안장에 이교도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목을 매달고 말을 달린 욕망의 사나이들이 오가는 길을 내었다.
정복자들이 마련한 길을 따라 하느님 말씀이 적힌 성경을 든 사제들은 불쌍한 토착민 영혼을 수확하려 말을 달리면서 유럽인들이 미쳐 가보지 못한 신천지에 '엘까미노(El Camino) 즉 '횡제의길'을 깔았다.
연약한 나비의 날개짓이 대양을 가르는 파도가 되듯 신천지로 모여든 모험가들은 드디어 1521년 멕시코의 강성한 아즈텤(Aztec) 제국을 정복하고, 그리고 10여년 후 1531년 12월 멕시코 테페악산에 장미꽃과 함께 성모님이 인디안 후안디에고에게 발현하면서 7년 만에  800만 각기 언어가 다른 인디안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기적을 이룬다.
사제들은 개종한 인디안을 찾아 엘까미노 길을 다듬으며 북으로, 북으로 말을 달렸다. 특히 예수회 신부에 우제비 오 키노(Eusebio Kino) 신부는 오늘날 아리조나와 멕시코 국경 근방 투마카코리까지 진출했다.
유럽의 저명한 수학자겸 천문학자였던 그는 아리조나 인디안에게 최초로 유럽의 소, 양, 돼지 등 가축과 유럽산 곡물, 과실수 등을 전파했다. 키노 신부는 또한 콜로라도 강에 배를 띄워 당시 섬으로 알려졌던 캘리포니아가 대륙임을 증명하고 유럽에 알렸다.
선교원을 따라 정착하게 된 스페인 이주민과 인디안 간에 불화가 생기고 드디어 현지 인디안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뉴스페인 당국은 투산 아래 투박(Tubac) 마을에 수비대를 세웠다.
1755년 수비대장 '디안자보우티스타(De Anza de Butista)'는 이주민 330명을 이끌고 엘까미노를 따라 북상하여 오늘날 샌프란시스코 만에 "쌍독수리 황제의 기"를 꽂아 오늘날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항구를 열게했다.
신천지로 탐욕의 사나이들이 몰려들 무렵 스페인 팔로스 시장 주변을 떠돌던 12살 어린 고아까브리요는 그를 거둔 상인 가족 틈에 끼어 1511년 엘살바도르에 도착했다. 몇 년이 흘러 군인의 길에 들어선 까브리요는 1542년 9월 27일 태평양 당시 총독 멘도자와 코르테스의 명령으로 연안 뱃길을 찾던 중 산디에이고 만을 찾은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흘렀다. 엘까미노를 찾는 모험가들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인가, 1849년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골드러쉬가 일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탐욕스런 사나이들은 타고 외롭게 고립되었던 샌프란시스코에 엘까미를 따라 몰려들었다.
이제 캘리포니아는 지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낙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엘까미노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말을 달린 야망의 사나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한다.
                            (*필자: 이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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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 하늘이 가득 들어찬 바다는 그저 시리도록 푸르기만 했다. 이따금 잔 파도를 차고 갈매기가 비상하면 아기숨결처럼 고운 바람에 해변에 줄지어 늘어 선 키 큰 야자나무는 그 긴 몸을 흔들었다. 먼 바다를 무작정 달려온 물살이 세월의 이끼가 파렇게 달라붙은 벼랑에 자해하듯 들이치면 바다는 하얀 거품을 토해 내며 사라졌다. 그리고 모래알처럼 조각난 포말에는 영롱한 햇살이 번쩍였다.
까브리요(Juan Rodriguez Cabrillo: *1499년경 스페인 팔마델리오에서 출생~1543년 1월 3일 탐험 중 산타까타리나 섬에서 사망)는 검은 연기가 바람에 밀려오는 연안을 따라 북상했다. 뱃전에 서서 말없이 망원경으로 내륙과 연안을 살피던 까브리요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하얀 연기를 깊이 들어마셨다. 당시 정착민 사이에 유행하던 원주민이 즐기던 담배를 까브리요도 습관처럼 입에 물었다. 잠시후 먼 수평선과 잇닿은 하늘은 황홀한 붉은 낙조가 가득했다.

 

1542년 까브리요, 샌디에이고 만에 정박하다
연안을 끼고 북상하던 까브리요는 마침 갈고리처럼 돋아난 곶을 발견하고 만 안으로 피선하여 하룻밤 정박하기로 했다. 갈고리 처럼 튀어나온 이 곶은 이후 '포인트로마(Point Loma'라고 이름지어졌다. 미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이 곶은 멕시코와 국경을 이룬다. 까브리요가 이끄는 산살바도르와 빅토리아가 앞서고 노잡이가 한편에 13명씩 모두 26명이 힘들게 노를 젖는 산미구엘호가 뒤따랐다. 모두 200여명의 선원과 잡부들이 탄 3척의 배는 주위가 12마일정도인 만 안으로 조용히 미끄러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발라스트포인트(Ballast Point)에 조용히 닻을 내렸다. 평균 수심은 21.33 피트 그리고 만을 둘러싼 10내지 80 피트, 어느곳은 100피트에 이르는 가파른 벼랑이 폭이 1내지 3마일의 잔잔한 만을 둘러싸고 있었다. 2척의 함선과 보우트가 만 깊숙히 밀려들어도 원주민은 누구하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해서 1542년 9월27일 까브리요는 오늘의 '샌디에이고'에 정박하고 발을 디딘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1542년 6월27일 멕시코연안 만자니요(Manzanillo)에서 20마일 북쪽거리에 있는 나비다드(Navidad)항을 떠난 까브리요는 1,500여 마일 떨어진 현재의 미국과 멕시코 국경인 오늘의 샌디에이고 만에 들어섰다. 9월 27일 수요일이었다. 나비다드 항을 떠난 지 65일 만이다.
까브리요는 풍광이 빼어난 이 만을 산미구엘이라고 이름지었다. 까브리요가 마침 불어닥친 태풍을 피해 6일간 머물고 떠난 후 60년의 세월이 구름처럼 흐르고 다시 이곳은 영겁의 세월처럼 아무도 찾지않는 갯가로 세월을 보냈다. 그간 잊혀졌던 이 갯가는 1602년 11월10일 스페인 탐험가 세바스티안 비즈카이노(*Sebastian Vizcaino: 1548~1624)가 찾아 하루 정박하고 타고온 배의 이름을 빌려 샌디에이고라고 지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황금을 찾아 육상, 해상으로 탐험대 나서다
비즈카이노는 태평양을 오가는 함선의 기항지를 찾던 중 이 곳에 천혜의 안전한 피항을 찾아 이 만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성인 샌디에이고의 축일이 11월12일이었다. 타고온 함선의 이름도 샌디에이고이므로 그 이름을 빌려 샌디에이고라고 불렀다. 이후 탐험 가비즈카이노는 필피핀은 물론 1611년에는 일본을 방문하고 당시 일본의 최고실력자 도꾸가와이에야스를 알현했다. 한편 까브리요는 연안을 따라 하늘을 뒤덮었던 연기의 정체는 이곳 쿠메이야야(Kumayaay) 원주민들이 잡초와 해충을 제거하고 거름을 얻기위해 들판에 불을 지르는 연례행사 때문임을 뒤늦게 알았다.
까브리요는 당시 뉴스페인 총독 안토니오멘도자와 정복왕 헤르난코르테스의 명령을 받고 인도와 중국까지 이어진다는 전설속의 '아니안해협(Strait of Anian)'을 찾아나섰다.
마젤란이 말한대로 태평양 바다는 잔잔했다. 당시 유럽의 정복자들은 컬럼부스가 발견한 신대륙이 인도가 아님을 뒤늦게 알고 무어족 침공시 귀금속을 들고 섬 어디엔가에 숨겨놓았다는 황금과 7개의 황금도시 그리고 향료와 비단의 고장 중국과 인도로 가는 길을 찾아나섰다. 스페인정복자들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해협을 통하면 인도와 중국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멘도자 총독은 까브리요에게는 해상을 통해 해협을 찾고 바스퀘즈코로나도에게는 수천명의 육상 탐험대를 이끌고 내륙을 통해 황금도시 쥬니마을과 혹시 있을 지 모르는 인도 등 동방에 이른다는 큰 강을 찾도록했다.
1540년 2월23일 뉴스페인 북부 쿠리아칸을 떠난 코로나도가 오늘의 아리조나를 지나 7개의 황금도시 중 하나인 주니마을에 도착했으나 그곳에는 황금도시도 그리고 인도에 이른다는 해협도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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