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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족과 함께 식탁에서 사라진 계피, 후추 등 향신료
유럽인들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빵이나 마른 고기, 소금에 절인 투박한 음식으로 생존을 위한 식생활을 해왔다. 고작 맛을 내는 방법이라고는 자연산 꿀을 가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부 부자들은 향신료를 유산으로 자손에게 남길 정도였다. 또한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옷감도 투박한 천이나 양털, 가죽이 전부였다. 세탁 또한 까다로웠다.
그러나 무어인들에 의해 동방에서 들여온 옷감은 착용감이 부드럽고 세탁이 용이해 상류층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였다. 우선  무어인이 쫒겨난  포르투칼 주민들은 돈도 벌고 귀한 상품을 구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상술에 능한 무어인들과 거래를 했다. 해양 기술이 미천한 당시 먼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이렇게 10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침반이 발명되면서 조금씩 해양술이 발전되고 또한 유럽사회에도 교역이 늘어나면서 주화의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다. 자연 유럽지역, 특히 독일지역에서 금이나 은광이 고갈되면서 주화를 만들 금, 은을 찾아 유럽인들은 자연 동방지역에 눈을 돌렸다.
포르투칼 요한1세의 3남 앙리 왕자(*1394년 3월4일~1460년 1월13일사망: 봐이센공작)는 남달리 모험심이 강했다. 앙리 왕자는 1418년 대서양 연안 사르가스(Sargas)에 해양학교를 세우고 항해술과 선박제조기술 개발에 힘썼다.
그는 포르투칼의 발전은 오직 해양과 항해술에 달렸다고 믿고 기술개발에 전심을 다했다. 앙리 왕자는 전 유럽의 천문학자, 지도제작 기술자, 과학자, 수학자 등을 해양학교로 불러모아 먼 바다를 헤쳐나갈 수 있는 항해술을 함께 연구하고 별을 측량하며 위도를 측정하는 연구에 매달렸다. 앙리왕자와 함께 연구하는 해양 기술자들은 어떤 해풍에 삼각돛이나 사각돛을 사용해야하는가, 그리고 해풍의 강도에 따라 돛을 몇 도로 잡아야하는 지도 연구했다.
해양학교를 설립, 항해술 연구에 앞장선 포르투칼
앙리 왕자는 또한 선박 기술자들과 안전하고 규모가 큰 함선 제작이나 안전한 선박 제조기술을 공동으로 연구했다. 그리고 수심측정법과 지도제작법 등도 연구하여 포르투칼을 당대 가장 발전한 해양국가로 거듭나게했다. 앙리 왕자는 또한 해양학교에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우수한 선원을 양성했다.
왕자 자신도  젊고 우수한 선원을 이끌고 손수 아프리카 연안 정복에 나서 많은 식민지를 세웠다. 앙리 왕자의 이같은 노력으로 포르투칼의 해양기술은 유럽 일대에도 많이 전파되었다. 발달된 해양기술 덕분으로 포르투칼은 먼 바다로 나가 아프리카 해안일대의 마더리아, 케이프 버디제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기네아, 모잠비크, 앙골라, 고아 등도 손에 넣었다.
교황청의 중재로 포르투칼은 남동쪽으로 진출할 독점권을 교황청으로부터 받고, 포르투칼보다 300년 늦게 바다로 진출한 스페인은 나머지 북서쪽 탐험권을 얻었다.
1494년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토르데시야 (Treaty of Tordesilla)조약"을 맺고 포르투칼은 종전 경계에서 서쪽으로 270 리이그를 이동하여 아메리카 북동쪽 어느 지점까지만 식민지로 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포르투칼은 1503년 아프리카와 인도를 주항하여 동방 무역로를 개설했다. 포르투칼은 과감하게 포르투칼인이 아닌 이탈리아 항해사도 고용하였다.
1501년 폴투칼의  후원을 받은 아메리꼬 베스푸치(Americo Vespucci)는 브라질 해안선을 탐험하고 신대륙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대륙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탐험기를 출판했다.
'아메리꼬' 이름을 남긴  탐험가 아메리꼬 베스푸치
그의 탐험기는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1507년 독일의 지도제작자 마아틴 발드세뮬러 (Martin Waldseemuller)는 이 책을 보고 지도를 제작하면서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발견한 대륙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꼬라고 기재하여 오늘날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남겼다.
스페인은 포르투칼보다 300여년이나 늦은 1492년 무어족의 마지막 거점 그라나다에서 무어족들의 항복을 받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스람교도들을 완전 축출했다.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는 흩어진 영주들을 규합하여 스페인이라는 유럽 최강의 제국을 건설하고 뒤늦게 해양진출에나섰다.
이태리 제노아 출신 지도제작자 크리스토퍼 컬럼버스는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여왕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492년 8월3일 산타 마리아 등 3척의 배를 이끌고 인도로 가는 교역로 개척에 나섰다.
실제 여왕의 후원이 늦어져 여왕과의 계약 후 6년만에 제1차 항해가 이루어졌다. 컬럼버스는 모두 4차례 항해 길에 나섰으나 1506년 사망할 때까지 그가 처음 도착한 오늘날 하이티와 엘 살바도인 히스파뇨라가 인도라고 믿었다.
컬럼버스 3척의 함선, 88명 선원, 65일만에 도착
컬럼버스의 제1차 항해는 1492년 8월3일 52명의 선원을 실은 산타 마리아 (Santa Maria) 호와 각각 18명의 선원이 이끄는 핀타 (Pinta)호와 니나 (Nina)는 스페인 '틴토(Tinto) 강줄기에 있는 팔로스 (Palos)를 떠났다. 핀타 호와 니나 호는 여왕 소유의 배였다. 컬럼버스에게는 항해에서 얻은 수익의 10%를 보상으로 받게 되었다. 규모가 큰 산타 마리아 호는 스페인 파로스 (Palos) 항구에 거주하는 신손의 이름을 가진 선장의 소유였다.
항해에 참가하면 과거의 죄를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선원을 모집했다. 모두들  황금이 넉넉하다는 부자나라 인도에서 일확천금을 챙긴다는 희망에 부푼 선원들은 까나리아 제도 서쪽을 지나 망망대해로 들어섰다. 그리고 65일후 컬럼버스의 3척의 선박은 오늘의 카리브 해인 하이티와 엘 살바도르 해안에 기착했다. 반라의 토착민들은 붉은 수염에 파란 눈의 외지인을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화승총과 석궁으로 무장한 컬럼버스의 선원들은 제대로 대항도 못하는 토착민을 인디안이라 이름짖고 초막이 게딱지처럼 모여있는 부락을 사정없이 약탈했다. 그리고 황금이며 기이한 토산품을 탐욕스럽게 거두었다. 그리고 인디안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더 많은 황금을 거두어들였다. 할당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어린 소년은 손목이 잘리기도 했다.
마침 인근지역 탐험에 나섰던 산타 마리아 호가 좌초되었다. 황금과 각종 향료 등 약탈품에 만족한 컬럼버스는 좌초한 산타 마리아 호와 30명의 선원을 남겨둔채 엘 살바도르를 떠나 귀국길에 올라 1493년 1월16일 스페인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 컬럼버스는 이곳을 히스파뇨라고 이름짓고 정착했던 너른 평지에  나무 울타리를 세웠다. 오늘날 나비다드라고 부르는 항구는 이렇게해서  생겨났다.
기대 이상의 금은 보화와 향신료 그리고 약간 명의 현지인 노예를 거느리고 컬럼버스가 황제의 깃발을 바람에 날리며 항구에 도착하자 온 스페인은 열광했다. 컬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하고 무사귀환했다는 소식은 온 유럽에 퍼졌다. 무어 족인 이스람교도들과 오랜 세월 싸움끝에 이제는 무료해진 하층 귀족들인 스페인의 히달고 (Hidalgo)들과 황금에 열광하는 유럽의 모험가들이 신세계를 바라보고 스페인으로 몰려들었다. 만족한 페르디난드 황제와 이사벨라 여왕도 크게 만족하고 컬럼부스에게 부왕의 칭호를 내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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