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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작전 85일 만에 무너진 제국
텍스코코 호수위의 섬 테노치티틀란에 자리했던 화려하고 영화로운 멕시카 테노치티틀란 제국은 코르테스의 85일간 수륙양면 봉쇄작전에 드디어 몰락했다.
당시 유럽의 대도시 런던과 파리가 고작 5만의 인구를 자랑할 때 물위의 도시 테노치티틀란은 인구 15만이 모여사는  거대한 도시였다.
85일간 호수위의 방죽길을 범선으로 막고 또한 육지에서 방죽길로 통하는 길을 봉쇄한 후 식수와 양식을 차단하자 15만 주민은 고통에 시달렸다. 더구나 침입자를 통해 전염된 천연두가 온 도시를 휩쓸자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울음은 온 도시에 가득했다.
5월 22일 봉쇄 다음날 커누를 타고 달아나려던 11번째 황제 쿠아후테목 황제가 체포되었다. 황제가 체포된 지 85일만인 1521년 8월 13일 침입자 코르테스와 병사들에게 800만 주민 아니 멕시카 테노치티틀란 제국에 세금과 조공을 바치던 복속주민을 포함하면 2,500만을 통치하던 권한은 코르테스와 그 정복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멕시카 테노치티틀란 제국을 손에 넣은 코르테스는 점령군과 토착주민 간의 화합을 위해 영향력 있는 주민과 코르테스의 고위참모를 중심으로 시 위원회를 구성했다. 시 위원회를 통해 코르테스는 생필품과 식수를 공급하면서 그간 겪었던 주민들의 고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테노치티틀란은 산 쥬앙 테노치티틀란, 인근에 있는 대도시 트라텔코(Tlatelco)는 산티아고 트라텔코로 이름짓고 덕망있는 나후아 사람을 시장에 임명했다.
코르테스는 자신의 거처를 텍스코코 호수 남쪽 끝자락에 있는 목초지가 펼쳐진 작은 마을 코요아칸(Coyoacan)에 마련했다. (*1522년 코르테스는 자신의 애인겸 통역 라 마린첸을 위해 이곳에 저택을 지어주었다. 라 마린첸이 살던 저택이 있던 곳은 지금은 번화가가 되고 저택이 있던 자리에는 기념석이 세워져있다.)
본국에서 도시 전문가 2명 초빙, 신도시 건설
그러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수도를 건설하는데는 여러 의견이 나왔다. 일부 참모는 2,200 피트의 산이 자리한 목초지 주변을 적극 추천했다. 일부는 텍스코코 호수 위의 육지와 가까운 섬에 도시를 건설하자고 했다. 육지와 가까운 섬에 도시를 건설하면 유사시 연락이 용이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폐허가 된 옛도시를 고집했다. 신도시를 건설하면 자연 주민들이 경쟁적으로 옛도시와 신도시를 비교하고 또한 옛도시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수 있어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코르테스는 폐허가 된 이 도시를 말끔하게 정리한 후 새도시를 세우기로했다.
코르테스는 우선 포탄을 맞아 무너져 폐허가 된 도시 정비작업에 들어갔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시신을 거두고 거리를 가득 메운 파편을 정리하며 전쟁의 상흔을 지우기에 나날을 보냈다.
어느 정도 도시가 정비된 후 코르테스는 스페인 본국에서 도시계획 전문가 알론소 가르시아 브라보와 베르나디노 베즈퀘즈 디 타피아를 불러왔다. 두 사람에게는 현지인 조수 2명이 돕도록 했다. 브라보와 타피아는 우선 5.2 스퀘어 마일즈가 되는 너른 테노치티틀란 섬을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으로 나누어 중앙에 너른 도로를 내었다. 도로가 교차하면서 구획된 180 헥타르의 대지를  100 블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섬 안에는 8개의 운하를 조성하고 남쪽 끝에는 거대한 광장을 마련했다. 이 광장은 이후 조코로(Zocoro)광장이 된다.
코르테스는 또한 그의 최측근들에게 광장 주변에 거처를 마련하게 했다. 코르테스는 인신제물을 바치던 신전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는가 하면 뉴 스페인 전역에 현지인을 농장과 광산에 노역시킬 수 있는 '엔코미엔다'라는 제도를 1524년 실시했다.
오악사카 지방 후작이 된 코르테스
코르테스는1521년 황제로부터 뉴스페인의 최고 통치권자인 지사겸 장군, 그리고 최고 재판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원수지간이 되어버린 디에고 베라퀘즈와 황제의 측근 폰세카 (Fonseca) 주교 그리고 컬럼버스의 아들인 디에고 컬럼버스의 모함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디에고 베라퀘즈의 영향을 받고 "코르테스는 믿을 수 없는 야심가이며 배반자"라고 황제에게 간했다. 황제는 특히 측근인 폰세카 주교의 말을 믿고 끝까지 뉴스페인의 총독에 임명하지 않았다.
황제는 1524년 코르테스의 보좌관이라는 명목으로 고위 행정관 4명을 보내 코르테스를 감시했다. 그리고 프란시스코 가레이에게 병력을 이끌고 북부 뉴스페인에 주둔하고 파누코(Panuco)에 도시를 세우게 했다. 황제의 이같은 조치에 코르테스는 4번째 탄원서를 보냈다. 이같은 탄원서 덕분에 가레이 병사와 코르테스 간의 분쟁은 해결되었다. 이후 황제는 뉴스페인과 스페인과의 교역을 담당할 인도위원회 (Council of Indies)를 설치하는 등 신천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코르테스는 아하야 카티에 거대한 첫번째 관저를 신축했다. 그리고 측근들에게도 너른 영지에 엔코미엔다 제도를 활용하여 농장을 운영하게 했다.
1528년 스페인을 방문한 코르테스는 마침내 뉴스페인의 남부 700 스퀘어 킬로미터라는 광활한 오악사카 계곡의 영지를 소유하는 후작이되었다. 그러나 테노치티틀란 섬에 자리잡은 신도시는 홍수에 취약했다. 배수시설이 취약하여 몇차례 수마에 도시가 잠기면서 이후 2,189 스퀘어 마일의 텍스코코 호수는 완전 매립되어 오늘의 뉴멕시코시티가 자리잡게 되었다.
코르테스는 멕시카 테노치티틀란 제국을 완전 정복한 후 그간 황금 등 약탈품을 정리했다. 대략 70만 달러로 예상보다 적었다. 이중 황실에 세금 몫으로 20%를, 그리고 총대장과 참모 몫을 제한 후 전투에 참가한 600여 명의 병사들에게는 약 100 달러가 돌아갔다. 목돈을 움켜진 일부 병사들은 이를 노름으로 탕진하고 다시 약탈품을 찾아 탐험대를 따라 길을 나섰다.
컬럼버스 따라 사제 6명 신천지에 오르다
카리브해 연안을 비롯한 오늘의 멕시코와 과테말라, 도미니카 등 메소 아메리카에 복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은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의 제1차 항해 때부터이다. 컬럼버스는 안전한 항해를 위해 1492년 8월 3일 팔로스 항구를 출발한 이래 저녁무렵이면 3척의 범선 선원 90여명을 모두 갑판에 나와 저녁기도를 바치도록 했다. 낙조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붉게 물들면 산타마리아, 니나 그리고 핀타 등 3척의 선원들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황실의 수호성인 마리아를 칭송하는 성가와 저녁기도를 바쳤다. 이같은 기도는 컬럼버스가 산살바도르에 도착할 때까지 항해내내 계속되었다.
1492년 10월 11일 오늘의 하이티 근방 히스파뇨라에 도착한 컬럼버스의 선단은 저녁 어스름 해풍에 몸을 흔드는 야자수에 노을이 곱게 물든 해변에 도착했다. 컬럼버스와 선원들은 모두 갑판에 나와 석양을 바라보며 성모 찬송성가와 저녁기도를 바치고 다시 바다로 나가 일박했다. 12일 다음날 아침 컬럼버스와 90여 명의 선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신천지에 첫발을 디뎠다.
다음해인 1493년 1월 16일 본국으로 돌아갈 때는 다수의 포로와 유럽에서는 볼수없는 담배, 파인애플, 칠면조같은 물건을 가져가 대륙에 소개했다. 오늘의 큐바, 도미니카와 옛 마야의 땅인 메소 아메리카에 하느님의 복음이 전해진 것은 컬럼버스의 제2차 항해 때부터이다.
1493년 9월 25일 17척의 범선과 곡괭이와 화승총을 든 일확천금을 노리는 탐욕스런 탐험가, 투자자 그리고 입신양명을 노리는 기사와 하층귀족인 히달고 등 1,300여 명이 신천지로 가는 뱃길에 들었다. 이중에는 하느님의 어린 양의 영혼을 구하려는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 베르나도 보일(Bernado Boill)과 라몬 페인(Ramon Pane) 등 사제 6명이 총과 곡괭이 대신 성경을 들고 신천지로 향했다. 땅끝까지 하느님 말씀을 전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보일 신부를 단장으로 한 6명의 사제들은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낯선 외지 히스파뇨라에서 손과 몸짓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1493년 6월 25일 당시 교황 알렉산드라 6세는 신천지로 떠나는 보일 신부를 히스파뇨라 지역 교황 대리주교로 임명했다. 보일신부는 1494년 1월 6일 라이사벨라 (La Isabela)부락에서 그간 거두운 어린 양 몇 명과 함께 첫 미사를 올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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