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타임즈


booked.net

booked.net

newbeom.JPG

 

멘도자 총독, 알바라도 소유 함선 8척 을 몰수
알바라도를 사망케한 인디안 반란을  어느정도 진압한 멘도자 총독은 그간 중단되었던 해상탐험을 다시 시작했다. 처조카 빌라로보스 (Ruy Lopez de Villalobos; ca 1510-1544.4.4)를 태평양 해상에 있는 필립핀, 인도, 중국 등 향료의 나라와 교역로를  확보할 수 있는 탐험대장에 임명했다. 그리고 지진피해를 살피러 엘살바도르를 방문한 까브리요에게는 캘리포니아 연안을 탐험하고 전설속의 '아니안  해협'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망설임 끝에 까브리요는 총독의 제의를 수락했다. 탐험을 통해 알바라도로부터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멘도자는 까브리요에게 알바라도 소유 중형선 빅토리아 호와 산미구엘호를 제공했다. 까브리요는 빌라로보스의 필립핀 탐험대보다 7개월 전인 1542년 6월27일 자신의 소유인 200톤급 산살바도르 호와 알바라도가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대승한 기념으로 이름지은 빅토리아호, 그리고 소형선 산미구엘 호를 지휘하여 탐험에 나섰다. 근 200여 명의 선원이 승선한 3척의 함선은 태평양 연안 바라 디 나비다드 (Barra de Navidad) 항을 떠났다. 그리고 바하 캘리포니아를 지나 코르테스 만으로 빠져들었다. 바다는 바람도 한점없이 잔잔하고 하늘은 수정처럼 맑았다.

 

로페즈  6척 함선 이끌고  필립핀 연안 탐험
멘도자 총독으로부터 알바라도의 함선 6척을 인계받은 로페즈 디 빌라로보스는 분주했다. 탐험대 대장으로 임명된 후, 빌라로보스는 그간 주인을 잃은 함선을 떠난 병사와 선원을  찾아나섰다.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대지는 황폐했다. 이같은 시국에 탐험에 필요한 근 400여명의 선원과 병사를 확보한다는  일은 용이하지 않았다. 또한 뱃길도 익숙하지 않은 먼 태평양 바다이다보니  누구도 낯설고 먼 바닷길로 선뜻 나서기를 주저했다. 다행스럽게 빌라로보스는  오래전 마첼란을 따라 태평양을 항해했던 기네스 디 마프라 (Gines de Mafra) 선장과 경험많은 다수의 선원을 구할 수 있었다. 근 일년여 간 빌라로보스는 선원과 병사, 그리고 먼 뱃길 항해에 필요한 양식, 그리고 탐험에 필요한 무기를 마련했다. 바라 디 나비다드 항구에서 오늘의 태평양 건너 먼 필리핀 제도까지는 대략 8,600여 마일. 아무리 편안한   태평양이지만 결코 쉬운 뱃길은 아니었다. 어렵사리 모든 준비를 마친 빌라로보스는 1541년 11월 1일 출항의 힘찬 뱃고동을 울렸다. 200톤 급 대형선 산티아고가 앞서고 그 뒤를 산조오지, 산안토니오, 산가브리엘, 산마아틴, 산주앙  호는 근 400여명의 선원과 병사를 태우고 바라 디 나비다드 항구를 빠져나와 태평양 바다 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바다는 조용했다. 빌라로보스가 지휘하는 함대는 며칠 후 멕시코 서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렉스 파르티다 제도 중  하나인 렉실라 제도를 스쳐 지나갔다.

 

출항  56일만에 마샬 군도를 지나다
그 곳에는 팜트리가 시원한 바닷바람에 유유히 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출항  56일 만에 마샬 군도 중 하나인 코랄에스 섬을 보았다. 얼마 후 함대는 스페인과 포르투칼간 영토 경계인 데마르케이션 라인을 지나 산에스테반이라는 작은 섬에 일행은 정박했다.
6척의 함선은 정박하는 동안 신선한  식수를 충분히 확보했다. 해가 바뀐 1543년 1월 6일 함선은 대장 빌라로보스의 지휘에 따라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동일한 위도에 있는 정원이라는  뜻의 라스 자르덴이라는 섬과 몇 개의 다른 섬을 지났다. 그리고 1월 23일 마테로테스라고 이름 지은 섬을 발견한 후 해도에 기입하고 또 1월 26일에는 로스 아레시헤스라는 섬도 해도에 기입했다.
그러나 1월 6일부터 시작한 폭풍우는 23일까지 계속되었다. 집채만한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선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파도에 맞섰다. 6척의 함선은 몰려오는 파도에 낙옆처럼 바다 한 가운데를 떠돌기를 근 보름. 가랑잎처럼 떠돌던 함선은 각각 헤어져 바다를 떠돌았다. 폭풍우가 가시고 날이 밝았다. 미친듯 날뛰던 바다는 거짓처럼 고요했다. 폭풍우 속에서 산크리스토발 호가 사라졌다. 산크리스토발 호는 1519년부터 1522년까지 마젤란과 함께 필리핀을 비롯한 태평양 제국을 항해한 노련한 선장 마프라 ( Gines de Mafra)가 지휘했다. 그는 1521년 마젤란과 함께 처음으로 기항했던 마자루아 (Mazarua)까지 표류한 후 다행스레 일행과 합류했다. 마프라 선장에게 레이테 (Leyte)가 지척에 있는 마자루아는 두번째 기항이었다.

 

출항 100여일 만에 필리핀 제도에 도착
빌라로보스의 함선은 1543년 2월 9일 민다나오의 동쪽 해안에 자리한 말라가라고 부르는 섬 연안의 바방가 (Babanga) 만에 들어섰다. 바라 디 나비다드를 출항한 지 근 100여일 만에 필리핀 제도에 도착했다. 빌라로보스는  야자수가 해안에 즐비하게 늘어선 민다나오 섬을 신성로마제국의 스페인 황제  촬스 5세를 기려 세자리오 카로리 (Caesarea Karoli)라고 이름지었다. 빌라로보스가 지휘하는 함선은 이곳에서 32일을 지냈다. 그러나 가져온 양식은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였다. 현지인의 저항이 두려워 쉽사리 양식을 구하러 나설  수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빌라로보스는 가져온 옥수수를 파종했다. 3여일간 머물면서 옥수수가 싹이 트길 기다렸으나 싹은 트지 않았다. 근처에서 바나나  또는 나무 열매와 물고기로 연명하던 선원들도 기진한 채 움직이지 못했다. 선원과 병사들은 영양실조로 하루가 다르게 그 수가 줄어들었다. 1543년 3월 31일 빌라로보스의 함선은 마자루아 섬에 상륙하여 양식을 구하기로 했다. 바다는 숨죽인듯 고요했다. 뱃머리를 마자루아로 향했으나 4각 돛에는 배를 밀어낼 바람이 불지 않았다. 함선은 인근을  떠돌다 근처 사랑가니 (Sarangani) 섬 연안에 닻을 내렸다. 선원과 대원들은 인근 해안에서 물고기나 열매를 구해 연명했다. 
8월 7일 무장한 일단의 포루투갈 병사들이 상륙했다. 그들은 빌라로보스에게 모루카스 (Moluccas)지역 총독 카스트로 (Jorge de Castro) 명의로 된 포루투칼 영토를 무단 침범했다는 항의문을 전달했다. 빌라로보스는 8월 9일자 회신에서 자신은 '폴루투칼과 카스티연 황제간에 맺은 조약에 따라 합법적으로 상륙했다'고 주장하는 회신을 전달했다.
1543년  8월 27일 빌라로보스는 그간의 탐험과정을 정리했다. 토로 (Bernardo de la Torre) 선장에게 산쥬앙호 편으로 뉴스페인에 돌아가 작성한 보고서를 멘도자 총독에게 전달하라고했다.

 

필립2세 황제 기려 필립핀으로 명명하다
그러나 9월초 폴루투칼 병사는 카스트로 총독의 항의서신을 다시 전달했다. 빌라로보스는 전번과 똑같은 답신을  9월 12일자 서신으로 응답했다. 폴루투칼 측에서 무력으로 항의하자 빌라로보스는 이곳에서 겨울을 난 후 다른 섬에  정착하기로 했다. 빌라로보스는 산크리스토발 편으로 1544년 4월 레이테와 사마르 (Samar)가 있는 암보이나 (Amboyna)로 향했다. 그리고 이곳을  황제 필립 2세를 기려 필립핀 제도 (Las Islas Filipines)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장시간 굶주림으로 기진한 선원과 병사들에게 원주민들은 거칠게 저항했다.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함선은 파괴되었다. 더 이상 저항과 항해가 불가능한 총대장 빌라로보스는 드디어 포루투칼 측의 마르코스 총독에게 투항했다. 빌라로보스와 마프라 선장, 기도 디 라베자리스 선장을 포함한 선원과 병사들은 즉시 구금되었다. 며칠후 기진한 빌라로보스 총대장은 열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불운한 총대장 빌라로보스는 머나먼 태평양 바다에 있는 낯선 땅에 황제 필립 2세를 기려 필립핀이라는 이름을 남겼으나 1544년 4월 4일 태평양 저편 54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선원과 병사들과 함께 구금된 마프라는 구금된 동안 '마젤란-엘카노의 주항 (Magellan Elcano Navigation)이라는 항해기를 남겼다.
117명의 생존자들은 말라칼 항구에서 포루투칼 측의 배려로 리스본에 무사히 도착했다. 마프라 선장은 자신의 기록물은 스페인 선원에게 지니도록 했다. 이렇게해서 스페인에 전해진 기록물은 1900년대 초에 빛을 보게되고 1920년 출간되었다. 

 

 

N12.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404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샌프란시스코 언덕에 황제의 기를 꽂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9
1403 [바쿨라 변호사의 법률 칼럼]위험한 도시, 죽음의 도로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9
1402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의이인(薏苡仁) 1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9
1401 [정선심 요리사의 건강요리] 만두피 없는 굴림만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9
1400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샌프란시스코 언덕에 황제의 기를 꽂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2
1399 [바쿨라 변호사의 법률 칼럼]교통사고 변호사 만날 때 어떤 서류를 챙겨가야 하나요?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2
1398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육종용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2
1397 [정선심 요리사의 건강요리] 나막 물김치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2-02
1396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샌프란시스코 언덕에 황제의 기를 꽂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26
1395 [정선심 요리사의 건강요리] 두부 무 조림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26
1394 [바쿨라 변호사의 법률 칼럼] 새해가 되면 업데이트하세요!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26
1393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익모초(益母草) 2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26
»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샌프란시스코 언덕에 황제의 기를 꽂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9
1391 [바쿨라 변호사의 법률 칼럼] 내 보험을 사용해야 하나요?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9
1390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익모초(益母草) 1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9
1389 [정선심 요리사의 건강요리] 아스파라거스 들깨가루 볶음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9
1388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샌프란시스코 언덕에 황제의 기를 꽂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2
1387 [바쿨라 변호사의 법률 칼럼] 세입자 보험 (Renters Insurance)은 어떤 것인가요?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2
1386 [송종찬 원장 한방칼럼] 결명자(決明子) 2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2
1385 [정선심 요리사의 건강요리] 고구마 찰전 file 아리조나타임즈 2022-01-12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PC방, 학교,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