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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찾아 거친 소노라 일대를 지나는 키노신부
곤잘레스 신부, 아귈라 신부와 헤어진 키노 신부는 계속 북상했다. 그리고 군사적 요충지인 최변방 산후앙에 도착했다. 소노마 일대의 행정과 사법의 중심지인 산후앙은 카스틸로가 다스렸다.
키노 신부는 카스틸로에게 함부로 토착민들의 노동력착취를 금하는 황제의 칙령을 전했다. 카스틸로는 황제의 칙령에 입술을 대고 이어 머리에 이는 등 감격스러워하며 절대 복종할 것을 약속했다.
다시 북상한 키노 신부와 일행은 계곡에 자리잡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 구에파카 (Guepaca)에 도착했다. 이곳은 그 옛날 플로리다 정착에 실패한 디 바카 (Caveza de Vaca)와  2명의 동료가 8년간 뉴멕시코를 향해 떠돌다 잠시 머문 곳이다. 그리고 황금도시를 찾아 헤메던 코로나도 총독도 이곳에 머문 적이 있다고 했다. 이곳 선교원은 부르고스 (Juan Munoz de Burgos)신부가 원장으로 있었다. 그는 인근 쿠쿠페스까지 관장했다.
키노 신부는 다시 황량한 들판을 지나 험준한 산을 넘어 산미구엘 강을 건너 계속 서쪽으로 피마 부족을 찾아 걸었다. 강 제방을 따라 오포데피와 투아페를 지나 아귈라 신부의 선교원이 있는 쿠쿠르페에 도착했다. 쿠쿠르페 선교원은 산 미구엘 강의 절벽에 둥지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곳에서 키노 신부는 다시 아귈라 신부와 곤잘레스 신부를 만났다.
100여일 만에 목적지 피메리아 알타에 도착
3월 10일경 키노 신부는 아귈라와 곤잘레스 신부의 안내로 아귈라 신부가 운영하는 쿠쿠르페 선교원에 도착했다. 쿠쿠르페 선교원은 피마 인디안의 북쪽에 있는 땅이라는 의미의 피메리아 알타에 있었다. 피메리아 알타는 뉴스페인의 북부 소노라와 시나로아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오늘날 아리조나의 남부지역과 멕시코의 소노라 북부지역을 말한다.
이곳 토착민들은 주로 아리조나의 힐러 강과 솔트 강 유역을 본거지로 살아가는 피마 인디안과 파파고 인디안이었다. 키노 신부가 도착했을 당시 인구는 대략 3만여명이었다.
1686년 세리부족과 피마 부족을 찾아 길을 나선 지 근 100여일 만인 1687년 3월 13일 드디어 키노 신부는 목자없이 떠도는 어린 양떼를 만나기위해 아귈라와 곤잘레스 두 신부의 안내를 받아 피마 부족의 마을이 있는 코사리 (Cosari) 로 향했다. 코사리 마을은 콕시(Coxi) 라는 이름을 가진 추장이 다스렸다. 코사리 마을은 산미구엘 강 을 따라 근 15마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괴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선 핀토스 강과 붉은 바위가 어우러진 계곡을 지나면 그림처럼 빼어난 코사리 마을이 둥지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이틀전 아귈라 신부가 이 마을의 콕시 추장을 방문하고 오늘 키노 신부의 부임을 알렸는데도 콕시 추장은 출타중이었다.
코사리 마을을 "돌로레스" 마을이라 부르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영세받기를 원하며 전담 신부를 보내줄 것을 간청했다는 토착민들은 키노 신부의 옷자락을 붙들면서 열렬히 환영했다. 키노 신부가 도착했다는 소문은 잠시후 이웃 마을에도 전해졌다. 이웃 마을 토착민들도 코사리 마을을 방문한 키노 신부를 반기었다. 곤잘레스 신부는 마을 주민의 요청으로 몇몇 노쇠한 토착민에게 영세를 베풀었다.
1686년 5월경 키노 신부는 얼마간 뉴멕시코 시티에 머물었다. 키노 신부를 존경하던 당대 저명한 화가 후앙 고레아(Juan Correa)는 자신이 그린 '슬픔에 잠긴 우리들의 성모님 (Nuestra Senora de Dolores)'이라는 성모님 초상화를 키노 신부에게 선물했다.
코사리 마을을 살핀 키노 신부는 이 마을 정서가 지난해 받은 성모상과 느낌이 흡사하다고 생각하고 코사리 마을을 '돌로레스 (Dolores)'라고 이름지었다.
이곳에서 하루밤을 보낸 후 곤잘레스 신부는 오포스라로 돌아갔다.
키노 신부와 아귈라 신부는 다음날  마을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돌로레스 마을을 떠나 근처 산이그나시오 강 근처에 자리한 마을을 찾았다. 두 신부는 마을이 있는 서쪽으로 말을 몰았다. 산이그나시오 강을 따라 피멜리아 알타는 너른 초원에 머스퀴토 나무가 넉넉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땅이었다.
키노와 아귈라 두 사제는 톱니 바퀴처럼 날카로운 시에라 디 꼬메디오 산 정상을 바라보며 심하게 굽은 산길로 말을 몰았다.  얼마 후 들꽃과 머스퀴토가 어우러진 초원이 나왔다. 이어 산이그나시오 강물이 말라 자갈과 모래뿐인 강바닥을 따라 말을 몰자 꼬보리카(coborica) 마을에 도착했다.
돌로레스에서 꼬보리카까지 약 30마일 거리였다. 마을에 이르는 길은 미루나무가 군락을 이룬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멀리서 말을 탄 사제와 그 일행이 모습을 보이자 주민들은 마을 입구까지 나와 일행을 맞았다. 키노 신부는 이 마을을 산이그나시오라고 불렀다.
산이그나시오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키노와 아귈라 신부는 이무리 (Imuri) 마을로 향했다. 아침 햇살에 물살이 반짝이는 산이그나시오 강을 끼고 일행은 끝없이 펼쳐진 기름진 들판을 9마일가량 지났다.
산이그나시오 강과 코코스포라 강이 갈리는 지점에 천연의 요새같은 절벽을 끼고 이무리 마을이 자리했다.
키노 신부는 가뭄으로 말라죽던 사시나무를 생각하며 무성한 나무숲으로 둘러쌓인 이 마을을 산호세라고 불렀다.
토착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담소를 나눈 두 사제는 동쪽에 있는 마을을 찾아나섰다.
마을입구까지 나와 환대하는 토착민들
코코스포라 강 제방을 따라 가로수들이 늘어선 길을 두 사제가 탄 말이 앞서고 그 뒤로 일행이 토착민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과 일용품을 실은 노새가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흰 먼지를 날리며 뒤따랐다. 일행은 경사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초원을 지나 바바사퀴(Babasaqui )근방 계곡으로 들어섰다. 계곡은 의외로 깊고 폭은 좁았다. 시원한 물을 만난 말과 노새는 게걸스레 물을 마셨다. 계곡을 벗어난 일행이 잠시 말을 달리자 다시 강이 나타났다. 일행이 오른편을 끼고돌아 아퀴투니 (Aquituni) 계곡을 가로질러 나아가자 붉은 색을 띈 바위들이  강 중앙에 널려있는 협곡이 나왔다. 일행은 계곡을 끼고 1마일 가량 전진하자 꼬아기부비그 (Coagibubig)라고 부르는 마을이 보였다.
키노 신부는 마을에 들어서기 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선교원을 지을 터를 살폈다. 그리고 제방 왼편에 '치유의 우리들의 성모님 (Nuestra Senora de los Remedios)'라는 선교원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돌로레스 마을을 선교본부로 삼다
꼬아기부비그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후 다음날 아침 일행은 오호드아과 마을을 찾아나섰다. 일행은 산비탈을 따라 포풀러 나무가 제방에 촘촘히 둘러선 계곡에 들어섰다. 강물이 말라  모래와 자갈뿐인 강줄기를 따라 다시 떡갈나무가 무성한 들판을 지나자 떡갈나무가 무성한 들판이 보였다. 그리고 출발했던 돌로레스 마을이 나타났다. 이렇게 해서 키노 신부는 돌로레스 마을을 중심으로  산 이그나시오, 이무리스, 레메디오스를 네모꼴 정점으로 삼아 선교하기로 했다.
이번에 키노 신부가 방문한 마을의 거리는 모두 75마일. 키노 신부는 돌로레스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돌로레스를 피메리아 알타 지역의 선교본부로  정했다.
토착민들이 코사리라고 부르는 돌로레스 마을에 도착한 키노 신부는 즉시 토착민들의 영혼구제 사업에 들어섰다. 
손짓 몸짓으로 지난날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전교하듯 구제사업을 시작했다. 키노 신부를 돌로레스, 이무리 등 4개 마을로 안내한 아귈라 신부도 자신이 운영하는 선교원이 있는 꼬꼬스페 마을로 돌아갔다.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홀홀 단신이 되었다.
유유히 흐르는 돌로레스 강을 끼고  돌로레스 마을은 높다란 천연의 요새같은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 미구엘 강이 가파른 절벽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흐르면서 연안에는 너르고 비옥한 초원을 만들었다. 강 동쪽에는 톱니바퀴같은 험준한 산아래에는 테레사 협곡이 내려앉았고 멀리 서쪽으로는 시에라 델 토렌이 가로막았다. 거친 협곡을 가로질러 나아가면  프리토가 나오고 뒤로는 꾸꾸르페 마을이 보였다. 북쪽은 거대한 시에라 아줄비가 모든 것을 가렸다. 오직 강물이 흘러드는 계곡 전면에는 높다란 평원이 있어 이곳을 통해서만 돌로레스로 들어설 수있었다.
키노 신부는 이처럼 천혜의 요새에 자리잡은 돌로레스 마을에 피메리아 알타 일대를 아우르는 선교원을 두고 영혼 구제사업을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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