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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진압군에 항복하는 토착민 추장들
대규모 병력이 밀려오자 토착민 여러 부족들의 추장은 긴급 모임을 갖고 사에타 신부를 포함하여 7명의 기독교 정착민을 살해한 것에 유감을 표하면서 항복했다. 이어 솔리스 대위의 마탄자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산이그나시오와 이무리스 선교원을 약탈하고 방화한 사건에 대해서도 푸엔테 장군에게 사과하고 폭동을 일으킨 폭도들을 비난하고 주범은 체포한 후 연합군 진영에 인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추장들은 자신들의 부족 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애통해 했다. 이처럼 양측간에 화평이 오기까지 키노 신부는 아직도 완쾌되지않은 몸으로 양쪽 진영을 오가며 말을 달렸다.
이후 테란 장군은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코코스포라에 주둔중인 히론자 장군을 지원하기위해 찾았다. 히론자 장군은 그간 피마부족의 폭동진압으로 돌로레스에서 근 600마일 거리의 호콤(Jocoms)과 야노(Janos)지역의 아파치 토벌작전은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작전에도 캄포스 신부가 종군사제로 참가했다.
히론자와 테란 장군이 지휘하는 연합군은 산타 마리아와 퀴부리를 거쳐 아파치의 소굴인 치리카후아 산으로 향했다. 이 작전에서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연합군은 활과 몽둥이, 손도끼로 저항하는 아파치 전사 60여명을 살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투항하지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포로 여러명을 교수형에 처하고 또 극렬하게 저항하는 아파치는 몽둥이로 두개골을 격파해 살해했다. 히론자와 테란의 연합군은 또한 70여명의 아파치 여인네와 어린이를 생포했다. 생포한 포로는 참전한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반항하는 포로는 교수형, 아녀자 포로는 노예로
전투가 끝난 후 테란 장군을 비롯한 병사들은 심한 갈증을 겪었다. 마침 산등성이 아래 너른 평지에는 맑은 물이  고인 작은 연못이 있었다. 물은 투명하게 맑았다. 테란 장군과 병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연못에 머리를 밖고 물을 들이켰다. 그러나 물을 삼킨 테란 장군과 병사들은 심한 복통과 함께 가슴을 움켜쥐고 신음했다. 일반 병사들보다 한발 늦게 물가로 달려온 캄포스 신부는 몇모금  물을 마시다 병사들의 신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테란 장군과 병사들은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모두 연못가에 몸을 누이고 잠시 후 숨을 거두었다. 이것은 1695년10월 29일이었다. 뒤늦게 연못으로 달려와 몇모금 물을 마셔 목숨을 건진 캄포스 신부는 급히 본진으로 후송되었다.
이미 패전을 각오한 아파치들은 전투 개시와 함께  평상시 식수로 사용하던 연못에 독을 풀어 이처럼 처절한 복수로  한을 풀었다.
어이없이 아파치들이 풀어놓은 독이 든 물을 마시고 이승을 하직한 테란 (Don Domingo Teran de Rios)장군은 본래 페루에서 근 20여년간 무인으로 황실에  봉사했다. 1681년 뉴 스페인에 발을 디딘 테란장군은 뉴 스페인 당국의 호의로 1681년부터 1686년까지 뉴스페인 최변방 시나로아(* Sonora y Sinaloa)의 총독직에 올라 호전적인 피마부족으로부터 정착민을 보호했다. 이후 1691년 누구도 부임하기를 두려워하는 텍사스의 총독직과 제3대 코아후리아 지사직을 1년간 겸임했다. 그리고 소노라 지역으로 이전한 후 발호하는 호전적인 피마 토착민과 아파치부족과 생사를 건 전투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아파치들이 독약을 푼 물을 마시고 어이없게 이승을 하직했다.

 

아파치가 탄 독약물 마시고 전사한 테란 장군
일생의 친구겸 전우를 잃은 히론자 장군은 슬퍼할 틈도 없이 테란장군을 예를 다해 정중히 장례를 모시기로 했다. 히론자 장군은 일생 존경하는 친구겸 전우를 아파치들의 소굴에 홀로 남겨둘 수가 없었다. 그는 빼어난 7명의 기병을 선발하여 수습한 테란 장군의 유해를 싣고  150마일거리 선교원으로 운구토록했다. 사나운 아파치들의 추격을 피해 밤새 말을 달린 기병들은 10월1일 2일만에 선교원에 도착했다. 히론자 장군은 운구하는 기마병들 편에 선교원 사제에게 정중하게 테란 장군의 영결미사를 청하는 친필 서신도 전달했다. 테란 장군은  선교원 묘역에 영원히 잠들었다.
거친 소노라 변방에 정복군의 총성과 피마 토착민 그리고 아파치들의 함성이 멎은 지도 근 3개월여가 지났다. 병상에서 완전히 몸을 추스리고 일어선 키노 신부는 어쩔 수 없이 버리다시피하고 떠난 바하 캘리포니아 산부르노의 어린 양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키노 신부는 산 부르노를 떠나면서  "언제인가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토착민과의 약속을 지키위해 산부르노로 돌아가야했다. 벌써 산부르노를 떠난 지도 10년이되었다. 1695년 1월 키노 신부는 돌로레스에서 1,200마일 거리의 멕시코 시티로 향했다. 근  7주 후 키노 신부는 멕시코 시티에 도착하여 몇년전 캘리포니아 선교를 진지하게 토의했던 살바티에라 신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예수회 관구를 방문한 후 그간 소노라 일대에서의 전교를 설명하고 이어 캘리포니아 지역 토착민에 대한 전교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키노 신부는 또한  사에타 신부의 순교와 소노라 일대의 전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유언비어를 바로잡기위해 자그마한 책자를 발간했다.
키노 신부의 이 책자는 뉴스페인은 물론 로마의 예수회 본부에 큰 감명을 주었다. 키노 신부의 책자를 읽은 예수회 총본부장 타르소 곤잘레스 총장은 "키노 신부는 살아있는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신부다"라고 칭송하고 "키노 신부의 전교사업을 적극 지원하라"고 뉴스페인 예수회에 지시했다.
뉴스페인 예수회 측은 이후 5명의 사제를 소노라 일대에 추가 파송했다. 키노 신부는 뉴멕시코에서 한달간 머물면서 살바티에라 신부와 캘리포니아 전교에 대해 깊은 토의를 나누었다. 키노 신부가 뉴멕시코를 떠날 때 총독은 경호병력을 보내 키노 신부를 호위했다. 키노 신부는 호전적인 호콤과 야노스 아파치들의 땅을 지나 무사히 돌로레스로 돌아왔다.
영원히 소노라 일대를 떠났다고 생각한 토착민들은 돌아온 키노 신부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로레스 인근 부족들에게 퍼지자 어느 부족의 추장은 부족들을 이끌고 근 100여 마일을 걸어와 자신들의 진정한 벗이자 정신적인 지주, 의지할 수있는 친구를 환영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는 마침 수확기였다. 키노 신부가 토착민들과 함께 파종했던 들판은 잘 영근 곡식들이 바람에 몸을 흔드는 황금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키노 신부는 토착민들과 어울려 주님을 칭송하며 즐겁게 수확했다. 그리고 틈틈이 아직 발길이 닿지않은 지방의 토착민을 찾는 꿈에 잠겼다.

 

캘리포니아 지역 선교책임자로 발령
1697년 5월이었다. 대지는 온통 따스한 바람에 초록빛 일색이었다. 정오가 막 지날 무렵 땀에 흠씬 젖은 전령이  선교원 앞마당에 말을 매었다. 그리고 전령은 키노 신부에게 캘리포니아에 선교원을 세우고 사목하라는 전보명령서를 전달했다. 뉴스페인 당국은 캘리포니아 토착민을 위한 전교가 시급하다는 키노 신부의 주장을 받아들인 조처였다. 그리고 황실은 캘리포니아 전교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선교원과 사제들을 보호할 병력도 파견하겠다고했다. 사제들의 신변안전을 책임지겠다고했다.
키노 신부가 돌로레스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돌로레스를 비롯한 이무리스, 산이그나시오 등 선교원 주위 토착민들은 불같이 일어나 키노 신부의 이전을 반대하고 나섰다. 토착민들뿐 아니라 키노 신부와 가깝게 지내던 산쥬앙의 수비대장 히론자 장군, 인근 선교원의 사제들도 일제히 반대했다.
주위에서 이처럼 강력하게 반대하자 키노 신부는 타협책으로 일년 중 반은 캘리포니아에서, 반은 돌로레스에 머물겠다는 타협안을 만들어 로마의 예수회 총본부에 제안했으나 예수회 본부는 이같은 제안을 거부했다.
키노 신부는 드디어 눈물로 전송하는 오랜 친지들인 토착민들과 헤어져 산미구엘 강을 따라 리오 야퀴이로 향했다. 키노 신부와 일행이 거친 황무지로 들어설 무렵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일단의 토착민 사이로 전령의 모습이 보였다. 전령은 키노 신부에게 캘리포니아 전보를 취소한다는 예수회 당국의 취소통보를 전했다. 키노 신부와 일행은 그길로 떠났던 길을 따라 함성을 지르며 반기는 토착민들이 기다리는 돌로레스로 돌아왔다. 뉴 스페인 총독도 키노 신부가 외딴 변방에서 토착민들과 얼마나 유대가 깊은가를 깨닫고 변방의 안정을 위해 키노 신부의 전보를 취소했다.
떠난줄 알았던 키노 신부가 돌아왔다는 소문은 금새 사방으로 퍼졌다. 어느 부족 추장은 부족을 거느리고 근 200마일 길을 걸어 키노 신부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키노 신부를 찾는 토착민들로 인해 돌로레스 선교원과 이어진 사방으로 통하는 길은 얼마동안  분주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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